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믿지 못하는 건
새로운 만남이 두려울 때
임신을 한 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남편 직장 근처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이사 후 얼마 되지 않아 첫째를 출산했고, 아는 사람 하나 없었지만 엄마라는 공통점 하나만으로도 다른 엄마들과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
그렇게 아는 사람들이 늘어가니 함께 어울리는 시간도 서서히 많아지게 되었다.
" OO야 뭐 해? 시간 되면 우리 집에 밥 먹으러 와~! "
나는 종종 사람들을 초대해 집에서 함께 식사를 하곤 했다. 어린아이를 돌보며 함께 먹을 음식을 준비하고 꼬마 손님들까지 맞는 일은 그나마 남은 체력을 쥐어짜야 가능한 꽤 번거로운 일이었다.
그래도 그때는 그 수고스러움을 감수하면서도 누군가와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던 것 같다.
늘어난 식구들 먹여 살리느라 타지에서 전보다 더 바쁘게 살아가야 했던 남편은 늘 자기 쉴 시간도 부족해 보였다. 육아의 힘듦을 알아달라 말하기엔 나만큼 지쳐 보이는 남편이었기에 그저 힘들고 외로운 마음은 온전히 혼자 감당해야 했던 그때였다.
그래서 어쩌다 그런 내 마음을 누가 알아주기라도 하면 반갑고 고마운 마음에 금세 뭐든지 다 해줄 것처럼 마음을 내어주었던 것 같다. 아무런 경계심 없이.
그런 나의 태도는 좋은 사람들도 만나게 해 줬지만 그걸 이용하려는 이기적인 사람들까지 끌어당겨 버렸던 것 같다.
아이들이 어린이집을 가야 하는 바쁜 아침에 코앞이 편의점인데도 아이가 시리얼을 먹고 가고 싶어 한다고 우유를 빌려달라고 하는 전화를 받았을 때가 있었다.
매번 아파트에 과일장사가 오는 날이면 으레 나에게 과일 사는 것을 부탁하는 사람도 있었다. 충분히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들을 그들은 나의 친절함을 이용해 이해하기 어려운 부탁들을 서슴없이 하곤 했었다.
또 어떤 사람은 좋은 사람이라 생각해서 가까워졌는데 알고 보니 주변 사람들 돈을 아무렇게나 빌려 쓰고 돌려주지 않는 사기꾼으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길래 도움을 주었더니 오히려 내 주변 사람들에게 더 큰 피해를 주어 나를 난처하게 만든 경우도 있었다.
좋은 마음으로 내가 베푼 친절이 나에게 큰 실망으로 다가오는 순간들이었다.
처음에는 그 사람들을 탓해보려 했다. 나의 일상을 피곤하게 만드는 에너지 뱀파이어 같은 그 사람들이 잘못한 거라고 애써 위안 삼으면서 말이다. 그런데 습관은 무서웠다.
나는 그러다가 결국 또 나를 탓하고 있었다.
좋지 않은 인연을 미리 알아보지 못한 나를, 말도 안 되는 부탁들을 거절하지 못하고 들어줬던 나를, 마음이 강하게 거부하고 있는데도 그 마음을 무시하고 남을 위해 더 애쓰고 살았던 나를 말이다.
나의 무지와 어리석음이 부끄러워 누구를 제대로 탓해보지도 못했던 것 같다.
그때부터였다. 새로운 만남에 냉소적이여 지고 잔뜩 경계심이 생겨버린 건. 남을 믿지 못하는 마음보다 사람에 대해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 없을 것 같은 나에 대한 불신이 가장 큰 이유였다.
누군가를 알게 돼도 내가 본모습이 진짜 모습일지 의심하게 되었고, 그 의심은 더 큰 두려움을 만들어 그 누구에게도 쉽게 마음을 주면 안 되겠다는 결심을 하게 만들었다.
사람에 대한 안 좋은 기억들이 새로운 만남에 대한 기대심마저 없애버리게 되면서부터 나는 점점 더 혼자만의 시간을 선택했던 것 같다.
그 시간 동안 내가 했던 건 나를 힘들게 한 사람들을 이해하려는 노력이었다. 그들을 이해해야 내가 힘든 기억들을 함께 떠나보낼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무리 노력해도 마음이 달라지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나에게 다가오는 사람들을 경계했고, 알 수 없는 두려움에 믿지 못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나는 여전히 나를 원망하고 용서하지 못하고 있었다. 여전히 사람 볼 줄 몰랐던 나를 탓하고 있었고, 다시 누군가를 만나도 그런 일이 반복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없는 상태였다.
정작 내가 믿지 못하는 건 타인이 아닌 나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누군가에게 만만하게 보이고 휘둘렸다는 나의 피해의식이 만든 나에 대한 깊은 불신이기도 했다. 그동안 내가 나를 믿지 못해 이렇게 외롭고 두려운 시간들을 보내고 있었다니 놀라울 뿐이었다.
그러면서도 왠지 마음에서는 안도감이 느껴졌다.
이유를 제대로 모르면 그 두려움은 점점 커지게 되어있다. 그래서 무언가 두려움이 있을 때는 이유를 명확히 아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그것만으로도 나아질 희망이 생기는 법이니까.
두려움이라는 것은 어쩌면 형체가 제대로 보이지 않을 때 생기는 착각인 것 같다. 그 두려움을 제대로 마주하고 바라보면 그건 오해일 뿐일 수도 있는데 말이다.
참 오랫동안 힘들고 답답했는데 그걸 붙들고 산 덕분에 나는 두려움을 극복하는 법을 배울 수 있었던 것 같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피하지 않고 문제를 마주해 보는 것. 미련해 보일지라도 그걸 해결해야 또 다음을 살아갈 수 있는 거니까. 이게 내 삶의 속도가 느린 이유이기도 하다.
융통성이 없는 나는 늘 정면돌파다. 머리 써서 쉽게 가려하면 오히려 더 꼬여버리는 게 인생이다.
알 때까지 붙들고 있으면 결국 알 수밖에 없다. 그리고 아는 것은 더 이상 두렵지 않다.
이게 내가 두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이었다.
나는 이제 누군가를 만나는 일이 두렵지 않을 것 같다. 그 누구보다 내가 나를 믿어주고 응원해 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