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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샘 Jul 31. 2020

다시, 제주 #9 : 제주 하늘은 언제나 정답

랜선 여행 이야기 시리즈 '다시, 제주'

6월 어느날 제주 하늘.


더운 틈에 너무 분주하게 다녀와서 글로 옮기지 못한 제주 여행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이번 제주는 희망이들과 함께한 일곱번째 제주이자 올해만 세번째인 제주입니다. 이런 걸 세는 것 조차 이제는 무의미하게 느껴집니다. 학기 중간에 갑자기 성산 일출봉이 너무 보고 싶었는데 다시 다녀왔습니다.


6월에 제주에 간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늘 방학 기간이난 동요 행사때문에 가다 보니 주로 초봄, 여름, 늦가을, 겨울이었는데 제대로 여름 초입에 들러보게 되었습니다. 또 여름에 다녀온 건 7년만인듯 합니다. 학기중이라 시간을 내기 어려운 사정이었지만 꼭 필요한 일이라서 두어달전부터 일정을 차근차근 정리해서 겨우 다녀올 수 있었습니다.


요즘 초기의 월정리처럼 근사한 카페가 가득한 세화 해변 하늘. 그리고 두 딸램.


그런 와중이었지만 제주에 다녀오고 나서 마음의 어려움들을 많이 털어낼 수 있었습니다.


6월 말이라고는 하지만 올해 여름 더위가 정말 엄청난 것인지라 이미 한여름의 기운을 품고 있는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되도록 야외는 안 나가고 싶었는데 혈기 왕성한 아이들에게 그런 것들은 아무것도 아니었나 봅니다. 그 수많은 제주 여행 중에 단 한번도 가보지 못한 메이즈 랜드부터 시작하기로 합니다.


늘 여기를 방문하려고 하던 날은 비가 오거나 뭔가 기상 상황 때문에 오지 못했는데 이번엔 제주 날씨가 허락해 줍니다


입구 건물에서 바라보니 이런 풍경이네요. 하늘은 역시 정답입니다.


막상 미로 공원에 들어서니 나무들이 그늘 터널을 만들어서 다닐만 합니다. 미로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그랬습니다.


돌담 위로 올려다 본 하늘도 정답.


그런데 막상 미로에 들어서니 그늘 하나 없는 돌담이 여름 볕에 달궈져서 뜨거운 기운을 그대로 뿜어댑니다. 그래서인지 계속 물을 분무기처럼 뿌려주나 봅니다.


이번에 새로 안 사실인데 미로의 출구에 다다르는 방법이 있다고 합니다.


오른 손을 벽에 대고 벽면을 따라 걸으면 반드시 출구가 나와요!

우리 집 첫째가 알려준 내용입니다. 예전에 해남 근처 미로공원에서 나오지 못해 결국 나뭇가지 사이로 빠져나온 끔찍한 경험 때문인지 다들 엄청 신나하면서도 긴장이 되었습니다. 결국 믿고 해보기로 했습니다.


좀 오래 걷다보니 미로공원 안에 커다란 정원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살면서 꽃내음을 맡을 일이 그니 흔치 않은데 여긴 들어서자 마자 꽃내음으로 가득합니다. 첫사랑의 향기같은 싱그런 6월의 꽃들이 내는 향기였습니다. 일기 예보상으로는 분명 폭우가 내릴 거라고 했는데 지난 겨울의 대만 여행처럼 날씨가 너무 좋았습니다. 그럼 다음날은 비가 올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일단 맑은 오늘을 즐기기로 합니다.


오늘 이렇게 뜨거운 날씨 가운데 온통 바깥으로만 돌았습니다. 수국이 제철이라 온통 수국이 만발입니다. 수국의 꼬리를 물고 기억 하나가 나오려는 걸 다시 문을 닫아주었습니다. 나오지 않았음 해서요.


어디 갔단 이야기는 큰 의미가 없을 줄 압니다. 그리고 이 날은 6월의 평일 어느 날의 제주 풍경을 만끽한 날이었습니다. 시력이 좋다진다는 말의 의미를 새삼 깨달은 시간이기도 합니다.



여름에 한번도 와보지 못한 늘 앙상한 나뭇가지로 기억에 남은 에코랜드를 여름에 방문해 봅니다. 기차만 타고 쭉 돌고 걷고 싶지 않았지만 결국 제주의 하늘과 풍경 앞에 고난의 길을 선택해 버렸습니다.



늘 제주의 하늘은 정답인 듯 합니다. 우리 동네 하늘도 이곳 못지 않게 맑고 푸르지만 여기 오면 가슴에 이는 그 감정이 우리 동네 하늘에서는 느껴지지 않습니다. 참 이상한 일입니다.



제주가 외가여서 어릴 때 많이 와본 곳이지만 대학 졸업 후 사회 생활을 하며 처음 방문한 2012년의 제주 하늘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차를 타고 달리면 앞차창으로 쏟아지는 파란 하늘 때문에 심장이 아픈 것 마냥 쿵쾅대던 그 시간들이 여전히 선명합니다. 공항에서 애월 쪽으로 가는 길의 그 하늘, 표선 해수욕장 근처의 넓은 하늘, 세화 해변의 로맨틱한 하늘, 그 어느 곳 하나 잊혀진 곳이 없습니다. 그 날 이후로 제주를 수도 없이 드나들고 있으니 그 때부터 제주 하늘에 반해 버렸습니다.


6월의 용눈이 오름. 흐린 하늘도 이렇게 사람을 설레게 합니다.


제주에 일때문에 오거나 가족들과 여행 오면 이런 것들을 즐기기도 하지만 가족들이 가보고 싶은 곳, 일 때문에 가야만 하는 곳들을 방문하곤 하지만 저는 그냥 제주에 와서 제주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것 자체가 좋습니다.


성이시돌 목장. 자욱한 안개가 완전 로맨틱 터졌던 곳.


마치 첫 창작동요제 무대에서 내 곡이 오케스트라로 울려퍼질 때의 그런 가슴 터질 듯한 설렘이 늘 다가섭니다. 사람의 감정을 다 드러내지 않고 사는 일은 참 힘든 일입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무덤덤한 아저씨로 보이겠지만 그 사람들은 저에 대해 잘 모르지요. 사실 알 필요도 없구요. 그렇지만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나 관심과는 상관 없이 여전히 설렘을 간직한 사람입니다. 다만 그것을 어릴 때보다 더 조심스러운 방법으로 크게 드러나지 않게 표현하는 것 뿐이지요.


오늘 글 사진들은 모두 하루동안 찍은 사진들입니다. 제주는 이런 곳입니다. 그리고 제주의 하늘은 사람의 마음을 충분히 설레게하는 모습으로 이렇게 변화 무쌍합니다. 마치 그녀 같기도 합니다.


며칠전 페이스북에 글을 남겼습니다.


방학이지만 학교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교장, 교감샘 안계신 학교도 지키며 정말 오랜만에 사색의 시간들을 즐기고 있다.

방학이라고 페이스북, 블로그 등 지인들의 SNS와 또 찾고자 하는 많은 정보를 위해서 검색을 하며 수많은 글들을 읽다보니 문득 든 생각이 있다.

'다들 화가 나 있을까?'

정확한 실체는 모르겠지만 모두들 화가 많이 나 있는 것 같다. 아주 어릴적 도덕시간에도 대화와 타협이라는 것을 배웠고 늘 작은 것에 다투는 아이들에게도 대화와 타협, 그리고 같은 표현이라도 부드럽게 상대를 배려하고 인정하는 방향으로 어필하는 방법을 이야기하고 있고 경험시켜주기 위해 애쓰고 있건만 마주하는 것들은 정말 좀 사나운 느낌이다.

조금만 부드럽게, 조금만 천천히, 조금만 배려있게 다가가고 다가오는 건 어려운 일인지 묻고 싶다. 여유를 찾는 다는 게 참 어려운 세상이지만 자신만의 속도계를 잘 바라보고 다른 사람의 속도에 맞춰가며 힘들어 하는 일은 방학이니까 잠시 넣어두어도 좋지 않을까.

나는 좋은 사람들과 커피 마시면서 수다 떠는 그 속도가 참좋던데.

누구나 삶이 참 힘들 때가 있다.
그럴 때 문득 늦은 밤 TV 음량을 생각해본다.

낮에는 정말 작은 소리였는데 밤에는 그 음량이 엄청 크게 들리는 것이다. 그리고 낮에 소리가 안들려서 점점 크게 틀어도 왠지 잘 들리지 않는다. 그때는 음량을 키우는 걸 멈추고 소리를 아주 작게 다시 내린다. 그러면 처음 몇분은 정말 짜증이 날만큼 소리가 안들리지만 조금만 지나면 조금씩 들리기 시작하고 그즈음 음량을 조금만 더 올려주면 내가 정서적으로 만족할 만한 소리가 들린다.

삶은 그런 것인 듯하다. 좀 너무 자극적이고 지치면 조금 줄여보면 조금은 더 스스로에 대한 소리가 잘 들린다. 안 들리다고 자신을 학대하고 괴롭히면 그 끝은 언제나 우울이 맴돌뿐이다.

제주로 떠난 6월의 어느 날들은 아마 티비 소리가 잘 안들릴 정도로 예민하고 지쳐있던 시기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그 6월의 제주 하늘은 음량을 줄인 바로 그 시점이 되어 주었습니다. 그래서 내년부터는 방학을 없애라는 민원이 들어오던 말던 학기 중에라도 심신이 너무 아프면 연가나 병가를 쓰고 심신을 정리하려고 합니다. 그간 너무 열심히 달리기만 했던 바보같은 일상을 탓해 봅니다. 학교는 모두 행복해야하는 공간이니까요. 서로 응원하고 함께 행복해지는 방법을 찾을 때라고 생각합니다.


사진 정리를 하다 제주 하늘을 보곤 또 마음이 시큰 해져선 글을 길게 남겨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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