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리샘 Jul 30. 2020

다시, 제주 #7 : 동백꽃 필 무렵

랜선 여행 이야기 시리즈 '다시, 제주'

아저씨의 여행 글이란 정보가 많은 것도 아니요, 사진이 예쁜 것도 아니요, 그렇다고 인물이 산뜻하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다른 건 못해드리고 이렇게 '신풍 바다목장'의 귤피 말리는 사진 한 장 선물로 드립니다. 마침 방문한 시기에 비가 와서 못 보나 했는데 해가 아침부터 나더니 점심 즈음엔 쨍쨍하게 내려와서 이렇게 목장에서도 막 귤피를 널기 시작했습니다. 목장에 들어서자마자 귤 향이 얼마나 나던지 싸구려 방향제에서 나는 귤 향 이런 거하고는 다른 세상의 향기였습니다.



잠시 흐릿해진 영혼을 맑게 하고 동백을 만나러 출발합니다. 그냥 지나칠까 했는데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위미리에 또 들릅니다. 카페 '와랑와랑'도 너무 잘 있고, 심지어 확장도 하셨네요. 재작년까지만 해도 없었는데요.


위미리 카페 '와랑와랑'


마을로 들어가는 큰 모퉁이의 키 큰 동백나무들도 여전합니다.



그리고 지난번 방문에 강아지들이 쪼르르 앞발을 올리고 밖을 내다보던 돌담엔 누가 그렸는지 이렇게 예쁜 동백들로 가득합니다. 무심한 듯 그려졌지만 제 마음에 쏙 듭니다.


너를 잡아다가 스마트폰 배경으로 삼으리라.


그런데 달라진 점이 있습니다. 길가에 노점들이 생겼고, 사람들이 너무 많이 늘었으며, 예전의 여유로운 분위기는 이제 거의 사라졌습니다. 마치 피천득님의 '인연'에서 말한 세 번째 만난 아사코처럼 위미리는 이제 저에겐 만나지 말았어야 할 위미리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미안하지만 다음부턴 발길들이지 않겠다고 생각해봅니다. 길을 걷는 사람들과 지나가는 자동차의 경적소리. 변한다는 건 당연한 것이지만 변해가는 것들을 받아들일 준비도 안된 상태에서 만나서 겁이 납니다.


현재의 위미리를 보면서 과거의 위미리를 회상하는 이상한 광경을 연출하다 얼른 카멜리아힐로 나섭니다. 거리가 꽤 되기 때문에 이 따뜻한 햇살이 다하기 전에 꼭 가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들어온 카멜리아 힐.


곳곳에 걸린 '가랜드'들이 사람 마음을 참 설레게 합니다. 우리 집 현관에 걸린 사연 많은 가랜드처럼 여기저기 걸린 가랜드들이 정말 사람 설레게 합니다. 가랜드와 동백은 누군가를 떠오르게 합니다. 하지만 거기까지 더 떠오르려는 기억을 꾹꾹 눌러 담고 여유로운 걸음으로 걷습니다.


삼 남매의 뒷모습은 언제나 전라도 말로 '오집니다.'


곳곳에 걸린 가랜드 주위에선 젊은 여행객들의 사진 세례가 이어집니다. 희망이들과 많은 사진들을 담아왔습니다. 그 겨울 중에, 게다가 비가 엄청나게 온 다음날인데 이렇게 푸른빛으로 길을 수놓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심하게 떨어진 동백꽃과 가지마다 달린 동백꽃들이 가지에 달린 건 달린 대로, 길에 떨어진 건 떨어진 대로 눈을 예쁘게 물들입니다.


동백꽃은 왜 이렇게 추울 때 필까요?


저에게 동백꽃이란 조용필 아저씨의 '돌아와요 부산항에' 노랫말 속 동백 섬에 피는 꽃이었을 뿐인데 어느 시점부터 이야기가 담긴 꽃이 되었습니다. 잊어야 하지만 잊을 수 없는, 잊고 싶지 않지만 잊어야 하는 이야기가 담긴 꽃이 되었습니다.


내내 이 '가랜드'의 이름이 떠오르지 않아 제주에 다녀오고도 며칠을 검색해보고 했는데 알아내지 못했다가 엊그제 도서관에 책을 빌리러 갔다가 거기 나온 걸 보고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카멜리아힐의 가랜드는 더더욱 각인되었습니다.



아마 저 가랜드들은 정말 수천수백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알고 있을 겁니다. 어쩌면 매번 올 때마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인 사람들의 이야기도 다 알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다 한들 어떤가요. 가랜드가 못다 한 이야기들은 또 오늘도 누군가의 카메라에 나눠 담기고 있을 겁니다.



여섯 번째 제주에선 눈까지 쌓인 카멜리아 힐을 볼 수 있었습니다.


사랑해.


두 번의 방문. 꼭 오고 싶던 '카멜리아 힐'을 걸으며 말할 수 없는 감정의 바다를 건넜습니다. 한 번은 꼭 왔어야 할 곳이었고 그곳을 걸으며 그 감정들을 다 내던지고 왔습니다. 


눈이 펑펑 쏟아지는 카밀리아 힐을 사랑하는 사람 잡고 걸어보시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어느 여름날 저녁 : 노을을 바라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