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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론도 Oct 27. 2023

이별을 대하는 자세

헤어짐의 의미


고요한 하루. 울리지 않는 핸드폰.


전에는 누군가와 수시로 연락하고 만나는 일상이 익숙했는데 요즘엔 별다른 약속이나 일정이 없는 날은 핸드폰도, 나의 일상도 조용한 편이다.


예전의 나였다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인데 요즘엔 이런 조용한 시간들이 오히려 익숙하고 편안하다. 정리되지 않았던 복잡한 감정들을 하나하나 정리해 주기까지 해서 이런 시간들을 더 좋아하게 된 것도 있다.


스무 살 때 집을 떠나 대학교 기숙사 생활을 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내 삶은 늘 새로운 환경과 사람에 적응해야 하는 떠도는 삶이었다.


사람들과 편해지기까지 감당해야 하는 불편함과 긴장감이 좀 덜어질 때가 되면 다시 떠나갈 준비 해야 했고, 그러다 보니 사람과의 관계에서 편안한 안정감을 별로 느끼며 살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나는 늘 어떠한 곳에서든 여행의 마지막 날을 사는 느낌이었다. 너무 마음에 드는 곳을 만나 더 머물고 싶지만 아쉽게 돌아서야 하는 여행의 마지막 날처럼.


채워지지 않는 갈증은 늘 사람을 애쓰게 만든다. 마음도 몸도 어딘가에 이젠 정착하고 싶어 애처롭게 애쓰는 나를 마주한 어느 날 그 모습이 안쓰러워 잠시 멈추자 다짐했던 것 같다.


그러면서 삶을 돌아보니 나뿐만 아니라 모든 이들이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잠시 위로가 되기도 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사람과 만나고 헤어지는 일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변화가 아닐까 싶다. 삶이 늘 흘러가듯, 각자가 집중해야 할 상황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 주제가 서로 다른 만큼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시간도 줄어드는 것 같다. 그런데 가끔은 그 자연스러운 변화가 사람의 감정을 마구 흔들어 놓을 때가 있다. 때로는 그립고, 외롭고, 슬프게 만들기도 한다.


누군가와 곁에 함께하다가 그렇지 못하게 되는 것에 불편한 마음이 들 때도 있었다.  그런 감정들을 감당하기 어려울 때면 그 책임을 누군가에게 넘기기도 했었고, 가끔은 지나치게 내 탓으로 돌리기도 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렇게 서로 다른 길을 가게 되는 건 누구의 잘못도 아닌 그냥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는 거였다.


처음 함께하고 싶어 졌던 이유를 더 이상 찾지 못하게 되었을 때, 삶을 대하는 가치관과 태도가 다름을 깨닫게 되었을 때 자연스럽게 그리되는 것 같다.


살면서 나다운 삶을 깨달아 가고, 나의 색깔을 더 선명하게 찾아 갈수록 내 곁에 함께하는 이들도 나와 비슷한 사람들로 채워지기 마련이다. 내가 변하고 성장하는 만큼 같은 자리에 머물러 있지 않으니 만나는 사람도 계속 바뀌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함께하게 되는 인연들은 그런 삶의 변화가 나와 비슷해 서로를 여전히 이해하게 되는 사람들인 것 같다. 어쩌면 딱 나 정도의 기준으로 삶을 살아가고 있는, 또는 그런 나를 이해하고 감당할 수 있는 사람들일 것이다.


그러니 누군가와 더 이상 함께 못하게 되는 일에 너무 큰 의미를 두거나 마음 아파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오히려 그런 헤어짐은 나에게 더 좋은 인연을 찾아가게 하는 여행의 시작이 되어 줄 수도 있으니 말이다.


이젠 지나간 인연들은 감사하게 여기며 마음 한구석에 가만히 놓아두기로 했다. 함께 지내는 동안 무엇이라도 내 삶에 의미가 되어 주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요즘 조용해진 나의 핸드폰과 일상이 가르쳐 준 아주 소중한 깨달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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