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남편은 올해로 12년 차 부부가 되었다.
지금은 평화로운 결혼생활이지만 우리 부부에게도 큰 위기가 닥친 적이 있었다. 이혼하는 부부들이 가장 많이 이야기하는 이혼 사유가 왜 '성격 차이' 인지를 알게 되었던 건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일일이 설명하기 어려운, 살면서 느꼈을 수많은 감정들을 아우르기에 그것보다 적당한 표현은 없는 것 같다.
내가 만약 그때 이혼을 선택했다면 나 또한 그냥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궁금증으로부터 나 자신을 보호하기에 그만큼 효과적인 대답은 없으니 말이다.
직장인들이 가슴속에 사표를 품고 사는 것처럼 부부들도 사표처럼 '이혼'이라는 마침표를 상상하며 사는 때가 있다. 하나였다가 둘이 되기로 결심했던 그 마음이, 둘이어도 하나같을 때가 많아지면 결국 다시 혼자였던 때로 돌아가고 싶어지는 것 같다. 함께여도 외롭다면 더 이상 함께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 또 인간관계야? 김 여사! 나한 테나 잘해. 괜히 아줌마들끼리 어울리면서 돈 쓰고 스트레스받지 말고!"
내가 아이를 키우며 엄마들과 지내는 과정에서 힘든 마음을 이야기할 때면 남편이 입버릇처럼 했던 말이다. 나는 내가 어쩔 수 없는 그 관계들이 버겁다 말하고 있는데, 남편은 아줌마들과 어울려 다니면서 돈만 쓰고 스트레스를 사서 받는다는 식으로 늘 그렇게 나의 문제처럼 말하며 나를 한심하게 바라봤다.
'내가 일하느라 얼마나 힘든지 아냐고, 우리 가족을 혼자 먹여 살리느라 얼마나 버거운지 아냐고, 집에서 쉬면서 배부른 고민하고 있다고' 나에게 말하는 것 같았다.
그럴 때면 나는 '그래, 내가 맞벌이하는 사람도 아니고, 돈 벌러 나가는 것도 아닌데 외벌이 하는 남편한테 힘든 얘기까지 늘어놓으면 안 되겠구나.' 하며 더 이상의 말은 삼키게 되었다. 그러면서도 속에서는 '당신만큼 내 생활도 얼마나 피곤하고 힘든지 알기나 해? 너만 힘드냐!' 하고 원망을 하기 일쑤였다.
엄마들의 삶은 가정주부, 워킹맘 구분할 것 없이 매 순간이 판단과 선택의 연속이고 그에 대한 책임감 또한 늘 무겁게 따라다니는 참 고단한 삶이다. 엄마들뿐만 아니라 양육을 담당하는 부모라면 모두가 그러할 것이다. 아이를 위해 쓰는 에너지는 상상이상이다.
밖에서 돈을 벌기 위해 일하는 삶도 고단하겠지만 육아를 담당하는 일 또한 그것에 비해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정해진 시간에 출근했다가 퇴근하지 않는다 뿐이지 최고의 스트레스를 견뎌야 하는 고난도의 직종이 엄마의 삶이 아닐까 싶다.
남편과의 대화는 늘 이와 비슷한 맥락이었다. 한 번은 내가 피곤이 쌓이고 스트레스가 극에 달해 장염이 온 건지 토하고, 설사하고를 반복하다 지쳐서 방바닥에 누워있는데 남편은 자기 어깨가 너무 아프다며 나에게 괜찮아졌으면 좀 봐달라고 했다. 나는 그런 남편의 행동을 보며 '저 사람이 제정신인가?' 싶었다. 눈물이 울컥하고 기가 막혀 그냥 입을 다물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 내가 고통스러워하는 게 눈에 안 보이는 걸까? 어쩜 저렇게 이기적이지? 내가 이렇게 아파서 누워있는데 이런 내 고통보다 자기 어깨 근육이 아픈 게 더 급한 건가?'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남편의 증상보다 그때의 내 상태가 더 심각했는데 남편에겐 그런 나보다 스스로의 불편함이 더 크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너무 기가 막혀서 남편에게 물었다. " 나 지금 너무 힘든데 어깨를 꼭 지금 봐줘야 하는 거야?" 했더니 남편은 "내가 얼마나 어깨가 아프면 그러겠어. 하기 싫으면 말아."라며 오히려 누워있는 나에게 서운함을 내비쳤다.
무엇을 소비하는 일에서도 비슷했다. 나의 의견과 결정은 남편의 허락을 맡아야 그제야 비로소 가능했고, 그 기준에 합당하지 않으면 무시당했다.
누굴 탓하겠나. 연애할 때는 이런 자기 주관 뚜렷하고 당당한 모습이 좋아 함께했는데 결혼을 해보니 그게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성향의 좋은 겉모습이었을 줄이야.
내 의견과 마음이 무시당한다고 느껴지는 일이 쌓여갈수록 어느 순간 나는 기대감이 사라지고 심지어 무기력해지기 시작했다.
내가 남편을 이해하고 배려했던 마음은 나에겐 돌아오지 않는 마음이었다. 그게 참 사람을 외롭고 서글프게 했던 것 같다.
연애할 때도 몰랐던 건 아니다. 다만 그것보다 좋은 모습이 더 커 보였기에 함께하기로 마음먹었을 뿐. 자기의 가치관이 분명했던 만큼 자신의 생각과 마음에 더 집중되는 사람이었다. 자기 의사 표현이 확실한 사람이라 누군가도 그렇게 말해줘야 알아듣는다는 걸 내가 그때는 몰랐던 것 같다. 내가 말하기 전에는 궁금하지 않을 내 마음도 온전히 내 몫이 될 거라는 것도.
함께여도 외로운 마음이 들어 이 사람과의 결혼생활이 자신 없어져갈 즈음 나는 결정해야 했다. 살든지 그만두든지, 이 사람을 바꾸든지, 내가 바뀌던지 말이다. 상대를 바꾸는 건 확률이 낮다. 내가 상대를 감당할 수 있는 사람으로 바뀌는 게 오히려 빠르겠다는 판단이 섰다.
나는 그때부터 우리 부부를 위한 건강한 싸움을 시작했던 것 같다.
내가 늘 속으로 삼키던 이야기들을 꺼내보기로 했다. 말하지 않고 알아주기만을 바랐던 마음들을 남편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전달해 보기로 했다. 내가 그렇게 피하고 싶었던 싸움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냥 알아서 생각하고 파악해서 배려했던 그동안의 나와는 다른, 남편이 알아주지 않는 그 마음을 일일이 표현해서 전달하는 일은 나에게 참 어려운 일이었다. '이런 것까지 얘기해야 알아듣나?' 하는 것들까지 표현하려니 못하는 영어로 외국인에게 말하는 것처럼 답답하고 서툴렀다.
말하기 전에 눈물이 왈칵 쏟아지기도 했고, 말하고 나서 후련하기보다 오히려 더 마음 불편했던 적도 많았다. 남자가 알아듣는 언어는 여자와 다르다는 걸 그때 새삼 알게 되었다. 오빠가 둘이나 되는 내가 남자의 언어가 그렇게 어렵게 느껴질 줄은 몰랐다.
처음 꺼내는 이야기들을 남편이 순순히 받아들일 리 없었고, 그렇게 서툰 표현을 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우리는 자주 싸웠던 것 같다. 일주일, 2주일 동안 서로 말없이 지낸 적도 있었고, 참 많은 감정 소비를 하며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다. 하지만 가끔은 침묵이 많은 말보다 더 효과적일 때가 있었기에 그저 참고 기다렸던 것 같다.
멈출 수 없었다. 내가 남편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꼭 넘어야 할 산이었다. 생각해 보면 우리 부부에게 위기의 순간이 찾아왔던 건 너무 달라서도 있지만 너무 비슷해서도 있었다. 나중에 남편과 이야기하면서 알게 되었는데 남편 또한 나와 같았다고 한다. 말 못 하고 삼키던 말들이 많았다고.
서로가 꾹꾹 눌러 참아내던 말들을 내가 판도라의 상자를 열면서부터 우리는 모두 쏟아내기 시작했던 거다. 그게 처음엔 싸움이었고, 지금은 대화고, 소통이 되었다.
우리 부부의 문제는 정작 나눠야 할 말들을 서로 삼키며 살았다는 거였다. 그래서 싸우더라도 그 싸움을 멈추지 않았던 것이 다행이라 여겨진다.
그 시간들 덕분에 우리 부부는 이제 더 이상 싸우지 않고 대화하는 법을 알게 되었다. 상대의 마음을 짐작하고 맞춰야 하는 피곤한 일도 없어졌다.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게 되었고, 그것을 들어주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부부 싸움은 어쩌면 서로 더 잘 살아보기 위한 표현의 시작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함께여도 외롭지 않으려고 함께하는 법을 찾아가는 과정이 아닐까.
서로 싸우는 상황을 피하려 너무 많은 말을 삼키고 살면 결국엔 싸우는 걸 뛰어넘어 남이 될 수도 있는 것 같다. 그러니 어렵다고 포기하지 말고 할 수 있는 데까지는 최선을 다해 마음을 표현하며 살아야 하는 것 같다.
아직 기회가 남아있을 때 싸움도 가능한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