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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론도 Nov 03. 2023

아이는 아이답게

마음 읽어주기


축 처진 어깨, 어두운 얼굴, 터벅터벅 힘없이 걷는 발걸음, 푹푹 내쉬는 한 숨소리.   

   

교문 밖을 나서는 모습만 봐도 그날의 기분을 알 수 있을 정도로 아들은 감정이 온 몸으로 드러나는 투명한 아이다.     


“OO야 무슨 일 있었어?”    

 

아들에게 물어봐도 대답이 없다.    

 

“있다가 기분 좀 나아져서 말하고 싶어지거든 엄마한테 언제든지 말해~”     


자꾸 물어본다고 대답을 들을 수 있는 기분이 아니기에 이럴 땐 잠시 한발 물러나 조용히 기다려 줘야 한다. 집에 도착해서 현관을 들어서면서도 여전히 아들의 어깨는 축 처져 있다. 신발을 벗자마자 현관 앞 방바닥에 힘없이 그대로 누워버리길래 그냥 잠시 그대로 두었다.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이내 거실에 있는 의자에 축 처진 빨래처럼 몸을 기댄다. 좋아하는 게임도, 유튜브도, 상어 장난감도 눈에 안 들어오는지 계속 한숨만 쉬는 아들이다.  

   

나는 이제 아들이 어떻게 해야 자기 말을 시작할지 알기에 재촉하지 않는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아들은 스스로 입이 근질거려서 말을 시작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니 역시나 아들이 말을 하기 시작했다.   

  

“엄마, 오늘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


그제야 나는 ‘드디어 입을 열었네.’ 하며 기다렸다는 듯 이유를 물어봤다.    

 

“왜? 무슨 일이 있었는데?”     

“우리 반에 OO라는 친구가 있거든? 내가 진짜 힘들게 만든 걸 그 친구가 망가뜨렸어. 내가 진짜 힘들게 만든 거였는데. 집에 와서 엄마한테 보여주고 싶었는데….” 

   

말하면서도 다시 화가 올라오는지 아들은 눈물을 글썽거리더니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해졌다.     

인정욕구가 강한 아이고 칭찬받는 걸 좋아하는 아이인데 그럴 기회가 날아가 버렸으니 얼마나 속상하고 원망스러웠을까 싶어 그냥 말없이 안아주었다.  

   

“뭘 만들었는데? 가지고 왔어? 엄마한테 보여줘 봐!”   

  

아들이 조금 진정이 되고 나서 만든 것을 꺼내 보였는데 가방에서 꺼낸 것은 아이클레이 작품이었다.

좋아하는 바다 동물들을 만들어 아기자기 꾸며놓았는데 그중에 가장 좋아하는 고래상어 모양이 찌그러져 있었다.     


“OO야, 너무 잘 만들었는데? 엄청 열심히 만든 게 느껴진다~ 어쩜 이렇게 하나하나 잘 만들었어? 엄마 깜짝 놀랐네~”   

  

고래상어가 눌린 모습은 일단 말하지 않았다. 바다 동물을 하나하나 만들며 고생했을 그 마음을 알아주는 것이 먼저였다. 

    

“엄마, 내가 이거 만드느라 진짜 고생했거든? 그런데 여기 봐봐! 고래상어 하얀 점까지 하나하나 붙였는데 이렇게 눌려 버렸잖아.”   

  

아들은 그제야 속상했던 마음을 하나하나 털어놓기 시작했다.    

 

“아이고, 그러네~~ OO 이가 제일 좋아하는 고래상어가 하필 찌그러졌구나~ 엄청 속상했겠다. 정성이 많이 들어가 보이는데~”


아들은 다시 화가 치미는지 얼굴이 일그러지며 그 친구에 대한 원망의 말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 친구가 사과했어?”     

“사과는 했는데….”     


사과 한마디로 마음이 풀리기엔 아이의 속상함이 더 컸을 것을 안다. 그 속상함을 풀어줄 정도로 사과를 정성스럽게 하는 것은 그 나이 또래에게 바랄 수 없는 일이다.     


“하긴 맞아~ 사과를 해도 속상한 게 금방 없어지는 건 아니니까~ 조심 좀 하지~ 그 친구가 잘못했네~”     

“그치? 걔 때문에 힘들게 만든 내 고래상어가 이렇게 돼버렸어. 진짜 너무 짜증 나.”     


아들은 아직도 분이 덜 풀렸는지 여전히 씩씩대고 있었다.  

   

“그런데 OO야, 엄마는 네가 집에서 아이클레이로 고래상어 만드는 거 많이 봤잖아. 찌그러졌어도 어떤 모습이었을지 알 것 같아. 그러니까 너무 속상해하지 마!~ 찌그러졌어도 이만큼 만든 네가 자랑스럽고 엄마는 대단해 보여.”     


그러고는 아들을 다시 한번 안아주었다.    

 

“혹시 그 친구가 일부러 그랬던 것 같아?”     

“아니, 그건 아니야.”     

“그렇구나. 하긴 일부러 그런 게 아니어도 열심히 만든 게 그렇게 되면 엄마 같아도 속상할 거 같아. 그런데 실수로 그런 건 어쩔 수 없긴 하다. 그치?”     

“ 그렇긴 한데….”     


조금은 감정이 누그러진 것 같았다.  

   

“실수로 그런 거라 친구도 그렇게 될 줄 몰랐을 거야. OO도 가끔 누나가 만든 거 실수로 그렇게 했던 적 있었잖아. 그럴 때 누나가 엄청나게 화내면 너도 당황스럽고 미안하고 그랬었지?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데 너무 화내면 민망하기도 하고. 일부러 그랬다면 그건 용서하면 안 되지만 실수로 그런 거면 한 번은 이해해 주자.”     

이렇게 말해도 당연히 그러겠다고 당장 대답할 아들은 아니었다. 그래도 듣고만 있었어도 그거면 된 거다.

     

“이거 아빠한테도 찍어서 보내드려야겠다. 너무 잘 만들어서 아빠 깜짝 놀라시겠는데?”     

“그래? 아빠가 깜짝 놀랄까?”     

“그럼~ 너 나이에 이렇게 만들 수 있는 애들 없어~!”     


아들은 하교했을 때보다 기분이 조금은 나아진 듯 보였다.   

  

‘이제 괜찮아졌구나~’ 속으로 다시 숨을 고르고는 아들이 좋아하는 마리오 카트를 같이 하기로 했다. 게임을 하면서 아들이 다시 수다스러워진 걸 보고서야 이제 됐구나! 안도감이 들었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가끔 밖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씩씩거리고 들어올 때가 있다. 속상한 일이 있었거나 마음대로 안 된 일이 있어 아쉬웠거나 이유는 다양하다.   

   

그렇게 밖에서 스스로 해결되지 않은 감정이 있을 때 아이는 고스란히 그 감정을 데리고 나에게 온다.     

그럴 때 가장 우선시 되어야 할 것은 바로 아이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수용해 주는 것이다. 그 감정이 충분히 그럴만했다는 공감과 있는 그대로의 그 감정 상태를 받아들여 주는 것. 그렇게 자신의 감정에 대한 정당성을 인정받고 나면 아이는 더 안심하고 자신의 감정을 마음껏 쏟아냈던 것 같다.  

   

머리와 마음에 꽉 차 있던 부정적인 감정이 그렇게 비워내 지면 아이는 이내 평온해져서 그제야 다른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상태가 된다. 아이에게 알려주고 싶은 이야기는 이때 해도 늦지 않는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가끔 나도 아이의 나이였던 그때로 돌아가게 된다. 그럴 때면 그때의 나는 어떤 아이였는지, 무엇에 속상하고, 무엇이 필요했었는지를 떠올려 본다.


어릴 때 어떠한 감정이든 수용 받아보는 경험을 하지 못하면 내 감정을 타인에게 드러내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지는 것 같다. 부정적인 감정을 건강하게 표현하는 법을 배우지 못하면 커서도 늘 좋은 모습만 보이려 애쓰며 살게 된다. 엄청난 스트레스를 감당하며 말이다. 

    

아이는 아이답게 커야 어른이 되어서도 어른다워질 수 있는 게 아닐까. 내가 어른으로서 해줄 수 있는 역할은 아이에게 그러한 기회를 주는 것이다.   

  

‘어른아이’가 아닌 진정한 어른이 될 수 있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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