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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샘 Jul 29. 2020

다시, 제주 #6 : 희망의 씨앗, 종달리 이야기

랜선 여행 이야기 시리즈 '다시, 제주'


지난 글에서 예고해 드린 대로 종달리 이야기를 꺼내볼까 합니다. 글을 쓰기 시작하려고 마음 먹었던 시기에는 종달리를 다섯 번째 다녀온 거였습니다. 그런데 지난번 글 쓰고 안 쓴 사이에 제주를 또 다녀왔습니다.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눈 엄청 와서 제주도 공항 난리 났던 그 주말에 제주에 있었습니다. 무슨 배짱이었는지 전혀 걱정하지 않고 예매했던 비행기를 아무렇지 않게 타고 돌아왔는데 뒤에 들으니 그게 폭설 내린 제주공항의 마지막 비행기였다고 하네요.



그러니까 이제 종달리에는 여섯 번째 갔다 온 셈입니다. 그리고 종달리는 네 번째 방문까지 '소심한 책방'으로 기억되는 동네였습니다. 종달리의 작고 예쁜, 딱 제 스타일인 서점 '소심한 책방'이 있어 늘 방문했던 곳입니다. 이제 제주에는 많은 작은 책방과 개성이 넘치는 아주 작은 서점이 많아졌습니다. 하지만 우연히 알게 되고 여기저기 그런 서점들을 돌아 보았지만 첫사랑의 그것에 비할 바는 아니었는지 여전히 소심한 책방은 늘 들르게 되는 곳이자 종달리의 모든 것이었습니다.


분홍이 새것 같은 때에 첫 방문했는데 이제는 색이 바래갑니다.



그런데 다섯 번째 소심한 책방은 저를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화요일에 방문했었습니다. 다른 일정이 있어 돌아설 수밖에 없었지요. 그래도 늘 그렇듯 다시 올 거니까 그렇게 아쉬워하지 않고 돌아섭니다. 그리고 다음날 아주 조금 일찍 일어나 소심한 책방부터 들러봅니다.


아빠만큼 이 서점을 좋아하는 큰 아이가 너무 두꺼운 책을 봅니다. 글씨가 보이나 봅니다.


제주에 올 때마다 들르는 곳이다 보니 무엇이 변했는지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처음 방문했을 땐 추운 날씨가 가득한 책방의 난방을 책임 지던 이 석유난로는 전기 히터에게 자리를 내주고 밀려나 구석에 이렇게 웅크리고 있습니다. 저 난로가 현역이던 때에는 점퍼에 구멍 날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경고문이 늘 붙어 있었지요.



그리고, 다시 방문한 종달리 소심한 책방에서 책들을 꺼내 보다 서가에 꽂힌 책 중에 종달리에 대해 소개를 하는 책들이 좀 있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좁디좁은 서점 구석에 서서 그 책들을 꺼내서 읽어보니 종달리엔 소심한 책방만 있던 게 아니었습니다. 근사하고 작은 식당, 카페, DIY 숍까지 많은 것들이 보일 듯이 보일 듯이 보이지 않는 따오기처럼 곳곳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서점을 나와 들러보기로 했는데 결과는 이렇습니다.


창문 너머 예쁘고 아기자기한 자기들만 조금 구경하고 말았습니다.


자기를 직접 꾸며볼 수 있는 곳입니다. 상호를 적지는 않으려고 합니다. 여행 정보를 제공하는 블로그에 가시면 정말 상세하게 잘 안내가 되어있습니다. 문 앞에 적어둔 친절한 안내 덕에 적어도 하루 전에는 미리 예약을 해야 한다는 정보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클래식한 물건들을 전시해 둔 곳도 인스타그램을 통해 미리 시간 약속을 잡아야 한다는 정보도 얻었습니다. 아쉬운 마음이지만 다음에 또 들르면 되니 쉽게 돌아서 봅니다.


지난번 글에서 예고한 것치곤 허무한 결말이지요? 네, 결론적으론 '소심한 책방'만 방문했고 거기서 알게 된 여러 장소들을 구경만 하고 왔습니다. 그래도 참 기분 좋은 건 다음에 올 땐 그곳들 중 어딘가는 들러 올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최근 좀 과감하게 여행에 나서고 있습니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더 늦으면 안 될 거 같기도 해서 말이죠. 그래서 여행 정보를 찾다가 여러 여행 정보를 제공하는 블로그나 개인의 블로그를 방문하다 보면 좀 속상한 일이 생기곤 합니다. 너무 친절해서 이제 개봉한 영화의 결말을 다 알고, 심지어 줄거리도 알고 마치 확인하듯 여행을 떠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아무 정보 없이 떠나는 여행을 바라는 건 아니지만 속상한 일입니다. 뭐랄까 이미 사진으로 내용으로 다 알고 있지만 나도 왔다 간다는 인증 같은 여행이 되어버린달까요?


여행을 통해 보다 나 자신과 가까워지는 느낌이 좋아서 격하고 용감하게 나서고 있는 여행들인데 아쉽습니다. 그런데 그런 저를 가르치는 게 바로 제주입니다. 이번에 못 오면 다음에 와서 또 보고 가고, 또 다음에 와서 보고 가고 그러고 있습니다. 이번에 여행하고 나면 다시는 안 올 듯하는 여행만 해오다 불과 몇 년 전부터 이런 한량 같은 여행을 다니고 있는데 저는 후자 쪽이 훨씬 맞는 듯합니다.


다섯 번째 제주와 여섯 번째 제주 사이에 사 년을 함께한 친한 선생님들과 대만에도 다녀왔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의아해 합니다. 언제부터 그렇게 방학 때 연수 안 받고 여행 다니냐구요. 모르겠습니다. 그러고 싶습니다. 일상의 탈출로 시작한 여행이지만 이제는 여행 그 자체를 즐기게 된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탐험하듯 나서서 모르면 모르는 대로 다음을 기약하는 희망의 씨앗을 심는 그런 시간들이 참 좋습니다.



다음 글은 동백과 동백꽃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제주에 가면 꼭 가고 싶은 곳이 '카멜리아 힐'이었는데 드디어 다섯 번째 제주에서 위미리의 동백과 카멜리아힐의 동백을 다 만났습니다. 심지어 여섯 번째 제주에서는 함박눈이 펑펑 오고 눈이 가득 쌓인 동백들도 만났습니다. 시간 내서 소개해 드릴게요.


모두의 제주이지만 저의 제주는 항상 특별하기만 합니다. 오늘 하루도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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