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실 ②

by 매리지블루

하지만 3월의 어느 날, 겨울이라고 하기엔 부드럽고 봄이라기엔 쌀쌀한 바람이 부는 그날 밤에 사건이 발생했다.


여느 때와 같이 아내와의 샤워를 위해 정시 퇴근을 하고 집에 들어선 순간, 무언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풍겼다. 아니, 분위기라기보다는 향기랄까. 몽골인들이 평생 드넓은 벌판을 응시하며 시력이 향상됐듯이, 매일 서로의 체취와 체미를 탐하다 보니 우리 부부의 후각과 미각은 일반적인 사람의 것보다 몇 배는 민감해졌기에... 그 친숙하지만 인위적인 향기를 모를 수가 없었다.


언제 어디선가 맡아본 기억이 있는 이 향기는 도대체 뭘까. 구두도 벗지 않고 현관에 우두커니 서서 지난 기억들을 뒤져대길 1분 정도가 지났을 때, 드디어 그 향기의 원천을 떠올려낼 수가 있었다. 그건 아내와의 첫 관계를 가졌던 날 아내의 음부에서 은은히 풍겨왔던 향기였다. 복잡한 주름과 고부라진 털들 사이에서 풍기는 그 재스민 향기가 워낙 이색적으로 느껴져서, 아내에게 혹시 고간에 향수라도 뿌렸는지 물어봤던 기억이 있다. 은근히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아내가 내밀어 보였던 것은 보라색 용기에 담긴 휴대용 여성청결제였다.


그러나 이건 연애 초기 때의 기억이다. 아내는 왜 갑자기 이제 와서 여성청결제를 사용한 걸까. 왜 한마디 상의도 없이, 이미 기분 좋게 달콤한 나의 딸기 케이크에 알룰로스를 뿌린 걸까. 불길한 생각에 잠겨있는 나를 발견한 아내에게 일단 어색한 웃음과 함께 인사를 건넸다. 아내는 내가 그 향기를 맡은 걸 알아채지 못한 것 같았다. 옷가지를 하나하나 벗어젖히면서도 그 향기가 코를 찔러댔기에 나도 모르게 인상이 찌푸려졌다. 만약 나의 불길한 짐작이 들어맞는다면, 여성청결제를 사용한 이유를 물어보는 순간 우리의 관계는 다른 국면을 맞이하게 될 것이었다.


애써 담담한 표정을 지으며 나는 욕실로 들어가 알몸으로 아내와 마주 섰다. 당장이라도 그 향기에 대한 확실한 조사를 해보고 싶었는데, 하필이면 이럴 때 가위바위보를 져버렸다. 어쩔 수 없이 갑갑한 마음으로 아내의 차례가 끝나길 기다린다. 나의 정수리부터 시작해서 귀 뒷부분과 관자놀이 쪽의 냄새를 집중적으로 탐하는 아내의 루틴은, 평소에도 참 길다고 생각했었는데 오늘은 유독 하품이 나올 정도로 지루하고 느릿하게 느껴진다. 그래서인지 아내가 무릎을 꿇고 나의 복숭아뼈와 오금을 거쳐 항문의 축축하고 쿰쿰한 냄새를 들이마실 때까지도 나의 음경은 바닥 타일을 가리키고 있었다.


아내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는 시선이 느껴졌지만, 나는 오히려 더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앞만 보고 있었다. 거울 속에 비친 내 얼굴은 진지하지만 어딘가 멍한 구석이 있어서 그 속내를 나 자신조차 알 수가 없었다. 흉부 쪽에 끈적한 물기가 느껴져 내려다보니 아내의 혀가 내 유륜과 유륜 사이를 왕복하고 있었다. 그 혀가 나의 배꼽을 거쳐 성기에 다다를 때까지도 나는 발기를 하지 못했다.


"오늘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라고 묻는 그녀에게

"오늘 일이 힘들었나 봐."

라는 상투적인 대답밖에 나오지 않았다.


아내는 그제야 흥이 식은 듯 일어나 내 얼굴을 마주 봤다. 그러나 아무리 뚫어져라 동공을 맞댄다 한들, 그 당시의 나와 아내는 서로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아내가 찝찝한 기분을 애써 숨기며 내게 차례를 넘기자마자, 나는 지금껏 엄격히 지켜왔던 모든 루틴을 무시하고 바로 그녀의 음부에 코를 가져다 댔다. 갑작스러운 돌진에 놀란 아내는 뒷걸음질을 쳐봤지만, 세 걸음도 채 딛지 못하고 차가운 욕실 벽에 등을 부딪히며 옅은 신음을 흘렸다. 나는 그 신음의 원인이 그녀의 등에 닿은 차가운 타일인지, 아니면 아래쪽에서 쉴 새 없이 불어오는 뜨거운 입김인지는 알 바가 아니라는 듯, 계속해서 그녀의 음부에 얼굴을 묻고 코를 훌쩍였다.


아내의 애무를 받는 내내 시큰둥한 반응만을 보여서인지 덩달아 건조하게 말라있는 그녀의 성기에서는 재스민 향기만이 더욱 선명하게 풍겨왔다. 나는 그 향기를 확인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녀의 선홍빛 주름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서 더 깊은 곳에 내 코를 박았다. 아직 조금은 물기를 머금고 있는 그곳에서는 재스민보다 더 익숙한 향기가 풍겨왔다. 그건 성인 남성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진한 밤꽃 향기였다. 나는 그 향기를 확인하자마자 넋이 나간 채로 그녀의 배꼽만을 한참 응시했다. 구역질이 날 정도로 진한 밤꽃 향기를 풍기는 그 정액의 주인은 내가 아니었다. 왜냐면 우리 부부는 신혼여행 이후로 한 번도 관계를 갖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내 콧잔등 위로 물이 한 방울 떨어져서 올려다보니, 그녀가 얼굴을 가린 채 흐느끼고 있었다.


"왜 그랬어?"

내가 물었다.

"..."

그녀는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낄 뿐, 대답이 없었다.

"왜 그랬느냐고 묻잖아."

"너는 매번 내 냄새랑 맛만 보고 달아나버리잖아."

"..."

그녀의 대답에 이번엔 내가 침묵했다.

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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