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 생각해보면 여학생 한 명 보겠다는 이유로 대그빡을 빡빡 깎은 땀내 나는 소년들이 생글거리며 기대에 찬 얼굴로 중앙계단 아래 모여있다는 건 어떤 의미에서는 공포였을 것이다. 입장 바꿔 생각해보면 그 시절 계단을 내려오던 하굣길의 여학생들에게는 참으로 고역이었으리라.
그럼에도 그것은 하나의 놀이였고, 그 놀이의 성패는오직 이민정을 보느냐 마느냐에 달렸었다. 이민정이 당최 누구길래 대관절 이렇게 모여서 불편을 감당해야 하나 싶어 홀랑 집에 가버리고 싶은 마음이 컸지만, 누군가와 다르다는 것이 유난히 되고, 다르다는 이유 만으로 표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자연스레 습득해가고 있었기에 집으로 가는 선택지는 이내 마음속에서 지워졌다.
당시 중학생들의 머리는 사내놈들만 짧게 깎은 것은 아니었다. 가시나들도 단발이라고 해서 귀 밑 3cm를 넘지 않는 것이 학교의 규칙이었다.
이민정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채, 똑같은 옷에 비슷한 머리 모양을 한 수많은 무리들 속에서 누군가를 알아맞추는 것이 도대체 괜찮은 놀이인지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이미 붙어있기로 결심한 이상 다른 생각은 하지 않기로 했다.
그 시절, 그 무렵 또래의 놀이라는 것이 그랬다.
별 것 아니지만 그 무리에서 이탈하는 순간 진짜 별 것 아닌 존재가 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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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잘 못한 것 같다. 정정해야겠다.
이민정은 별 것 아닌 존재가 아니었다.
귀 밑 몇 cm라든지 뭐 이런 것은 평범한 인간들의 범주에서나 적용되는 룰이었다.
퀸이란 그런 존재였다. 다른 이에게 적용되는 제약 따위는 뚫어버렸다.
그녀가 계단을 내려오는 순간, 나는 그것을 바로 알 수 있었다.
저 분이다!
오똑한 코, 짙은 눈썹, 그리고 내 동공의 열 배는 족히 될 것 같은(어쩌면 사실일 수도 있다는 것에 필자는 이 글을 쓰면서도 절망한다. 그저 마음으로나마 위로해 주기 바란다. 내 험난한 세월을) 그녀의 동공은 신기함을 넘어 신비롭기까지 했다. 마치 나를 잡아당기는 것만 같았다. 그 날의 고동치는 심장의 울림과 보람은 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