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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샘 Jul 30. 2020

어느 여름날 저녁 : 노을을 바라보다

2014년 7월 31일의 글입니다. 시점 참고 바랍니다.




오전부터 속이 안좋고 어지러워서 결국 퇴근 후에 병원을 찾았다. 

 

나름대로의 진단으로는 더위를 먹었나 싶었는데 그건 아니고 탈수증이란다. 지금은 좀 덜한데 예전에는 여행만 다녀오면 탈수증으로 고생을 많이 했다. 물을 좀 예민하게 가리는 편이라 어느 지역의 식당에서 주는 물을 마시면 꼭 배탈이 나곤했었다. 그래서 지금은 아예 같은 브랜드의 생수를 끼고 여행을 다닌다.

 

탈수증은 말 그대로 몸안의 수분이 부족하여 신체 기관이 제대로 일을 하지 못하게 만든다. 뭐든 넘치거나 부족하면 문제가 된다. 지난 1년동안 급격하게 불어난 체중으로 이번 여름은 정말 힘이 든다. 마음이 편해서인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체중이 불었다.

 

병원에서 자그마한 링거 한 병을 맞고 나서 차에 올랐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다 친구네 부부가 시골에 내려왔다며 시골집으로 초대를 해주었다. 몸 상태가 안좋아 거절할까 하다 일년에 한 번 보기도 힘든 친구라 아이들과 함께 드라이브 삼아 나섰다. 

 

시골에 살면서 더 시골인 친구네 시골집을 찾아가다 길을 잃어서 친구에게 근처라고 전화하고 앞을 보니 왠 배나온 아저씨가 손을 흔들고 있었다. 친구다. 고등학교 1학년때부터 교대가서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겠노라고 하던 친구. 이 친구 덕에 교대를 알게 되고 초등학교 선생님이 어떻게 되는지 알게 되었다. -아이러니하게 지금 초등학교 선생님인건 나다- 물론 지금은 서울에서 대학을 나와서 사업한다. 좋은 브랜드의 차를 타는 걸 보니 사업이 잘 풀리나 보다. 진심으로 기쁘다. 간만에 친구와 입이 귀에 걸리게 웃으며 악수를 나누고 친구네 시골집에 들어갔다. 어른들께 인사를 드리고, 친구와 친구네 아이들 그리고 우리 아이들과 함께 부두가 있는 바닷가를 걸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세상에는 친구라는 어설픈 것들이 많이 존재한다. 

 

그런데 이 친구는 하나도 어설프지 않다. 힘든 시기를 같이 이겨오고, 연락 없어도 잘 사려니 하며 생각만으로도 위안되는 친구다. 그래서 어느 결에라도 그 친구의 부탁이면 계산하지 않는다. 무리일지라도 말이다. 소유물은 본디 내게 없던 것이다. 그래서 없는셈 치면 다 쉬운 일이다.

 

친구와 그동안 저금해둔 이야기를 나누고, 시골집 마당에서 바베큐를 만들어 나누며 친구네 가족들과 담소를 나누었다. 여전히 속이 좋지 않아 그저 웃음만 뿌리고 있었지만 그래도 혹시 몰라 사들고 간 수박 한 통이 지친 심신을 달래는 약이 되어 주었다. 모임이 끝나고 아이들 손에 용돈을 쥐어주는 친구를 극구 말리고 친구네 시골집을 나섰다.

 

그렇게 길지 않았지만 힐링의 시간을 보내고 차를 돌려 친구네 시골 동네를 빠져 나오며 모퉁이를 돌아나오니 이런 풍경이 펼쳐진다.



문득 태풍이 올라온다는 뉴스가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바람이 점점 세차지기 시작한다. 내가 사는 곳과 이 곳은 그렇게 거리상으로 먼 거리가 아닌데 이 곳 바닷가에서 부는 바람은 내가 사는 곳보다 조금은 짜지만 시원하게 주변을 지나간다.

 

태풍이 올라와서 그런지 오늘 하루 종일 하늘의 구름이 마치 합성해 놓은 듯 예뻤다. 로맨틱이라고는 약에 쓸려고 해도 없는 우리 학교 스포츠강사 동생이 전화해서 뜬금없이 '형님, 오늘 하늘의 구름이 너무 좋네요.' 했더랬다. 그리고 오후가 되니 점점 짙어진 구름은 점점 더 낮아졌다. 그리고 저렇게 빨간 노을과 만나서 이런 풍광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우리 아이들도 이렇게 도로가에 서서 지는 노을빛으로 감성을 물들였다. 4학년인 큰 아이나 아직 한글도 모르는 아가씨인 두 딸의 눈에도 예쁘게 보이나 보다. 세 아이들의 뒷모습이 하나도 없이 노을속에 실루엣으로만 남았다.

 

차에서 내려 이 풍경을 스마트폰을 꺼내서 저장했다. 그리곤 아무 생각없이 한참을 바라 보았다. 하루 종일 컨디션이 좋질 못해 힘든 하루를 보내고 난 내게 선물이라도 되는 듯 저런 빛을 내며 하늘이 물들어 있었다. 그리고 왠지 모르게 아웅다웅 사람 사는 일이 참 덧없게 느껴졌다. 이렇게 종종 사람이 만들수 없는 자연의 풍광은 사람에게 얼마남지 않은 겸손함과 깊이를 알 수 없는 배려심을 길어 올린다. 

 

빨갛게 상기된 노을진 하늘을 보고 있노라니, 요 몇일, 그리고 지난 주말, 아무것도 아닌 일에 사람을 탓하며 이보다 더 얼굴을 붉힌 일이 스치고 지나간다. 그래, 그게 무슨 큰 일이라고. 내가 조금만 생각이 깊었더라면, 내 가치관처럼 사람 죽고 사는 일도 아닌 일에 왜 그리 배려깊지 못했을까. 

 

좋은 친구를 만나고, 이렇게 친구같은 풍광을 만나고 나니 마음이 온통 너그러워졌다. 

 

그리고 작아진, 어쩌면 원래 작았을 나를 생각해 본다. 열심히 살아야 하건만 나태에 빠져 체중도 많이 불고 스스로 관리도 안되는 그런 사람이 되어 있다, 요즘의 나는. 그간 너무 쉼없이 달려온 날들이다. 늦잠자는 소원을 빌게 아니라 잠시를 자도 달게 자는 소원을 빌어야 겠다. 어느것 하나 제대로 하는 것 없이 가짓수만 많은 기사식당 반찬 마냥 살아서는 안되겠다. 

 

잊어야지
잊는다 말하지도 말고 잊어야지
저녁 빨갛게 흩어진 노을마냥
한번은 붉게 울어버리고, 잊어야지

처음부터 없었더라면
잊을 필요 없었을 것을
있는 것을 잊으려하니
깊게 파이는 가슴만 욱신거려

잊는다 한들
잊으려고 한들
잊혀진다 한들
있는 걸 어쩌란 말인가

이세일, 시집 '사랑의 끝에서' 중에서

그래 한번은 이렇게 붉게 울어버리고, 다시 힘을 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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