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고모가 돌아가셨다.
별안간 부고 소식에 나는
”아 그래?“라는 짧은 탄식만 뱉을 뿐이었다.
일 년에 한 번도 볼까 말까 해서라거나
듬직한 풍채와 험악한 표정 때문이라거나
그럼에도 매번 앓는 소리만 하셨던 탓이라거나
혹은 그 외 어떤 이유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나는 별 감흥이 없었다.
그래도 조문은 가야지, 라는 생각이 드는 게
평범하고 건조한 어른이 되어버린 것 같아서
괜히 씁쓸했던 오전이었다.
아버지는 이런 내 심정을 알아채기라도 한 듯
짐짝처럼 애매하게 서있는 나를 데리고
약간은 서두르듯이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마침 제사 의식이 한창이던 식장에 들어서자
아버지는 잘됐다 싶은 표정으로 나를 마주 앉혔다.
꼭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있었다며.
“나의 장례 때에는 불필요한 지출을 최소화해라.
수의(壽衣)는 값싼 양복 한 벌이면 족하다.
평균 장례비용과의 차액만큼 사회에 환원해라.
49제를 지낸 뒤에는 모두 말끔히 태워서
유골은 형태만 갖춘 목재함에 넣어 두어라.
그걸 그대로 할아버지 산소 앞에 묻어라.
한 줌 재로 돌아갈 뿐인 나는
다시는 이제 너의 삶에 개입할 일이 없을 것이다.
그러니 두려워 말고 제사든 성묘든 하지 않아도 된다.
갈 때가 머지않은 것 같은데,
정신이 성할 때 너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어서 좋구나”
나는 도대체 언제부터 들킨 걸까.
장례비용은 모두 허위적이고 과하다는 생각과
제사든 절이든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과
생전에도 내 삶에 더 이상은
당신이 개입하지 않으면 하는 생각들을.
나의 이런 생각들을 알면서도
기꺼이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그는,
그 아버지라는 존재는 도대체 무엇일까.
정작 그렇게 말해버리면
나는 평생 당신을 기억할 수밖에 없잖아,
라는 비뚤어진 생각을 또 한다.
아마 이 생각도 언젠가 들킬 것이겠지.
떠나간 사람과 떠나갈 사람들
그리고 아직은 남겨진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오늘도 울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