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리샘 Aug 03. 2020

오래전 여행 이야기 : 2014년 1월의 여행 이야기

박연묵 교육박물관을 중심으로

제주 여행 이야기는 잠시 쉬어가기로 합니다. 대신 굉장히 낯설지만 재밌는 곳에 대한 이야기를 가져와 봅니다.




새로 포스팅하고 있는 글이 하나 있는데요 그 글은 반드시 프리퀼을 필요로하는 글이라서 거의 열달이 넘은 여행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행복스마트교육공작소 블로그 말고 개인적인 취미를 포스팅하는 블로그 글을 가져와 조금은 고쳐써서 들려드릴까 합니다. 시기적으로 오래된 이야기이지만 양해를 구하며 시작해 봅니다.

 

개인적으론 역마살까지는 아니어도 바퀴달린 탈 것을 타고 가는 곳은 어디라도 좋아합니다. 물론 그 바퀴달린 탈 것은 지극히 개인적이어야 한다는 전제가 있긴하지만요. 쉽게 말씀 드리자면 버스나 기차보다는 제 자동차를 타고 하는 여행이 좋다는 이야기입니다. 낭만도 좋지만 여행이야말로 개인의 인생에서 가장 최적화된 시간이니까요. 그렇게 여행의 시간 만큼은 철저하게 개인의 시간으로 만들고자 애쓰고 있습니다.

 

이를 테면 영화 그래비티에 나왔던 바로 이 장면처럼요.

 

산드라 누님 좋아요!


바로 이런 느낌인 겁니다. 여행이라는 공간 안에 이런 느낌으로 그 시간을 누리고 싶습니다. 매일 매일이 치열한 삶의 연속이다보니 올해 초 어느 하루는 딱히 계획 없이 훌쩍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무턱대고 나서는 여행이기는 하지만 적어도 테마 정도는 정해서 출발해야 하기에 여행의 테마를 '힐링'으로 정했습니다.

 

저에게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힐링이 되는 분이 몇분 계신데요, 그 분들을 만나 뵙기로 했습니다. 물론 잔잔한 자연 풍광도 좋지만 이번에는 그것보단 '사람'을 만나고 싶었습니다.

 


긴 서두를 정리하고 이 여행의 주목적지 박연묵교육박물관으로 향합니다.

 

이곳은 평생에 들어본 적도, 있었는지도 몰랐던 아예 제 삶에는 없던 장소입니다. 그런데 힐링 여행의 목적지가 된 데에는 사연이 좀 있습니다.  지난 1월 전라남도교육청에서 신규교사선발전형에서 영어수업시연과 영어면접 평가관으로 참여했습니다. 그런데 영어 면접의 선택형 질문 중에 하나가 '처음으로 학생들과 현장체험학습을 가게 된다면 어디로 가고 싶고, 왜 그 장소를 선정 했는지 설명해 보시오' 였습니다.

 

제 담당이었던 예비선생님중 한 분이 진주교대 졸업하신 분이셨는데요. 자신이 첫 현장 학습에서 학생들을 데려가고 싶은 장소로 여길 소개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예비선생님의 열정어린 설명에 저도 모르게 그 참가자에게 꼭 한번 가보겠노라 약속하고 말았습니다. 그 선생님 올해 발령이 났는지 모르겠지만 다시 만나게 되면 가봤노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저도 태어나서 처음으로 알게된 지명을 네비게이션에 입력하고 달렸습니다. 그래도 나름의 사전 정보를 가지고 가야 겠기에 박물관에 대한 정보를 검색해 보고 나니 교육 역사와 기록에 대해 특화된 박물관이라는 소개가 있었습니다. 일단 그정도로만 알고 계속 달렸습니다.

 

그런데 네비게이션이 박물관이 있을 법한 장소가 아닌 어디 산골 마을로 자꾸 데려가는게 아니겠습니까? 무지 불안했지만 우리 목사님께서 이 세상에서 두 여인의 말을 잘 들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한 명은 배우자, 다른 한명은 네비 음성안내 여인. 그래서 일단 믿고 달렸습니다.

 

그렇게 달리고 달려 도착한 완전 시골 산골 마을 입구쯤에 자리잡은 허름한 동네 공터에서 네비님은 목적지 근처라며 긴장의 끈을 놓아버렸습니다. 그때의 막막함을 어떻게 설명해야할지 지금도 막 소름이 돋습니다. 그래도 여기 저기 둘러보니 박연묵교육박물관이라는 안내푯말이 보여서 그대로 따라 글어가니 역시나 명성에 걸맞는 박물관 본관 건물이 나왔습니다. 나름 어린왕자의 상자를 항상 들고 다니는 사람이기에 상상합니다. 그래도 상상이 안됩니다.

 

응? 박연묵 교육박물관입니다.

 

마치 UFO 사진이 하늘 사진에 합성이라도 해야할 듯한 이런 건물이랄 것도 없는 시골집이 나온겁니다. 더 멋진 것은 저 UHF 안테나입니다. 저거 아직도 사용중이시라고 합니다. 저거 어릴 적에 참 많이도 돌려서 TV채널 잡았는데요.

 

쭈뼛거리며, 들어가니 왠 촌로 한분이 장화신고 맞아주셔셔, 당당하고 당당하게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여쭈었습니다.


혹시 여기가 박연묵교육박물관이 맞나요?
응. 들어와.
(교직에 있으면서, 또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쉽게 지나갈 수 있는 기록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습니다.


박연묵교육박물관은 박연묵 선생님께서 평생을 두고 쓰신 기록물과 교사 시절의 기록물을 보관하고 전시하고 있는 정말 박물관이었습니다. 처음엔 그 시골집으로 이루어진 박물관이 당황스러웠지만 그 안에 담긴 반세기의 기록들을 보고 나니 이미 그런 것들은 저 멀리 날아가버렸습니다.

 

잠시 박연묵 선생님께서 해설을 위해서 장화를 벗고 하시는 동안 구글에게 정보를 좀 검새해보니 박연묵 선생님과 이 분의 기록물이 거의 국보급이며 국가기록물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굳이 자신의 첫 현장학습에서 학생들을 여기로 데려 오겠다던 그 예비 선생님의 열정어린 설명을 그제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이 박물관이라고 하는 것이, 어떤 건물이 아니라 자신의 고향집 한칸 한칸을 주제별로, 카테고리 별로 정리를 해서 전시하시고 손수 해설사가 되어 맞춤형으로 일일이 설명을 해주시는 것이었습니다. 마침 운이 좋아서 밭에 일이 없으신 날이라 거의 3시간에 가깝게 여러 가지 기록물을 선생님의 설명으로 들을 수 있었습니다. 


박연묵 박물관은 대략 10개 정도의 테마로 이루어진 박물관입니다. 


숙소에서 검색을 통해서 찾은 정보라곤 이정도 뿐이었습니다.


그렇게 관람하게 된 첫번째 테마는 '교사 시절의 집' 입니다. 지금은 퇴직하셨지만 본인이 학생이시던 시절부터 교사로서 현직에서 퇴직하실 때 까지의 기록물을 모아두신 곳입니다. 


맡으셨던 학급의 학생들을 이렇게 기억해 내고 계셨습니다.


내부 모습입니다. 그야말로 시골 가정집을 이렇게 유지하고 계신게 놀랍기도 하고 한편으로 저 귀한 자료들이 전문적으로 관리되지 않고 있어 바스러질까도 걱정이 되었지만 중요한 건 사물 그 자체는 아닌 것은 알고 있습니다.


지금은 선생님께서 공민학교시절 쓰던 교과서에 대해서 설명해주고 계십니다.

  

다음 테마인 '학창 시절의 방'을 지나 다양한 테마들을 계속 관람해 나갔습니다. 물론 선생님의 자세하고도 친절한 설명, 그리고 종종 추억에 잠기시는 선생님의 모습도 볼 수 있었습니다.

 

 

사실 테마마다 사진으로 남기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선생님의 열정적인 설명 앞에 카메라 셔터소리로 그 장면을 잘라낼 수 없어서 사진 대신 눈과 귀를 열었습니다. 이 사진들도 일행이 찍어준 것입니다.

      

선생님의 교직 생활 좌우명이 '사랑, 인연, 추억'이라고 하셨습니다. 사랑으로 만나서 인연이 되고, 다시 추억하며 살자는 의미시라고 하시는데 너무 와닿는 말씀이셨습니다.

사랑, 인연, 추억. 저도 우리 아이들과 그런 인연이 되어 보고 싶네요.


이건 곁가지인데, 선생님 댁의 대지가 어림잡아 한 3~4천평 정도 되어 보였는데 풍광이 말도 못하게 좋았습니다. 어느 정도 얼굴을 익히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우스개로 선생님께 여쭈어 보았습니다.

 

선생님, 이 정도 넓은 땅이면 원래 이 동네에서는 좀 사시던 집안인가 봅니다?
어떻게 이많은 자료들과 물건들을 관리하세요?
 

 하고 여쭈었더니 부정도 않으시고 그냥 작은 웃음을 웃으셨습니다. 확실하네요.


이날까지 살면서 한번도 월급을 마누가 가져다 준 적이 없어.
 

선생님께서 갑이십니다. 그때는 그렇게만 생각하고 웃었는데, 이와 관련된 깊은 이야기는 다음 포스팅에서 풀어드리겠습니다. 그렇게 가볍게 하신 말씀이셨는데 정말 많은 사연이 있는 말씀이셨습니다.



우마차고를 들러 확실히 알게 된 게 있는데, 달구지하고 우마차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게 그거 인 줄 알고 말씀드렸다가 혼났습니다. 우마차 기능장께서 직접 만들어 기증하신 것입니다.

 

어허 이 젊은 친구 말 안듣네. 이건 달구지가 아니고 우마차라니까.


그렇게 수많은 기록물 자료들을 관람하고 마지막 테마인 '그림의 집'에 도착하였습니다.


선생님의 따님들이 의상와 미술을 전공하면서 만들었던 작품들을 전시해 놓은 곳이며, 국가기록물로 지정된 중요 기록물이 보관되는 가장 현대적인 공간이었습니다. 박물관일진데 개인의 기록이 전시품이고 그리고 그 기록은 머물러 있지 않고 계속 흐른 다는 게 참 묘한 느낌을 주는 것 같습니다.


여기까지 올라가는 길이 휑해서 여기는 뭐냐고 여쭈니 꽃밭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꽃이 하나도 없는 겁니다. 그래서 여쭈었더니 '나중에 여름에 오면 이 빈 밭에 꽃이 가득할 거야' 하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여름에 다시 오겠노라고 약속을 했습니다. 작은 약속에서 출발한 여행인데 또 약속을 해 버린 겁니다.



종종 단체로 오는 관람객을 위해서 강의도 하시기 때문에 이렇게 작은 공간을 마련해 두었다고 하셨습니다.

 

일찍 학교에 오면 친구들이랑 문어발 뜯으면서 저기 참새처럼 모여 앉아 수다떨던 생각이 납니다.

이게 '교단' 입니다.

누군가 직업이 뭐냐고 물으면 '교단에 섭니다'라고 대답할때 나오는 바로 그 '교단' 입니다.


초등학교 다닐때 안그래도 키큰 담임선생님께서 저기에 올라서서 수업하시면 왠지 더 무서웠습니다. 4학년때 담임선생님이 더 그러셨는데요, 지금은 옆 학교 교장선생님이십니다. 지금도 보면 제가 학생같은신가 봅니다. 4학년때 장학사님들 오신다고 하면 교실의 온갖 잡동사니는 저 밑으로 넣어두었던 생각이 납니다.


저 피아노가 1900년대 초에 미국 선교사에 의해서 들여온 건데, 오느 선생님께서 개인소장품으로 가지고 계시다가 이 박물관에 기증해 주신 것.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갈 수 없지요. 간만에 아날로그 피아노 앞에 앉았습니다. 그리고 엄청난 곡 '학교종'을 연주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그냥 웃으셨습니다. 그냥 전시용이 아니고 다시 다 조율해서 소리가 제대로 납니다.


신문에 연재된 컬럼에 대해서 설명해 주고 계시는데요, 지금도 종종 칼럼을 쓰고 계십니다.


이건 초등학교 다닐 때 반장 좀 해봤던 제가 선생님 몰래 많이 훔쳐보던 경영부입니다.


 

지금은 뭐 나이스를 통해서 하지만 그때는 선생님께서 일일이 이렇게 손글씨로 학생들을 평가하고 이렇게 적으셨지요. 정말 한 20여년 정도 만에 보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그 당시 훔쳐보던 그 느낌이 그대로 살아납니다.


 국제 기록물 박람회에 출품된 선생님의 평생일기장에 대해서 설명해 주고 계신데요, 어떤 기록물이기에 이렇게 국가적인 기록물로 관리하는지도 매우 궁금했지만 선생님께서는 개인의 기록이라며 내용 확인은 극구 말리셨습니다. 더 궁금합니다.  


궁금합니다, 선생님!


그리고 마지막으로 보여주신 논문 한편.

선생님의 이 기록물에 대한 논문이 아니라 바로 선생님의 기록물 분류 방법에 대한 논문이었습니다.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논문 제목을 보는 순간 쭉 둘러 보았던 공간들과 자료들의 배열과 정리 상태가 스쳐지나갔습니다. 가장 큰 것 하나는 바로 '집'과 '방'의 구분입니다. 건물 한 채가 한 테마로 된 경우는 무슨무슨 집이었고, 한 건물에 여러 개의 테마가 모인 경우는 '무슨 무슨 방'으로 구분지어져 있었단 사실이 생각난 겁니다.


선생님의 대단한 기록물 뿐만 아니라 분류 기술도 이렇게 논문으로 쓰여질 만큼 가치 있는 것이란 이야기입니다. 이 논문 소개를 마지막으로 박물관 관람이 끝났습니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많은 시간과 정신적 에너지를 쏟은 곳이 바로 이곳 박연묵 교육발물관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앞에서도 사연을 소개했듯이 이 곳은 '약속의 땅'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모든 관람이 끝나고 그 예비선생님께서 왜 그리도 열정적으로 이 곳에 대한 설명을 했는지도 다시금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서 얼마 안 되었을 때인데요, 거기서 필름 카메라로 남겨 주셨던 사진을 손 수 보내주시고, 장문의 편지도 보내 주셨습니다. 멀리서까지 와주어 고맙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끝까지 이 여행을 기록해 주신 것입니다. 제 기억에 잊혀져도 선생님의 기록 속에 이 여행이 남아 있을 듯 합니다.


물론 시대가 달라져 우리가 또는 내가 지금 쓰는 이 포스팅도 언제가는 기록물로 불리우겠지만 종이 냄새, 먼지 냄새 폴폴 나는 이 자료들은 다분히 제 취향이었습니다.


글을 쓰는 일을 일이라 여기면서 지긋지긋한 일상을 원망도 하며 나선 여행인데 아이러니 하게도 나보다 더한 기록의 장을 보고 반성하게 되어 버렸습니다. 글을 쓴다는 것, 더더구나 그렇고 그렇고 그런 글을 쓴다는 것은 세상에 쓰레기를 더하는 일이라고 건방지게 생각하던 제가 절로 고개를 숙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여행지는 제대로 정했고, 여행의 테마인 힐링이 제대로 되었습니다. 그리고 글을 쓰는 일에 대한 생각도 조금은 고쳐 먹었습니다. 글쓰기를 놓은지 10여년만에 삶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글은 멀리서 오지 않고 다시 교실과 학교에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당신과 함께하는 이야기입니다.


삶은 배우고 또 배우는 일의 연속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다시, 제주 #9 : 제주 하늘은 언제나 정답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