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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쿠나 Aug 21. 2021

『지나온 30년,우리는 어디를,얼마나 걸어왔나』

영화, 배트맨 시리즈 그리고 세명의 조커를 읽다

마크 트웨인의 저서 왕자와 거지의 주인공인 두 사람은 놀랍도록 닮은 외양 때문에 각자의 옷을 바꿔 입고 서로의 삶을 살아본다. 이 소설에 많은 이가 공감할 수 있었던 것은 플롯의 특별함 보다 인간의 마음속에 내재돼 있는 양가적 본성을 작가가 섬세하게 포착했기 때문이리라.


마크 트웨인, 어린 시절 그의 이야기보따리 덕분에 행복했다


인간의 양가적 본성을 드러낸 것은 문학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성서의 구약에 나오는 이스라엘의 지도자 모세는 이집트 왕자의 신분을 내려놓고 민족의 대 탈출을 위해 광야로 나아갔고, 성서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예수는 신이 인간의 몸으로 친히 강림해 가장 낮은 형태의 죽음을 택하며 인류 문명과 종교사에 선명한 흔적을 남겼다. 인도의 싯다르타 역시 왕자로 태어나 깨달음을 위해 철저히 낮은 곳으로 가는 반전의 길을 택하며 인류 역사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성서에 나오는 인류 최초의 인간인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이나, 인류의 첫 살인으로 성서에서 기록하는 친동생을 죽인 가인의 모습 등을 통해 미루어 보면 인류의 DNA 속에는 반전과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 그리고 선과 악의 속성이 이미 날 때부터 깃들어 있다고 느껴진다.


이러한 인간의 본성은 영화 속에서도 자주 차용되고 있다.

어쩌면 영화사에서 가장 오락적이면서 동시에 가장 양가적인 캐릭터, 배트맨과 조커는 대표적인 예이다.



1966년작 배트맨, 솔직히 고백하면 이 시리즈, 애덤 웨스트의 배트맨은 아직 보지 못했다.


DC코믹스의 만화 원작 배트맨은 1960년대에 처음으로 영화화한 시도가 있었다.

미국의 베이비부머 세대에게는 당시의 배트맨이 기억 속에 선명하게 남아있다.

이때의 배트맨은 지금의 철학적 이미지와 다르게 상당히 코믹한 캐릭터로 그려졌다.


이후 1989년, 천재적 감독이자 위대한 예술인 팀 버튼에 의해서 배트맨은 재탄생한다.

미, 소간의 체제 전쟁이 거의 마무리되고, X세대라는 신인류가 발흥하던 당시는 그 이전과 매우 다른 삶을 살고 있었다. 그들은 체제 전쟁에 지쳐 현실을 버리고 떠나는 맹목적 히피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시대와 시스템에 순응하며 안온한 삶을 추구하는 정석적인 화이트 칼라도 아니었으며 사상만으로 피아를 식별하던 습관과도 일정 부분 거리를 두고 있었다.

이런 X세대를 상징하고 새로운 시대를 개관하는데 팀 버튼은 적격이었다. 기성 영화의 문법과는 다른 형태로 자신만의 필모그래피를 만들어가는 감독 팀 버튼에 의해 다시 태어난 배트맨은 베이비부머 세대의 자녀들인 X세대의 마음에 새로운 배트맨 시리즈의 흔적을 남긴다.


팀 버튼의 1089년작 배트맨 1의 조커, 잭 니콜슨


그 흔적의 중심에는 마이클 키튼의 배트맨보다 매력적 악역, 잭 니콜슨의 조커가 있었다.

이전 시대의 영화들이 주인공에 집중했다면 팀 버튼의 배트맨은 주인공보다 어찌 보면 더 주목받는 빌런을 전면에 등장시킨다.

조직의 부두목이었던 잭 네이피어는 보스에게 버려진 뒤, 배트맨에게 일격을 당하면서 치명적인 상처까지 입게 되고 조커가 된다. 잭 네이피어, 아니 조커의 광기는 제동장치 없이 폭주하면서 세상을 향해 분출한다.


아직까지도 가장 인상 깊은, 그리고 가장 몸서리칠 무서움으로 다가오는 악의 현신, 다크나이트 조커


다시 시간이 흘렀다.

1989년, 팀 버튼의 배트맨이 나오고 16년 세월이 지난 2005년, 팀 버튼의 뒤를 잇는 21세기의 걸출한 감독 크리스토퍼 놀란은 ‘배트맨 비긴즈’로 배트맨 시리즈의 바통을 이어받는다.

그리고 2008년,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 다크나이트’로 20년 세월만에 조커와 배트맨은 다시 태어난다.

잭 니콜슨이 보여준 조커의 위상은 조금 과장해서 표현하면 신성불가침의 빌런이었다.

잭 니콜슨 이상의 완벽한 광기를 표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지배적이었던 시대에서 새로운 조커의 탄생은 우매한 시도라는 걱정도 있었다.


하지만 다크나이트의 오프닝 시퀀스를 바라본 관객들은 새로운 시대가 도래한 것을 깨닫는다.


잭 니콜슨의 조커는 조커가 어디서 비롯됐는지 영화 속에 자세하게 나타나 있다.


그러나 2008년, 히스 레저의 조커는 대관절 어디서 이런 절대 악이 등장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자신의 동료를 죽이는 것에 스스럼없는 것은 물론이고, 악행에 대해 이전 세대가 가늠하던 기존의 이유들로는 그 동기를 찾을 수가 없다. 오직 조커 자신만의 기준이 있을 뿐이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악은 관객들에게 잭 네이피어 이상의 공포로 다가온다. 마치 사라진 조커의 이름처럼 이유를 알 수 없는 악의 재림은 더욱 섬뜩하게 관객들의 마음을 때렸다.


호아킨 피닉스의 조커, 잭 니콜슨과 히스 레저와는 또 다른 길을 보여주는 명연기는 관객의 마음을 움찔거리게 한다.


그리고 2017년 조커는 또 한 번 다시 태어난다.

토드 필립스 감독이 연출하고, 호아킨 피닉스가 열연한 영화 ‘조커’에서 나타나는 아서 플렉은 잭 네이피어와는 다른 인물이고, 더불어 2008년 다크나이트와도 다른 형태의 조커를 보여주고 있다.


10년에서 20년 정도의 시간적 간격을 두고 역사에 남을 배우들의 명연기 속에서 조커는 점점 변했다. 영화를 연출하는 기법과 영화를 보는 관객의 시선도 변해왔다. 그리고 그만큼 시대도 변했다.



우리는 악인을 어떻게 바라봤던가.

수학천재? 혹은 예술 혼을 분출하지 못했던 광인의 시선으로, 화가의 꿈을 이루지 못한 히틀러나 미술을 사랑하며 시를 읊었던 네로와 같은 이를 보면서 악인을 규정해왔던 시절이 있었다.

악인은 특별해야 했고, 보통의 우리 속에 숨어있을 수 없어야만 했다. 그들의 외양과 성격은 보통의 우리와 달라야만 했다. 그 편이 마음이 편했다.


히틀러와 네로, 어쩌면 인류사 최악의 인물 둘로 우리는 악인의 이미지를 고정했던 것 아닐가


러나 인류는 점점 깨닫게 됐다.

인간 내면 속에 있는, 스스로 조차 인정하기 싫지만 끝내 부정할 수 없는 내면의 악에 대해서.


범죄 수사의 기법이 발달하고 범죄 심리학의 수준이 높아지면서 거대한 악인이 보여주는 일상의 우리와 다르지 않은 속성에 21세기를 살아내는 이들은 인정한다.

‘인간이 가장 무섭다’라고.


'인류는 어떻게 변해왔고, 시대는 어떻게 달라졌으며 영화는 그런 인류와 시대를 어찌 조망해왔는가' 라는질문을 세편의 영화를 보면서 계속해서 스스로에게 던져봤다.

배트맨과 조커는 지난 세월 변화된, 그리고 여전히 변화하고 있는 인류를 끈질기게 추적해서 보여주고 있다.





작가 '원우씨'와 함께 '네이버 오디오클립 호우시절'이라는 채널로 그 시절 반짝거렸던 때를 추억하며

영화를 리뷰하고 있는 조쿠나입니다.


'호우시절'에서는 토드 필립스의 2017년작 조커부터 크리스토퍼 놀란의 2008년작 '베트맨 다크나이트',

그리고 팀 버튼의 1989년작 '배트맨'을 역순으로 리뷰해왔습니다.

부족한 글에는 다 담지 못한 깊은 감상은 '호우시절'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두 남자의 수다에 여러분을 초청합니다.


호우시절로 오세요.

그때의 우리가 여기에 있습니다.


오디오클립 호우시절

유튜브 영화발골채널 호우시절

호우시절 인스타그램

 



이미지 출처:

사진_영화 '조커', '배트맨 다크나이트', '배트맨1', '애덤 웨스트의 배트맨'

그림_백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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