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 나들이 '해적: 도깨비깃발'
*다 쓰고 포스팅하고 보니 예사말로 썼네요. 양해부탁드립니다. 이상하게 종종 그렇게 써야만 써지는 글들이 좀 있는 듯 합니다.
매번 비슷한 음악, 비슷한 연기를 하는데도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고 즐거움을 줄 수 있는 건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니다. 작게나마 창작자로 살아가는 시간들을 돌아보면 더더욱 그렇다.
새롭지 않을지 모르나 새롭지 않은 중에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을 누구보다 잘하는 것도 살면서 매우 중요한 일이다.
살아남기 위한 두 가지 방법.
남들이 하지 않은 일을 먼저 해서 이겨내는 것 하나. 그리고 남들도 다하는 일을 누구보다 잘 해내는 것 둘. 둘 다 잘하면 정말 금상첨화겠지만 그런 사람 흔치 않고, 또 있다 하더라도 매번 그럴 수 없다.
새롭고 설레는 것들도 결국 안정기를 맞게 되고 안정기를 지나면 제 자리인듯 뒤로 밀리는 듯 정체기가 반드시 따라 온다. 정체기가 없다는 말은 다 거짓말이다. 정체기의 길이가 좀 다를 뿐 그 안에서 주저 앉기도 하고 결국 이겨내고 또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이광수는 늘 하던 연기를 했다고 말들이 많은가 보다. 늘 하던 연기로 이렇게 재밌다면 요즘 말로 나는 킹정이다. 이광수의 매번 같은 이미지가 소비된다고 하지만 그걸 소비하는 관객의 입장에서 보면 여전히 유효하고 매콤 달콤한 그 만이 가진 흡인력있기 때문이다.
연출자도 굳이 이광수여야만 했을까하고 분명 스스로에게 되물었을 것이고 이광수여야만 했을 것이라고도 생각해본다.
예민하지 못하면 변화를 알아채기 쉽지 않다.
매번 우리가 우리 자리에서 누군가 저 멀리 바다에서 일으킨 물장구에서 부터 시작된 잔잔한 파도를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며 발을 담그듯 이광수 배우가 시작한 그의 연기가 주는 웃음을 우리는 사실은 아주 쉽게 받아들이고 만끽하고 있는 것이다.
늘 같은 것 같지만 배우의 연기는 매번 같지 않고 같아보이는 것 뿐이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아는 것만 보이기 때문이다. 그건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그저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나의 수용 필터의 크기가 그걸 결정할 따름이다.
찰나의 순간이지만 방금전 한발짝 옮기기 전의 나와 한발짝 와서 서있는 나 그리고 또 한발짝 걸어 앞에 있을 나는 매번 다른 사람이다. 매일 쓸 거리가 없는 이유로 일기 쓰기를 주저하던 우리 반 아이와 앉아 하루를 되새겨 준 적이 있다. 우리가 사는 하루가 얼마나 경이롭고 미세하게 다 다른 하루인지 말이다.
사는 일은 매일 양상은 같을 지라도 받아들이는 나의 예민함에 따라 분명 같은 듯, 어제 같은 오늘, 오늘 같은 내일일수도 있지만 또 새롭게 기뻐할 것들이 가득한 매일일 수도 있는 것이다.
비교 당해야할 대상이 있다는 것, 그것은 괴롭거나 힘든 일의 시작이 아니라 정체되어 있는 나를 깨우는 더없이 좋은 알람이자 동기부여이다. 비교는 불행의 시작이라는 말은 비교 자체가 불행을 부른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비교의 결론이 결국 남들보다 못한 내 처지에 대한 한탄이라면 그게 불행으로 이어지는 게 아닐까 싶다. 외부에서 주어지는 자극 자체가 그냥 짜증의 대상이 될지 앞서 말한 안팎의 내가, 또 과거와 현재의 내가 앞으로의 나에게 보내는 어떠한 삶의 방향성으로 다가올지는 오롯이 내 안에 있는 것이고 그것이야말로 더없이 좋은 비교 또는 비교당하는 일의 역할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극장을 나서며 같은 영화를 본 분들이 나누는 이야기를 듣고 몇줄로 인스타그램에 적을까 하다 결국 생각을 긴 글로 정리해 본다.
영화 '해적: 도깨비깃발' 속 막이는 이광수이기에 가능하고 여전히 이광수여야만 하는 이유를 잘 보여준 배역이라고 생각한다. 무심히 바라보면 이광수가 같은 맥락인 런닝맨을 하차하고서도 영화에서 보여주는 런닝맨 같은 연기를 했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조금만 예민하게 들여다보면 분명 그건 이광수이기에 이광수여야만 가능한 일이다. 남들도 다하는 것, 늘 해오던 것이지만 그 안에서 이광수는 최고다. 그래서 요즘말로 킹정이다.
혹여 정체기일지라도 놓지 않고 늘 자신이 할 수 있는 최고를 보여주는 뻔한 배우 이광수 덕분에 매우 행복한 시간이었다. 또 언젠가 이광수 아니면 이 영화 안되겠다라고 생각할 수 있는 영화를 볼 수 있기를 소망한다.
그리고 뻔한 일상에서 소소하게 다름을 발견하고 그 다름을 통해 또 새로운 내일을 살아낼 힘을 얻어가는 것, 그런 더 소소한 기적들이 항상 우리 곁에 머무르기를, 아니 그런 기적을 일구어갈 수 있는 우리이기를 바라본다.
2022년 2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