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하루. 울리지 않는 핸드폰.
전에는 누군가와 수시로 연락하고 만나는 일상이 익숙했는데 요즘엔 별다른 약속이나 일정이 없는 날은 핸드폰도, 나의 일상도 조용한 편이다.
예전의 나였다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인데 요즘엔 이런 조용한 시간들이 오히려 익숙하고 편안하다. 정리되지 않았던 복잡한 감정들을 하나하나 정리해 주기까지 해서 이런 시간들을 더 좋아하게 된 것도 있다.
스무 살 때 집을 떠나 대학교 기숙사 생활을 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내 삶은 늘 새로운 환경과 사람에 적응해야 하는 떠도는 삶이었다.
사람들과 편해지기까지 감당해야 하는 불편함과 긴장감이 좀 덜어질 때가 되면 다시 떠나갈 준비 해야 했고, 그러다 보니 사람과의 관계에서 편안한 안정감을 별로 느끼며 살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나는 늘 어떠한 곳에서든 여행의 마지막 날을 사는 느낌이었다. 너무 마음에 드는 곳을 만나 더 머물고 싶지만 아쉽게 돌아서야 하는 여행의 마지막 날처럼.
채워지지 않는 갈증은 늘 사람을 애쓰게 만든다. 마음도 몸도 어딘가에 이젠 정착하고 싶어 애처롭게 애쓰는 나를 마주한 어느 날 그 모습이 안쓰러워 잠시 멈추자 다짐했던 것 같다.
그러면서 삶을 돌아보니 나뿐만 아니라 모든 이들이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잠시 위로가 되기도 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사람과 만나고 헤어지는 일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변화가 아닐까 싶다. 삶이 늘 흘러가듯, 각자가 집중해야 할 상황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 주제가 서로 다른 만큼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시간도 줄어드는 것 같다. 그런데 가끔은 그 자연스러운 변화가 사람의 감정을 마구 흔들어 놓을 때가 있다. 때로는 그립고, 외롭고, 슬프게 만들기도 한다.
누군가와 곁에 함께하다가 그렇지 못하게 되는 것에 불편한 마음이 들 때도 있었다. 그런 감정들을 감당하기 어려울 때면 그 책임을 누군가에게 넘기기도 했었고, 가끔은 지나치게 내 탓으로 돌리기도 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렇게 서로 다른 길을 가게 되는 건 누구의 잘못도 아닌 그냥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는 거였다.
처음 함께하고 싶어 졌던 이유를 더 이상 찾지 못하게 되었을 때, 삶을 대하는 가치관과 태도가 다름을 깨닫게 되었을 때 자연스럽게 그리되는 것 같다.
살면서 나다운 삶을 깨달아 가고, 나의 색깔을 더 선명하게 찾아 갈수록 내 곁에 함께하는 이들도 나와 비슷한 사람들로 채워지기 마련이다. 내가 변하고 성장하는 만큼 같은 자리에 머물러 있지 않으니 만나는 사람도 계속 바뀌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함께하게 되는 인연들은 그런 삶의 변화가 나와 비슷해 서로를 여전히 이해하게 되는 사람들인 것 같다. 어쩌면 딱 나 정도의 기준으로 삶을 살아가고 있는, 또는 그런 나를 이해하고 감당할 수 있는 사람들일 것이다.
그러니 누군가와 더 이상 함께 못하게 되는 일에 너무 큰 의미를 두거나 마음 아파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오히려 그런 헤어짐은 나에게 더 좋은 인연을 찾아가게 하는 여행의 시작이 되어 줄 수도 있으니 말이다.
이젠 지나간 인연들은 감사하게 여기며 마음 한구석에 가만히 놓아두기로 했다. 함께 지내는 동안 무엇이라도 내 삶에 의미가 되어 주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요즘 조용해진 나의 핸드폰과 일상이 가르쳐 준 아주 소중한 깨달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