친구
나에겐 5년 동안 함께한 식물들이 있다. 식물은 키우는 것 보다 죽이는 게 익숙했던 나였는데 이렇게 오랫동안 식물과 함께하고 있는 나를 보면 그저 신기할 뿐이다.
지금 함께하는 식물들은 최근 몇 년 동안 남편 말고 내가 마음을 가장 많이 주고 의지했던 친구들이기도 하다.
오랜 기간 쌓은 사람과의 신뢰도 무너지는 건 한순간이라는 걸 경험하고 나서부터였던 것 같다. 식물이 나에게 그 이상의 의미로 다가오기 시작한 건.
대학교 때 한 친구의 집에 갔던 적이 있었다. 그 친구는 자기가 키우는 화분 속 식물들을 사람 대하듯 말도 걸고, 애지중지 소중히 다뤘었다.
“OO야 목말랐지? 물 줄게~ 나 없는 동안 잘 지내고 있었어?”
식물의 이름도 지어주고, 사람과 대화하듯 말하는 걸 보고 있으면 정말 사람인 줄 착각할 정도로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 담긴 다정한 말투였다.
‘대체 알아듣지도 못하는데 왜 자꾸 말을 하지?’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기이한 광경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내가 식물을 그렇게 대하고 있다.
“이놈에 풀떼기들! 좁아 죽겠네!”
키우는 화분을 베란다에서 거실로 들여오는 추운 겨울이 되면 남편이 늘 입버릇처럼 하는 소리다.
“풀떼기라고 하지 마!”
라고 말하며 속으로는 ‘당신보다도 나한테는 더 위로가 되어 주었던 친구들이야.’하고 나는 덧붙이고 있었다.
결혼 후 몇 번의 이사를 했다. 그때마다 아이들을 데리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때 내 마음의 위안이자 친구가 되어 준 건 다름 아닌 화분 속에 심어진 연약한 식물들이었다. 남편에게 속으로 말한 것처럼 힘든 시간을 버티게 해준 고마운 친구들이기도 하다.
나의 배려를 당연히 여기며 무례하게 굴지도 않고, 상황에 따라 얼굴색을 바꾸는 변덕을 부리지도 않았다. 내가 마음을 주는 것이 하나도 아깝다 여겨지지 않는 나에게 늘 편안함과 안정감을 주는 존재가 식물들이었다. 이게 바로 남편의 불편한 잔소리에도 내가 화분들을 지켜낸 이유이다. 나에겐 그런 관계가 너무 절실했으니까.
가끔은 사람이 식물보다 한없이 약한 존재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마음이 단단하지 못하고 약하기에 나를 보호하고자 남을 상처 내는 어리석음을 범할 때가 있으니 말이다. 나 또한 식물보다 연약한 존재임을 부정할 수 없다.
식물과 보내온 시간 동안 참 많은 것들을 배웠다. 언제든 찾아갈 때마다 곁을 내어주는 그 너그러운 마음 씀이 얼마나 사람을 행복하고 마음 따뜻하게 해주는지를.
위로해 주겠다고 많은 말들을 늘어놓기보다 때로는 침묵하고 조용히 들어주는 게 오히려 큰 힘이 된다는 것을.
거창하게 잘해주지 않아도 물과 가끔의 영양제만으로도 고맙다 인사하고 곁을 허락하는 그 겸손함이 좋았다. 너무 남에게 벽을 치지도, 밀어내지도 않는 단단함과 굳건함이 좋았다. 불안해하지도, 긴장하지도 않아 곁에 있는 나까지 편안해지게 만드는 그 능력이 부럽기까지 했었다.
사람보다 더 많은 지혜를 가진 것 같아 더 의지하며 지내왔을지도 모르겠다.
곁에 있으면 나라는 존재가 한없이 작아 보일 정도로 대단해 보이고 존경스러운 귀한 생명이다.
‘그 친구도 이런 마음이었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고등학교 때부터 집을 떠나 다른 지역에서 기숙사 생활을 해왔던 친구였다. 집안 형편으로 포기해야 했던 나와는 다르게 더 큰 고등학교에서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된 친구가 그때는 마냥 부럽기만 했었다.
그런데 넉넉하지 않은 비슷한 형편에 집 떠나 생활하는 마음은 편하기만 했을까. 나보다 더 일찍 세상을 홀로 마주해야 했을 친구였을 것이다.
대학교 때 친구가 화분을 대하는 모습을 보며 나와는 다른 성향이라 그런 행동을 하는 거라고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알 것 같다. 그때는 몰랐던 친구의 마음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