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도 마치지 못하고 욕실을 나온 우리는 발가벗은 채로 식탁에 마주 앉았다. 미안할 것도 없다는 듯이 어깨를 꼿꼿이 펴고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아내가 밉거나 싫지는 않았다. 그저 아내의 이런 행동과 태도가 어떤 심리에 기반한 것인지를 듣고 이해하고 싶었을 뿐, 이 사건을 계기로 관계의 종말을 맞이하는 건 원치 않았다. 이렇듯 분명한 외도의 흔적을 발견하고도 이별이라는 선택지는 철저히 배제하려는 나 자신이 조금은 거대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이 감정은 아내를 향한 초월적인 사랑일까, 아니면 극단적인 나르시시즘일까 고민을 하다 겨우 입을 뗐다.
"당신은 아직 날 사랑해?"
평소라면 윽박지르며 다그치기만 했을 내가 이런 질문을 꺼내니 아내는 적잖이 당황스러운 눈치였다.
"응, 아직은."
"그럼 이제 우리 관계는 어떻게 하고 싶어?"
"뭐가 됐든 나는 당신이랑 이혼할 생각은 없어"
그거면 됐다, 라고 말하며 나는 다시 생각에 잠겼다. 외도를 저지르고 그 사실이 발각됐음에도 나를 사랑한다 말하며 헤어질 생각이 없다는 아내. 그리고 그런 아내의 말에 안도하는 나 자신. 상황이 정리되고 나서야 나는 아내가 진정 원하는 게 뭔지, 정확히 어떤 의도로 다른 남자와 몸을 섞었는지 짐작이 갔다. 새삼 나는 정말 미친 여자와 결혼했다는 생각을 하며 마지막 질문을 건넸다.
"꼭 필요한 질문인가 싶긴 하지만, 누구랑 잔 거야?"
"그러게. 꼭 필요한 질문이야?"
"아니. 사실 상관없어."
나는 마지막 대답과 동시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서 왼손으로 아내의 목을 졸랐다. 점점 시뻘게지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던 아내는 왠지 기쁜 듯 웃고 있었다. 나는 왼손의 악력을 유지한 채 아내를 안방으로 끌고 가서 침대에 뉘었다. 내 아래에 깔린 아내는 일말의 저항도 없이, 아니 오히려 좋다는 듯이 스스로 다리를 벌렸다. 그녀의 고간에서 나오는 체액이 이미 시트를 흥건히 적시고 있었다.
이제서야 단단히 세워진 내 페니스를 내려다보니, 문득 예전에 어떤 학술지에서 읽었던 귀두 모양새의 진화론적 관점이 떠올랐다. 남성의 성기는 성교 중 여성의 질 내부에서 '정액 퇴출 장치'로서의 기능을 수행하며, 상대의 몸에 남아있을지도 모르는 정액을 피스톤 운동을 통해 긁어 빼내기 위하여 버섯 모양의 귀두를 갖게 되었다는 이론이다. 해당 이론의 타당성에 대해서는 갑론을박이 이어졌었지만, 지금 내 아내의 질 안에 다른 남자의 정액이 들어차있다는 것과 내 성기가 완전한 버섯 모양이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젠 진심으로 아내의 몸 안의 정액이 누구의 것인지는 전혀 상관이 없었다. 목을 졸린 아내의 얼굴만큼 빨갛게 달아오른 내 귀두를 이용해 그것들을 다 긁어낼 각오로, 아무런 전희도 없이 나는 그녀의 몸 안에 내 물건을 밀어 넣었다. 내내 나를 약 올리듯 실실 웃던 아내도 이제는 두 눈을 까뒤집고 괴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내가 허리를 앞뒤로 움직일 때마다 실제로 우리의 접합부에서는 허여멀건한 액체가 애액에 섞여 나오는 듯했다. '정액 퇴출 장치' 이론에 대한 확실한 믿음이 생긴 나는 더욱 격렬히 허리를 흔들어댔다.
한참을 같은 자세로 왕복운동만을 하다가 이제는 정말 아내의 질 안에 정액이 남아있지 않다고 확신이 들 때 즈음, 나는 내 물건을 뿌리 끝까지 집어넣은 채로 잔뜩 사정했다. 질벽에 완전히 둘러싸인 내 페니스의 움찔거림이 나의 심장 박동보다 더 빠르게 느껴졌다. 페니스를 빼자마자 흘러나오는 정액들을 손끝으로 훔쳐 다시금 그녀의 질 안으로 넣어주다가, 아직 질 안에 공간이 넉넉히 남아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 공간들마저 내 정액으로 가득 채우고 싶은 마음에 나는 곧바로 용두질을 시작했다. 내 버섯머리에 정액이 딸려 나오지 않게끔 귀두의 끝부분만 살짝 넣어 사정하기를 8번 반복하는 동안 아내는 변함없는 자세로 기뻐해줬다. 정액이 더 이상 밀려 나오지 않게 그녀의 질 입구에 입을 대고 풍선을 부풀리듯 숨을 불어 넣은 후에야 그날의 정사는 끝이 났다.
"고마워. 그리고 미안해."
시선을 천장에 고정시켜둔 채 아내가 말했다.
"됐어. 섹스가 하고 싶었으면 말로 하면 됐잖아."
"말로 할 때마다 당신이 신경질을 부렸으니까. 그래도 알겠어. 다음부턴 안 그럴게."
"그래, 고마워. 그리고 나도 미안해."
이 일이 있었던 이후로 얼마 안 가 아내는 아이를 가지게 되었고, 지금은 벌써 4개월 차 임산부가 되어 언뜻 봐도 볼록 불러 있는 배를 내밀며 살고 있다. 산전 친자 검사를 통해 뱃속의 아이가 내 친자임을 확인했던 날에 아내는 내 '정액 퇴출 장치'를 뿌듯해하는듯한 손길로 여러 번 주물러줬었다.
그러면서 내게
'만약 검사 결과가 다르게 나왔으면 어땠을 것 같아?'
라는 짓궂은 질문을 하는 아내에게 나는
'그래도 여전히, 전혀 상관없어'
라고 대답하며 아내의 차가운 손길에 온 신경을 집중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