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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론도 Nov 02. 2023

혼자여도 괜찮아

외로움은 하늘이 주신 기회다.



첫째 딸아이가 여섯 살이 되던 여름, 우리 가족은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했었다. 그러면서 어린이집에 다니던 딸은 유치원으로 옮기게 되었고, 그렇게 새로운 곳에서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학기 초에 옮겼으면 좋았을 텐데 학기 중에 들어가게 되는 거라 잘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이었다.      

‘남자아이들이 대부분이었던 어린이집에서도 씩씩하게 잘 적응했으니까 여기서도 잘 적응하겠지.’ 애써 그렇게 믿으며 잘 적응해주기를 바랐던 것 같다.   

  

그렇게 새로운 유치원에서 생활한 지 일주일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일주일을 별일 없이 잘 다니는 듯하여 안심했는데 등원을 해야 하는 아침 시간, 딸이 무슨 일인지 기운이 없어 보였다.  

   

“OO야, 어디 아파? 괜찮아?”     


물어보며 딸의 얼굴을 보는데 하얗게 핏기가 하나도 없는 얼굴이었다.     


“ ... ”   

  

딸은 축 늘어져서는 옆으로 누워 눈물만 뚝뚝 흘리고 있었다.     


“엄마, 나 유치원 안 가면 안 돼?”

“왜?”

“그냥…. 안 가고 싶어….”      

    

그렇게 말하고 나서 갑자기 속이 울렁거린다더니 먹은 것도 없는데 헛구역질을 시작하는 딸이었다. 그 후 화장실에서 몇 번을 토하고 기진맥진해 누워있는 딸아이를 보며 지난 일주일이 아이에게 어떠한 시간이었는지를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전의 어린이집은 수시로 산책하러 나가고, 친구들과 신나게 놀 수 있는 행사가 많은 곳이었다. 한 반에 아이들이 많지 않았었기에 그만큼 반 친구들끼리도 잘 알고 사이가 돈독했었다. 성별에 상관없이 모두가 어울릴 수 있는 편안한 분위기였다. 딸아이가 등원하는 아침이면 반 아이들이 우르르 달려 나와 인사를 해주기도 했었다.     


그런 환경이 너무 익숙해져 있는데 새로 옮긴 유치원에서는 먼저 놀자고 다가가도 쉽게 친해지기가 어려우니 나름 스트레스를 받았던 모양이었다. 가만히 지쳐 보이는 딸아이를 보고 있는데 그 마음이 어떠할지 충분히 알 것 같아 안타깝기만 했다.     


그렇다고 서둘러 누군가를 집에 초대해 내가 딸의 친구를 만들어 주고 싶지는 않았다. 힘들어하는 딸을 보는 내 마음이 불편하다고 딸이 겪어내야 할 경험의 기회를 빼앗을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마음에 맞는 친구를 찾아보고 사귀는 건 딸이 해야 할 몫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엄마로서 아이에게 도와줄 수 있는 건 친구를 사귀기 전까지 비어 있는 시간을 스스로 채워갈 수 있게 함께 방법을 고민해 주는 거였다. 친구의 빈자리를 대신 채워 주면서 말이다.  

   

“엄마, 다들 친한 친구들이 있는데 나만 없어. 나만 놀 사람이 없어.”    

 

유치원에서 하원을 한 딸이 잔뜩 풀이 죽어서 한 말이었다.   

  

“OO야, 엄마도 이곳에서 아는 사람이 아직 없어. 그런데 누구와 친구가 되는 일은 시간이 필요해. 친구가 너에게 먼저 다가오지 않는 건 네가 싫어서가 아니야. 아직 너를 잘 몰라서 낯설어서인 거지. 그러니 다른 친구들이 널 알아가는 동안 너는 그냥 네가 즐거운 것들을 찾아 재밌게 하면 되는 거야. 너도 친구가 재밌게 놀고 있으면 관심 가고 같이 놀고 싶어지잖아. 그때까지 네가 뭘 하고 놀지를 한번 생각해 보자.”  

   

아마 예전의 나였다면 내가 먼저 엄마들에게 다가가 친해져서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해 아이에게 친구들과 친해질 기회를 만들어줬을 것이다. 하지만 부모라고 언제까지 아이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을까? 아이에게 진짜 중요한 게 무엇일지를 생각해 보니 나는 그저 아이를 옆에서 기다려 줄 수밖에 없었다.    

 

“엄마, 유치원에 자유롭게 놀 수 있는 공간이 있는데 그중에 미술 영역이 있거든? 거기에서 놀고 싶은데 다른 친구들이 일찍 차지해버려서 놀 수가 없어.”     


딸아이가 그나마 흥미를 느낀 놀거리는 그림을 그리고 만들기를 하는 거였다. 그런데 여자아이들에게는 인기가 많은 공간이라 미술 영역을 차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닌 것 같았다.     


“그래? 거기서 놀고 싶은 친구들이 많은가 보네~ 다른 친구들보다 네가 더 서둘러야겠다. 내일은 더 빨리 움직여서 먼저 미술 영역으로 가보자!”  

   

마음먹는다고 쉽게 차지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니었는지 그 후에도 몇 번이고 실패했다고 실망한 표정으로 하원을 하는 딸이었다.     


그러다 어느 날은 그곳에서 놀 방법을 터득했는지 미술 영역에서 놀았다고 자랑을 했다. 자기가 그리고 만든 것들을 선물이라며 나에게 주기도 하면서 말이다.     


친한 친구가 생기기 전까지 딸은 매일 그 영역에서 그리고 만든 것들을 하원 할 때 나에게 선물해 주곤 했다.     

“우와~~ 오늘은 이걸 만든 거야? 엄마 마음에 무척 든다~ 고마워~”     


나는 선물을 받을 때면 크게 반응을 해주었다. 그리고 아이가 매일 들고 온 선물들을 버리지 않고 차곡차곡 모아두었다. 그렇게 좋아하는 모습을 보더니 딸은 엄마에게 줄 생각으로 무언가를 그리고, 만드는 일을 유치원에 가는 이유로 삼기 시작했다.  

   

우린 매일 자기 전 하루에 있었던 일을 대화하며 잠들기도 했다. 그러다 너무 이야기가 길어져 잠드는 시간이 늦어지기도 하면서. 그래서 하루 중 행복했던 일 하나와 속상했던 일 하나를 꼽아 두 가지만 이야기하고 자기로 약속했었다. 딸이 잘 적응할 때까지 마음을 보살펴주고 싶어 만든 우리만의 약속이었다.     


그렇게 시간은 흘렀고, 혼자서 즐겁게 그리고 만들며 노는 딸이 재밌어 보였는지 관심을 두는 친구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 친구들에게 자신이 그린 그림을 선물해 주기도 하고, 같이 만들기도 하면서 딸은 그렇게 자기만의 방식으로 서서히 유치원에서도 친구를 만들어 가고 있었다. 더는 내가 친구의 자리를 대신 채워 줄 필요가 없을 정도였다.     


나는 딸이 누군가와 친해지고 싶어 더 그것에 집중하기보다, 스스로 할 수 있는 작은 성취감들을 느끼며 혼자서도 꿋꿋하게 그 시간을 견뎌내길 바랐던 것 같다.     


혼자서도 즐겁고 행복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면 알아서 곁에도 함께하고 싶은 누군가가 다가오게 될 테니 말이다.     


적응하기까지는 힘들었지만, 그 덕분에 딸은 누구와 함께인 시간도, 그렇지 않은 시간도 충분히 즐길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혼자만의 시간에도 자신을 위해 하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아졌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함께하고 싶어지는 사람은 대부분 비슷한 것 같다. 조급하게 누군가의 마음을 얻으려는 사람보다는 스스로 즐겁게 시간을 보낼 줄 아는 여유로운 사람에게 끌리게 되어있다.   

  

작은 성취감이라도 반복해서 경험하다 보면 자신감이 생기고, 그런 행복하고 건강한 에너지는 사람들을 끌어당기기에, 충분한 매력이 되어 주는 것 같다.     


삶에서 외로운 시간이 찾아오는 건 어쩌면 더 많은 행복을 경험할 기회를 하늘이 주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가끔은 혼자여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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