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리샘 Jun 15. 2021

삶의 자세 : 죽는 순간까지 만족함이 없기를

그 부족함이 우리를 온전하게 하기를.

너무 오랜만에 써보는 글입니다.

기다리신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지만 힘을 더 모아보려고 합니다.

글에 포함된 생각이나 소재들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지난 주 금요일에 학교에서 체험학습을 가게 되었습니다. 제가 어린이들과 함께하고 있는 면 단위 작은 학교에서는 매년 도시체험학습이라고 해서 도시 지역의 문화와 삶의 모습들을 살피는 체험학습이 있는데 올해는 국가적 어려움으로 규모도 축소하고 장소도 좁혀 지역 내에서 조심스럽게 진행하 되었습니다. 그리고 체험활동 역시 개인별로 해 수 있는 내용으로 진행해나가고 있습니다.


이번엔 도자기 체험을 가게 되었습니다. 직접 도자기를 빚어보면 좋겠지만 저학년 어린이들이라 고민을 하다가, 직접 빚는 대신 초벌구이된 도자기에 그림을 그리고 유약을 발라 재벌을 맡기는 체험을 하기로 결정되었습니다. 보통은 도자기 마커등을 이용해서 성된 도자기에 그림을 그리거나 붙이는 활동이 대부분인데 이번엔 정말로 굽기 전 도자기에 그림을 그려볼 수 있는 체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체험학습 가는 중에 들른 '운림산방' 초가 한자락. 내 삶이 참 좋다.

그런데 초벌구이된 도자기는 온전한 도자기가 아니기 때문에 정말 조금만 힘을 가하거나 잘못 내려놓으면 금방 부서진다는 걸 처음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초벌은 했으니 어느 정도 도자기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완전히 빗나갔습니다.


그렇다보니 자그마한 고사리같은 손으로 자기 얼굴만한 도자기 컵에 그림을 그리는 일이 어려울 수 밖에 없었습니다. 우리 반 어린이들만 해도 나눠준지 10초도 안되어 벌써 한명이 컵을 떨어뜨려 완전히 깨졌습니다. 다행인 건 아직 초벌구이 도자기라 날카롭거나 유리처럼 파편이 나지 않는다는 거였습니다. 부지런히 치우고 안전 조치를 하고선 새로운 도자기를 나줘주었습니다.


그런데 또 다른 친구가 이번엔 손잡이를 잡고 그림을 그리려던 찰나에 손잡이가 툭 떨어져 나갔습니다. 그러더니 외칩니다.


"선생님, 망했어요. 새걸로 주세요!"


요즘 어린이들은 교실에서든 어디서든 뭔가 쓸수 없게 되거나 할 수 없게 된 경우를 '망했다'라는 말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미술 시간에 도화지를 나눠주고 스케치를 하거나 채색을 하거나 하다 마음에 들지 않을때도 '망했다'라는 말을 하며 새걸로 바꿔주기를 원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럴 땐 저도 크게 외치곤 합니다.


"뒤에다 그리렴!"


새롭게 뭔가를 시작하는 건 분명 설레고 즐거운 일입니다. 그리고 뭔가를 하다가 잘못되면 버리고 새로운 걸로 다시 시작하면 참 편리하고 좋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의 삶은 그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오랜 옛날의 종이와 붓처럼 컴퓨터는 당연한 것입니다. 컴퓨터에 운영체제라는 것이 깔려 있고 또 저장장치에 수많은 자료들을 저장합니다. 그렇지만 컴퓨터가 기계적으로 고장나지 않더라 뭔가 늘 많은 문제를 일으킵니다. 그럴 땐 껐다 켜보기고 하고 주변의 전문가에게 도움을 청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래도 안될 경우에는 이렇게 하면 다시 시작하고 정리할 수 있습니다. 바로 포맷(Format)입니다. 이를 테면 밭에 난 잡초들을 모두 없애기 위해 밭을 갈아엎는 것처럼 저장장치를 초기화해서 깨끗하게 만드는 일입니다. 이렇게 하면 그간 문제가 되던 것들 대부분은 해결이 되고 속도도 빨라지고 여러 가지로 편리합니다.


그래서 언젠가 삶이 꼬일때면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내 삶도 포맷하고 다시 시작하고 싶다!'


다른 건 몰라도 우리의 삶은 절대 그럴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내가 오늘부터 새로운 마음으로 뭔가를 시작하고, 사람들을 대해도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는 나는 그저 어제의 나로부터 이어진 오늘의 나일 따름입니다. 그래도 용기를 내며 나의 부족한 것들을 이겨내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더 나아가기 위한 일에 온 신경과 힘을 더하는 일상을 이갑니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터집니다. 영화 앤트맨의 한 장면처럼 작아진 앤트맨은 마당 잔디 속의 상대적으로 커진 곤충들과 사투를 벌이지만 정작 마당에서 신문 보는 아저씨는 기척조차 느낄 수 없는 것처럼 스스로는 죽을 힘을 다해 최선을 다하며 변화를 꾀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는데 밖에서 보는 사람들에겐 그저 어제로부터 이어진 나의 모습일 따름이라는 것이지요. 그럼 여기서 갈림길에 서게 됩니다. 계속 할 것인가 아니면 관둘 것인가.

ⓒ노트펫 월트디즈니코리아 / 반려동물뉴스 노트펫 (https://www.notepet.co.kr/news/article/article_view/?idx=1857)

관두는 게 가장 편합니다. 아무리 일이 힘들고 삶이 힘들어도 우리에겐 '포기'라는 비행기 게임 속에 딱 세번만 주어지는 폭격기 폭탄처럼 쓸 수 있는 비장의 무기가 있습니다. 그치만 그걸 자꾸 쓰다보면 우리는 '포기'에 감염되어 버립니다. 만성이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부족한 삶일 지언정 계속하는 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계속 걷다보면 목적지는 나오게 되어 있고 시간은 훨씬 길게 걸리겠지요. 그래서 잘 생각해야 합니다. 내가 추구하는 것이 빨리 가는 것인지 아니면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인지를 말이죠. 최상의 경우는 목적지에 빨리 도착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의 삶은 두 가지를 한 꺼번에 주는 경우가 좀 드뭅니다. 그래서 빨리 도착하는 것이 목표라면 달려야 하고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이 목표라면 느리더라도 꾸준히 가기만 하면 됩니다. 그리고 꼭 그 두 가지가 아니더라도 그냥 걷는 것 자체가 의미 있다면 그것만도 좋습니다. 꼭 빨리 가지 않아도, 꼭 목적지에 도착하지 않아도 그냥 이렇게 걷는 게 좋다면 그걸로 된 게 아닐까 싶습니다.


나의 어떤 것을, 나의 어떤 기준을 남에게 들이댈 필요는 없습니다. 삶을 가장 단순화한 앞선 세가지 경우뿐 아니라 개개인의 삶에 놓여진 것들은 너무 다양해서 이루다 헤아릴 수 없니 굳이 나의 어떤 것을 강요하지 말고, 또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도 그냥 참고 삼으면 됩니다. 그 분들의 성공은 그 분들의 삶의 방향에서 얻은 것이기에 내 것과는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냥 참고만 하시면 됩니다.


우리 아이 육아는 우리 방식대로 하는 겁니다. 각 집안이 가진 가치과 지내는 삶의 모습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우리 집 만의 육아 문화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육아는 이렇게 해야한다라든지 그런 방법은 틀리다 라든지 하는 건 누구의 기준인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내가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는 이미 겪어본 많은 분들의 의견을 참고하는 것일 따름입니다. 그게 답이 아니란 말이죠.


손잡이가 떨어져 나가서 어린이들에게 '외면'당하고 '새것'에게 자리를 빼앗긴 도자기를 물끄러미 바다보다 이건 마치 내 삶의 모습 같구나 싶었습니다.


늘 스스로가 부족하다 말하는 저에게 사랑하는 이가 그랬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거 듣기 싫다고 말이죠. 그런데 이건 자기 비하라든가 자존감 하락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누구보다 자존감이 튼튼한 사람이고 저는 저의 많은 부분이 참 좋습니다. 얼굴까지도 참 마음에 든다고 하면 사람들이 웃는데 이유를 잘 모르겠습니다.


차분히 손잡이가 떨어져 나간 도자기를 들고 한참을 바라보 마음 속으로 밑그림을 그린 다음 떨어져 나간 부위를 캔버스 삼아 그려낼 수 있는 그림을 그려가기 시작합니다. 위쪽 깨진 부분은 해바라기 씨앗부분을 그리고 아래 깨진 부분은 풀밭으로 삼았습니다.

잘 될까 싶기도 하지만 최근에 읽었던 파울로 코엘료의 '마법의 순간'에 나오는 내용처럼 이렇다 저렇다 말하려면 일단 뭐든 '맛을 봐야'합니다. 맛도 보기 전에 이름이 같은 먹어본 음식이라고 맛이 있다 없다 말하는 건 사실 크나큰 오만일 겁니다. 이름이 같은 음식도 먹어보기 전에는 모릅니다. '김치'라는 같은 이름을 가진 음식이 수만가지일텐데 다 맛이 다릅니다. 그런데 맛이 있다 없다 판단하는 것 자체가 다른 맛과의 비교를 통해서 나오는 귀납적 판단일 테 일단 맛을 봐야 알 수 있는 겁니다.


그러니 부디, 애매해서라든지, 해봐야 소용 없다라든지 하는 말로 내 삶과 다른 사람들의 그것까지 말리지 않으면 어떨까 합니다. 무슨 맛이 나건 일단 맛을 보기로 하면 어떨까요. 그리고 부족함은 인정하면 됩니다. 잘 될 수도 있고, 안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무도 모른 다는 겁니다.


이번에 창작가곡회에서 새로운 가곡 발표를 마치고 지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부족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부족함과 결핍은 결국 온전하기 위한 가장 큰 동기이자 삶의 에너지입니다.


죽는 그 순간까지 사랑하는 일에도
곡을 쓰는 일에도 노래를 듣고 부르는 일에도
만족이 없기를 매일 기도해.

그 부족함이 우리를 온전하게 하기를.

죽는 그 순간까지 우리는 늘 부족한 존재입니다. 어느 순간에라도 부족하지 않은 순간은 없을 겁니다. 요즘 배우는 우쿨렐레를 튜닝하다보면 튜너가 알려주는 그 음을 맞추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닌 것 같습니다. 조금만 돌리면 피치가 올라가고 조금만 풀면 뚝 떨어지고 끊임없이 해야하는 일입니다. 오늘 맞춰두었지만 내일은 또 달려져서 맞춰야 합니다. 처음 우쿨렐레라는 악기를 구입했을 때 사은품으로 딸려온 튜너를 보며 이건 왜 필요한 걸까 생각했던 우문은 경험을 통해 그 답을 알게 된 것입니다.


부족하고 실수투성이지만 '망했다'라고 스스로를 무너뜨리지 말고 조금 다른 방향으로 생각하며 스스로의 자존감도 지키고 또 여러 방향의 가능성도 탐색하고 열어보는 삶의 자세를 가져보려는 노력을 하면 어떨까 합니다. 학교에서 어린이들과 함께 배우는 일을 하다보니 사람의 가장 큰 삶의 가치는 바로 무한한 가능성의 내재가 아닐까 합니다.


망하는 건 없지 싶습니다. 흐트러진 상황과 시간을 마음이 받아들이지 못할 따름이지요. 차라리 받아들이고 부족함을 더해 온전해지기 위해 죽는 순간까지 노력하는 더 멋진 삶의 방향성을 가져봅니다.


오랜만에 머리 속에만 가득 담고 다니던 생각 하나를 풀어봅니다. 음악의 비중이 커지다 보니 생각을 풀어놓을 빈 틈을 못 찾은 듯 합니다. 굳이 시간 내어 쓸모는 크게 없을지언정 스스로의 삶의 방향성을 한번쯤 점검해보려 합니다.


내리는 빗방울 리듬에 맞춰 오늘 하루도 신나게 지내보기로 합니다.

<2021년 6월 15일>





작가의 이전글 다시, 제주 #10 : 더 알고 싶은 제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