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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샘 Sep 02. 2020

다시, 제주 #10 : 더 알고 싶은 제주

랜선 여행 이야기 시리즈 '다시, 제주'

그간의 제주 여행 이야기들을 모아 랜선 여행 이야기 시리즈 '다시, 제주' 글을 연재한지 꽤 되었습니다. 이 글을 연재하는 동안 국가적인 어려움이 싹 가시기를 바랬는데 아직은 더 기다려야 할 듯 합니다. 그래도 오늘은 이 시리즈를 일단락하는 열번째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시간과 공간이 현재형이지 않을 수도 있으니 감안하고 너그러이 읽어주시면 좋겠습니다.




제주에 다녀왔습니다. 사실은 올해만 벌써 세번째 다녀온 겁니다. 겨울, 봄, 그리고 여름. 그러니까 이번에 다녀 온 건 올해 세번째고 이제 앞으로는 몇 번째인지 세지 않으려고 합니다. 너무 많이 가서 의미가 없습니다. 공식적으로는 직접 신청한 연수때문에 간 거였지만 머무르는 일주일 동안 포커스를 쉼에 두었습니다.


무안국제공항의 아침입니다. 보름달이 떴는데 안나오네요. 주차장이 가득차서 주차하느라 고생했습니다.


그리고 일년을 아예 제주에서 살았던 시간을 제외하면 이번이 가장 오래 제주에 머무르게 되었습니다. 확실히 1박2일, 2박 3일, 3박 4일의 느낌과는 완전히 다른 시간이 펼쳐졌습니다. 제주에 대한 글에는 사진이 별로 없습니다. 그냥 늘 생각 가방만 들고 다니기 때문에 함께 느껴보는 것일 따름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하루 종일 성산 일출봉 부근에 있었습니다. 종달리 '소심한 책방'에 가서 책도 사고 카페에서 커피도 마시고, 성산 일출봉 카페에선 앉아서 수다도 떨고 하면서요. 특별한 주제는 없습니다. 그냥 시덥잖은 이야기지만 재잘재잘 이야기나눕니다. 어저면 이제야 여행이나 관광으로서가 아닌 제주 자체에 집중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종달리 소심한 책방 풍경. 그리고 감바스가 일품인 성산 일출봉 근처 카페 '마가리타 은혜씨'


셋째날은 성산 근처 광치기 해변에서 오후 내내 죽치고 앉아서 하늘 구경을 했습니다. 


정말 시시각각 주변의 색도 변하고 바람도 변하고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변하는 신기한 경험을 했습니다. 수도 없이 온 제주지만 광지치 해변에 들어와 본 것도 처음이고 이렇게 죽치고 앉아서 실컷 만끽한 것도 처음입니다. 제주를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습니다. 여전히 제주는 제가 모르는 것들 가득 품고 있습니다. 예전에 어느 사이다 광고에 이런 카피가 있었죠.


어느 것이 하늘 빛이고, 어느 것이 물빛인가?
-칠Star 사이다 광고 문구.

정말 서너 시간 있는 동안 말할 수 없는 경이로움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하늘과 해변과 바다를 사람 없이 담고 싶었는데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있었는데 한번씩 이렇게 아무도 없는 시간이 허락되었습니다. 감사할 따름이지요.



그리고 평범한 대한민국의 아저씨의 뒷모습이란 이런 것이지요. 챙이 큰 밀짚모자를 썼더니 몸도 작아보이고 여러 가지 효과가 덤으로 따라왔습니다. 저 멀리 보이는 게 성산 일출봉이지요.


이런 풍광 좋은 곳은 사랑하는 사람이랑 와주면 더 좋습니다. 어떻게 아냐구요? 네, 그렇습니다.


합성 아니고 광치기 해변에 자리잡은 마리샘입니다.


광치기 해변에는 유채밭에 구경하러는 와봤지만 해안에 앉아 이렇게 덧없이 하늘 바라보며 감동할 줄은 몰랐습니다. 제주에게 고마울 따름입니다. 참, 나오는 길에 작품도 하나 건진 듯 합니다.


작품명 '싱크로나이즈드(Synchronized)'


엉덩이를 탁탁 털며 일어서서 나오는데 멀리서 부부로 보이는 두 분이 성산 일출봉을 찍고 있으셨는데 자세가 같으셔서 찍어왔습니다. 작품명은 싱크로나이즈드(Synchronized)로 정했습니다. 하지만 나오면서 가까이에 가서 보니 아내분은 성산 일출봉을 찍고 계셨고 남편분은 그런 아내를 찍고 있는 거였습니다. 아내분은 예쁜 걸 찍고 남편 분은 더 예쁜 걸 찍고 계셨던 거지요. 이번에 여행하면서 굉장히 체계적인 사진 촬영 시스템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나중에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언제 먹은 점심인지 모르겠지만 생선구이 5종세트입니다. 이런 세트엔 항상 주인공과 아닌 게 있습니다. 이 상의 주인공은 갈치, 고등어, 가자미였고 나머지는 사실 이름도 잘 모르겠습니다. 미안해 생선들아 이름이 있을 텐데 못 불러줘서. 아시겠지만 여행글 적을 땐 먹는 이야기 잘 안 쓰는데 이번엔 쓰는 이유가 있습니다. 식당에 도착해서 막 수저를 드려는데 톡이 왔습니다. 먹고 볼까 하다 혹시나 급한 일일까 싶어 열었는데 후회했습니다.



왜냐하면 창작동요대회 본선 결과 발표였기 때문입니다. 결과가 좋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밥을 두 그릇이나 먹었습니다. 네, 절대로 그것 때문입니다.


여행 마치기 전날엔 비가 엄청 왔습니다. 그게 또 신기한게 차를 타고 가는 동안 어디는 무섭게 내리고 어디는 해가 나고 그렇게 먼 거리도 아닌데 말이죠. 정말로 동남아인 싱가폴이나 베트남, 대만에서도 보지 못한 날씨를 제주에서 경험합니다.


그날 위미리, 동백마을이 있는 그 위미리에 있는 카페 '와랑와랑'에 들렀습니다. 5년여 전에 처음 알게 되었고 꾸준히 제주를 찾을 때마다 들르고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이곳엔 특별한 기억이 있습니다.


아직 발표하진 못했지만 동요도 아닌 가곡도 아닌 그런 곡을 쓴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때가 11월 초니까 제주 날씨론 한창 가을이 깊어가던 때였습니다. 산굼부리의 억새를 보고 마음이 설레였고 와랑와랑에서 그 설렘이 터져버렸지요.


사진을 뒤져서 찾아낸 2016년 11월의 산굼부리


그 때 이 카페에 왔는데 모든 창문을 열어두셔서 카페 안에 있는데도 귤향기 가득한 시원한 산들바람이 자꾸 귀를 간지럽혔습니다. 그래서 바람이 하는 이야기들을 노랫말로 적고 스마트폰에 이어폰을 꽂아선 노래를 한 곡 만들었습니다. 제주에서 돌아오자 마자 반주까지 마무리해서 잘 녹음해두었습니다. 제주에서 그런 바람을 만날때면 어디든 잠깐 멈춰서서 노래를 틀어두곤 3분여간의 행복을 누립니다.


위미리 카페 '와랑와랑' 하귤에이드가 맛있어요. 커피는 두 말할 필요도 없구요. 하귤은 '여름귤'일까 '하우스귤'일까?
안은 이렇게 생겼어요.


이건 또 어느 날인지 모르겠지만 같은 일정 속에 제주 안덕면에 있는 '세계 자동차 박물관'에 갔습니다. 이곳은 아이들 데리고 많이 왔던 곳이라 지나칠 수 있었지만 몇달 사이에 변화가 있었습니다. 박물관 명칭이 바뀐 거지요. '세계 자동차 & 피아노 박물관'으로 말이죠. 그래서 자세히 살펴보니 클래식 피아노를 꽤 많이 수집해서 전시해두고 있었습니다. 자동차 구경은 미뤄두고 피아노들을 쭉 둘러보았습니다.


이 피아노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약간 업라이트와 그랜드의 중간쯤입니다.


자동차는 제대로 보지도 않았고 피아노들만 쭉 둘러보았습니다. 사실은 눈으로 보는 것도 좋았지만 좀 쳐보고 싶었는데 지키는 분들의 눈초리가 정말 무서웠습니다. 물론 오래된 클래식 피아노라서 귀하겠지만 악기라는 것이 소리가 잘 나는지 확인도 하고 그래야 하는 것 아닌가요? 눈으로만 보고 왔습니다.


여행 마지막 날엔 애월에 있는 카페 '애월 더 선셋'에 들렀다가 그냥 거기 눌러앉았습니다. 왜냐하면 이랬기 때문입니다.


물빛 무엇? 하늘빛 무엇?


보통 카페에 가서 여러 잔을 마시지 않는데 여기선 에이드도 마시고, 커피도 마시고, 조각 케잌도 먹으면서 재잘재잘 수다떨며 오래 있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여기서 앞서 말한 사진찍는 체계적인 시스템을 발견했습니다. 남녀가 같이 들어오면 자연스럽게 여자분은 의자에 가서 앉고 남자분은 전화기를 꺼내 주저 앉아 여자분을 찍습니다. 있는 동안 한 50커플이 다녀 간거 같은데 간큰 남자 두명을 제외하고는 모드 아주 체계적인 시스템으로 사진을 찍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체계적인 건 그렇게 남자분들은 사진을 찍고 나서 여자분들에게 검사 받으러 갑니다. 백이면 백!


그 간큰 남자 두명은 떡하니 자기가 먼저 저 의자에 앉아서 스마트폰을 여자분에게 쥐어주었습니다. 아, 저분 많이 혼나겠구나 싶었습니다. 어떡합니까 할 수 없죠. 눈치는 어디서 살 수도 없는 거니까요.


그리고 또 어느 날인지 모르겠지만 그 날 숙소로 가는 길에 애월 곽지 해수욕장에 들렀습니다. 해수욕을 하러 간 건 아니구요 물이 너무 차서 해수욕도 못하겠더라구요. 바로 일몰을 보기 위해서 였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떨어지는 해가 장관이라서 한동안 거기 앉아 얼굴을 간지럽히는 햇살을 느끼며 행복해했습니다.



일주일 동안 제주에 있으면서 더 정확하게는 성산읍에 3일, 제주시 2일간 있으면서 그냥 거기 사는 사람 마냥 편하게 있었습니다. 카페나 들락거리고 아무데서나 자리펴고 앉고 세상 다 얻은 사람처럼 하릴없이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는 게 죄짓는 것처럼 느껴지던 시절도 있었지만 이제는 조금씩 삶의 의미에 대해서 알아갈 나이가 되니 시간이 정말 상대적이라는 것을 더 느끼게 됩니다.


제주에서의 일주일 동안 제주에 대해서 알게 된 건 '모르는 게 더 많다'는 것입니다. 그간 제주에 드나들면서 정말 제주를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제 오만이었습니다. 제주는 마치 그녀처럼 제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보다 모르는 게 더 많았고 여전히 보여줄 것 같은 비밀이 많은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랑하게 되었고 더 알고 싶어집니다.


정랑에 나무가 하나 걸렸으면 금방 돌아온다는 뜻이지요. 정랑의 마지막 나무 하나를 내려놓는 그날이 올겁니다.


어쩌면 제주만 그런 게 아닐지도 모릅니다. 내가 잘 알고 있다고, 오랜 시간 함께라서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고,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라면 여전히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과 나의 어떤 것들에 애정을 더 쏟아야 하겠습니다.


소중한 것은
어디에도 머무르지 않는다

곁에 있어 모르고,
떠나 있어 모르던 
있었으되 이젠 없는 것들

-이세일 시집 '사랑의 끝에서 : 있었으되 이젠 없는 것들' 중 '습관의 사랑' 전문

그런 의미대로라면 그대를, 그대의 시간과 그대가 있는 배경을 더 알고 싶을 따름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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