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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샘 Jul 28. 2020

쉼 : 숲 속 계단에서 느끼는 '신록예찬'

*6년 전 글입니다. 시점 참고 바랍니다.




벌써 올해도 6월입니다. 엊그제 시작한 것 같은 한 해가 벌써 중간에 와 있습니다.

 

시간은 참 하릴도 없이 이렇게 흐릅니다. 김광석 씨의 '서른 즈음에'란 노래의 가사처럼 '내가 떠나보낸 것도, 내가 떠나온 것도 아닌데' 계절은 다시 돌아옵니다. 아마도 지금쯤은 봄과 여름의 알 수 없는 어디쯤일 듯합니다. 안 그래도 거대한 몸뚱이에서 쉼 없이 흐르는 땀방울은 이미 여름이지만 아직 여름의 그 녹초 같은 느낌보다는 봄의 푸름이 더 많이 남아 있습니다.

 

유난히 길었던 연휴의 끝자락에 서니 이렇게 주어는 시간 동안 나는 무얼 했나 돌아봅니다.

 

쉼.

 

저는 우리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이번 시간들을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분들을 기억하고, 또 이 나라를 잘 이끌어줄 사람을 선출하는 일에 참여했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론 '쉼'을 가지고자 계획했었습니다. 지난 3월, 4월, 5월 쉼 없이 달려온 그 시간들은 쏜 살처럼 지나갔지만, 시간만 스쳐 지나간 게 아니라 몸에 고스란히 피로로 쌓여 있었나 봅니다. 끊임없이 쉬고 싶단 생각을 해오던 저는 어느 하루는 마음을 굳게 먹었습니다.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 늦잠도 자고, 하루를 거실에서 뒹굴어 보리라 하고 말이지요.


그렇지만, 우습게도 우리 삶에도 관성이 있나 봅니다.

 

그렇게 다짐하고 잠들어 밤색 뒤척이며, 눈을 뜬 시간은 아침 5시입니다. 평소보다 30분이나 먼저 일어났습니다. 지난밤에 이날만큼은 푹 쉬리라 그렇게도 다짐했는데요 이렇게 되고 보니 그저 헛웃음이 나옵니다. 더 뒤척이며 잠들어 보려고 했지만 그것 역시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래서 이렇게 된 김에 망설이지 않고 훌훌 털고 일어나서 마당으로 나섰습니다. 마당엔 지난 2주 동안 돌보지 못한 잔디가 제 상념의 길이만큼 자라 있었습니다. 마당 있는 집에서 사는 것이 제 이십 대의 로망이었지만 정작 집을 신축하고 잔디가 깔린 마당 딸린 집에 살게 되니 저는 잔디도 깎아야 하고 주말엔 바비큐를 구워야 하는, 땀 마를 날 없는 마당쇠가 되어있습니다. 행복은 내 마음 밭에 행복의 씨앗을 뿌리는 일이기도 하지만 결국 투자가 필요하다는 결론 이릅니다. 씨앗을 심었으면 물도 주고 해야 하는 것이 내 마음속 행복 밭인가 봅니다. 아마도 법정 스님께서 그토록 '무소유'하라고 하신 이유도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한 끊임없는 투쟁을 하신 것이라 생각됩니다.

 

'게으름의 날'로 선포한 날마저 이렇게 일찍 일어났다며 혼자 툴툴거렸지만 어차피 언제 해도 해야 할 일 묵묵히 잔디를 깎았습니다. 손으로 미는 수동식 잔디 깎기 기계를 이용해서 1시간 남짓 땀을 뻘뻠 흘려가며 기다란 잔디를 정리해주고 집 앞 테라스에 올라와서 보니 이렇게 깔끔합니다. 왠지 모를 희열이 느껴집니다. 사실 깎고 난 직후에는 뿌듯함이 거의 대부분이었는데 나중에 사진으로 보니 이 초록 빛깔이 사람을 참 행복하게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고등학생 시절에 교과서에 수록된 '신록예찬'을 읽으며 어느 숲 속에 들어앉으면 이런 글이 솔솔 나올까 하고 그 글 속의 풍경을 참 많이도 상상했었습니다.  그토록 초록을 추앙할 수 있는 곳은 어디일까 하고 말이지요.

 

저는 개인적으로 원색을 참 좋아합니다. 빨강, 파랑, 노랑, 초록 등 파스텔톤보다는 그저 이기적이고 고집 세기까지 한 선명한 색이 좋습니다. 그래서 가족이 타는 자동차는 길거리에 나가면 오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한 은색이지만 제가 가끔 타는 제 차는 새빨간 색입니다. 이제 중년이 코앞인 배 나온 아저씨가 새빨간 자동차를 타다 보니 주변에서 이상하게 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그건 틀린 게 아니라 좀 다른 것이니 그러려니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결국 아침부터 잔디를 깎은 이날은 거실에서 뒹굴거리는 대신 아이들과 극장에도 다녀오고, 어느 광장에서 큰아이는 자전거를 타고, 귀염둥이 두 딸은 전동차도 타며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하루를 보냈습니다. 그렇게 또 제 온전한 개인의 쉼은 멀어졌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쉬겠노라고 공언한 날 치고 제대로 쉬어 본 적이 없는 듯합니다. 어쩌면 당연한 것인데도 없는 것에 대한 사람의 욕심이란 통제하기가 힘듭니다.

 

그리고 결국 오늘 하루를 채운 건 시간이지만 체력이 필요한 일이라 밤이 되면 피곤이 몰려옵니다. 그리고 어젯밤처럼 다시 다짐을 하며 잠에 듭니다.  '내일은 꼭 하루 종일 뒹굴며 쉬어야지'하며 잠들지만 다음날도 아침 5시 30분이면 또 눈이 떠질 거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명확한 내일이지만 그 밤마다 하는 다짐이 아마도 제겐 위로이고 쉼이 아닐까 생각도 해봅니다.

 

역시나 다음날 아침에도 같은 시간에 눈을 떴고, 가족들과 여러 가지 집안 일을 해결 하고선 오후에는 집을 나섰습니다. 오늘은 뒹굴거리는 쉼 대신 초록색을 만나러 가기로 마음먹은 탓입니다.

 

새 차를 산지가 참 오래도 되었지만 저는 다른 건 몰라도 선루프를 꼭 욱여넣어서 차를 삽니다. 매일은 아니더라도 종종 선루프를 열고 달리는 한적한 국도는 저를 세상 밖으로 꺼내 주는 마법의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날도 창문을 모두 열고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1시간을 달려 마음먹은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어디냐고요? 바로 해남 땅끝마을입니다.

 

뭐 거창한 걸 한 건 아니고요, 모노레일을 타고 전망대에 올라 주차장으로 향하는 숲길로 들어서서 그 길 중간 계단에 앉아 초록색 속에 파묻혀 있었습니다. 오고 가는 분들이 말도 걸어주시고, 인사도 해주십니다. 아마도 제가 힘들어서 쉬는 걸로 생각하셨나 봅니다. 나뭇잎 사이로 간간이 새어 들어오는 햇살이 참 고맙기도 하고, 여기저기 달려드는 산 벌레들도 반갑긴 하지만 제 시간을 방해해서 훅 불어 강렬한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여기 이렇게 앉아 40분 가까이 있었나 봅니다. 다정한 연인도 지나가고, 어르신들도 지나가시고, 아이 손을 잡은 가족들도 지나갑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건장한 남자들은 다들 땀을 뻘뻘 흘리며 이 계단과 싸우면서 갑니다. 우습기도 하고 왜 꼭 저렇게 이기려고 하는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저는 계단과 싸우는 대신 계단에 무거운 몸을 의지해 이 신록의 푸름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조금 더 깊이 들어가면 토토로가 코를 골며 자고 있을 거 같은 생각도 듭니다. 그리고 어느덧 이웃집 토토로의 OST도 귓가에 맴돕니다. 거실에서 뒹굴거리는 쉼도 좋지만 오늘은 이렇게 숲 속에 앉은 이 시간의 쉼이 더 큽니다.  이렇게 사진 한 장으로 남은 쉼의 증거이지만 이 사진을 볼 때마다 이 기분을 상기시킬 수 있을 듯합니다. 약효가 다하면 또 숲을 찾을 생각입니다. 정 안되면 마당의 잔디라도 또 깎아야겠지요.

 

저뿐만 아니라 많은 선생님들도 더 괜찮은 삶의 방향 내지는 개인적인 행복을 위해서 달리고 계시지 않으신가요?


하지만 커다란 아름드리나무도 지상의 가지만큼 땅 속에 깊고 넓은 뿌리를 박고 서 있습니다. 우리가 열심히 달리는만큼 쉬어 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오래 달릴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초반 러시 후 지쳐 쓰러지는 촌놈 마라톤 하지 않고 삶을 꾸준히 달릴 에너지가 될 것입니다.

 

비로소 저는 쉬는 느낌입니다. 이런 곳에 앉으면, 푸른 글이, 생각이, 정신이 절로 생깁니다.

 

이 쉼을 에너지 삼아 새로 시작할 일주일도 즐겁게 즐겨보려 합니다. 모두들 잘 쉬시고, 내일은 또 내 주변의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행복한 웃음 전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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