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선 여행 이야기 시리즈 '다시, 제주'
지난 글에서 예고해 드린 대로 종달리 이야기를 꺼내볼까 합니다. 글을 쓰기 시작하려고 마음 먹었던 시기에는 종달리를 다섯 번째 다녀온 거였습니다. 그런데 지난번 글 쓰고 안 쓴 사이에 제주를 또 다녀왔습니다.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눈 엄청 와서 제주도 공항 난리 났던 그 주말에 제주에 있었습니다. 무슨 배짱이었는지 전혀 걱정하지 않고 예매했던 비행기를 아무렇지 않게 타고 돌아왔는데 뒤에 들으니 그게 폭설 내린 제주공항의 마지막 비행기였다고 하네요.
그러니까 이제 종달리에는 여섯 번째 갔다 온 셈입니다. 그리고 종달리는 네 번째 방문까지 '소심한 책방'으로 기억되는 동네였습니다. 종달리의 작고 예쁜, 딱 제 스타일인 서점 '소심한 책방'이 있어 늘 방문했던 곳입니다. 이제 제주에는 많은 작은 책방과 개성이 넘치는 아주 작은 서점이 많아졌습니다. 하지만 우연히 알게 되고 여기저기 그런 서점들을 돌아 보았지만 첫사랑의 그것에 비할 바는 아니었는지 여전히 소심한 책방은 늘 들르게 되는 곳이자 종달리의 모든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다섯 번째 소심한 책방은 저를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화요일에 방문했었습니다. 다른 일정이 있어 돌아설 수밖에 없었지요. 그래도 늘 그렇듯 다시 올 거니까 그렇게 아쉬워하지 않고 돌아섭니다. 그리고 다음날 아주 조금 일찍 일어나 소심한 책방부터 들러봅니다.
제주에 올 때마다 들르는 곳이다 보니 무엇이 변했는지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처음 방문했을 땐 추운 날씨가 가득한 책방의 난방을 책임 지던 이 석유난로는 전기 히터에게 자리를 내주고 밀려나 구석에 이렇게 웅크리고 있습니다. 저 난로가 현역이던 때에는 점퍼에 구멍 날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경고문이 늘 붙어 있었지요.
그리고, 다시 방문한 종달리 소심한 책방에서 책들을 꺼내 보다 서가에 꽂힌 책 중에 종달리에 대해 소개를 하는 책들이 좀 있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좁디좁은 서점 구석에 서서 그 책들을 꺼내서 읽어보니 종달리엔 소심한 책방만 있던 게 아니었습니다. 근사하고 작은 식당, 카페, DIY 숍까지 많은 것들이 보일 듯이 보일 듯이 보이지 않는 따오기처럼 곳곳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서점을 나와 들러보기로 했는데 결과는 이렇습니다.
자기를 직접 꾸며볼 수 있는 곳입니다. 상호를 적지는 않으려고 합니다. 여행 정보를 제공하는 블로그에 가시면 정말 상세하게 잘 안내가 되어있습니다. 문 앞에 적어둔 친절한 안내 덕에 적어도 하루 전에는 미리 예약을 해야 한다는 정보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클래식한 물건들을 전시해 둔 곳도 인스타그램을 통해 미리 시간 약속을 잡아야 한다는 정보도 얻었습니다. 아쉬운 마음이지만 다음에 또 들르면 되니 쉽게 돌아서 봅니다.
지난번 글에서 예고한 것치곤 허무한 결말이지요? 네, 결론적으론 '소심한 책방'만 방문했고 거기서 알게 된 여러 장소들을 구경만 하고 왔습니다. 그래도 참 기분 좋은 건 다음에 올 땐 그곳들 중 어딘가는 들러 올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최근 좀 과감하게 여행에 나서고 있습니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더 늦으면 안 될 거 같기도 해서 말이죠. 그래서 여행 정보를 찾다가 여러 여행 정보를 제공하는 블로그나 개인의 블로그를 방문하다 보면 좀 속상한 일이 생기곤 합니다. 너무 친절해서 이제 개봉한 영화의 결말을 다 알고, 심지어 줄거리도 알고 마치 확인하듯 여행을 떠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아무 정보 없이 떠나는 여행을 바라는 건 아니지만 속상한 일입니다. 뭐랄까 이미 사진으로 내용으로 다 알고 있지만 나도 왔다 간다는 인증 같은 여행이 되어버린달까요?
여행을 통해 보다 나 자신과 가까워지는 느낌이 좋아서 격하고 용감하게 나서고 있는 여행들인데 아쉽습니다. 그런데 그런 저를 가르치는 게 바로 제주입니다. 이번에 못 오면 다음에 와서 또 보고 가고, 또 다음에 와서 보고 가고 그러고 있습니다. 이번에 여행하고 나면 다시는 안 올 듯하는 여행만 해오다 불과 몇 년 전부터 이런 한량 같은 여행을 다니고 있는데 저는 후자 쪽이 훨씬 맞는 듯합니다.
다섯 번째 제주와 여섯 번째 제주 사이에 사 년을 함께한 친한 선생님들과 대만에도 다녀왔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의아해 합니다. 언제부터 그렇게 방학 때 연수 안 받고 여행 다니냐구요. 모르겠습니다. 그러고 싶습니다. 일상의 탈출로 시작한 여행이지만 이제는 여행 그 자체를 즐기게 된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탐험하듯 나서서 모르면 모르는 대로 다음을 기약하는 희망의 씨앗을 심는 그런 시간들이 참 좋습니다.
다음 글은 동백과 동백꽃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제주에 가면 꼭 가고 싶은 곳이 '카멜리아 힐'이었는데 드디어 다섯 번째 제주에서 위미리의 동백과 카멜리아힐의 동백을 다 만났습니다. 심지어 여섯 번째 제주에서는 함박눈이 펑펑 오고 눈이 가득 쌓인 동백들도 만났습니다. 시간 내서 소개해 드릴게요.
모두의 제주이지만 저의 제주는 항상 특별하기만 합니다. 오늘 하루도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