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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샘 Nov 15. 2021

뜻 밖의 행복 부스러기 : 캘리그래피 입문기


일단 허접한 첫 작품부터 보고 가십시다.

매주 주말이면 딸램들이 퍽 심심해 합니다. 아니죠 지금은 과거형으로 써야겠습니다. 퍽 심심해했더랬습니다. 그럴 때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렇게 이야기하곤 했습니다.


그럼 우리 같이 나가서 마당 잔디밭에 풀이나 뽑자!
어머, 아버님 무슨 말씀이세요? 누가 심심하다고 했나요?
from. 사악한 마리샘과 영악한 딸램들




그렇게 몇번은 정말 마당 잔디에 날아든 민들레 포기며 이름을 알 수 없는 풀들을 솎아 내며 주말 시간들을 보내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일년이면 주말이 몇번이던가요. 어려운 시기에 늘 실내 생활이 많아지고 하다보니 뭔가 생활 패턴 자체가 좀 변했고 이제는 고착되어 가는 느낌이라서 조금은 의식적으로 움직여보려는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중에 늘 드나드는 집 근처 도서관에서 평생교육 프로그램으로 아이들이 좋아할만한 프로그램의 주말반 개설되었길래 아이들에게 알려주고 의사를 물으니 해보겠다고 해서 폭풍 클릭 끝에 겨우 수강 신청 순위안에 들어서 수강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차차, 다른 프로그램들은 초등학생이 수강 대상이라 문제가 없었는데 한 가지 강좌가 문제가 되었습니다.


바로, 캘리그래피반이었는데요. 이건 좀 난이도가 있어서 모집 대상은 초등학교 4학년부터 성인까지였는데 막상 아이들만 보냈는데 담당자분께 연락이 왔습니다. 수강생들이 모두 성인이라 보호자가 오셔서 좀 도움을 주셔야할 것 같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추천한 사람이 저니 제가 첫날 가서 이왕 이렇게 시간을 함께하는 김에 같이 해보자하고 정식으로 추가로 등록하고 재료비도 추가로 내고 두 딸램과 함께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첫 시간에 만든 게 바로 이글을 읽으실 때 처음 보셨던 그 난잡한 해바라기입니다.

사실 좀 그렇더라구요. 왜냐하면 강사님부터 수강생까지 모든 분들이 여자분들이라서 숨 쉬기도 좀 힘든 느낌이었습니다. 그나마 어여쁜 딸램들이 함께라 힘을 낼 수 있었습니다.

전라도 말로 허벌나게 오집니다. 딸램들 보고 있으면.

조용히 강사님께서 설명하시는 거 듣고 아이들하는 거는 거들 뿐 절대 대신해주거나 하지는 않았습니다. 강사님께서 보시고 의아해하셨지만 우리 집 가치관이 '스스로의 인생은 스스로가 책임진다'이기에 잘하든 못하든 스스로 해보는 것에 더 가치를 두고 있습니다. 좀 못하면 못하는대로 잘하면 잘하는대로 그대로도 괜찮습니다.

항상 봄처럼 새롭게 살아라, 우리 둘째!

딸램들과 시간을 함께하며 소소한 수다와 함께하는 그 시간이 참 행복합니다. 아이들이 커갈 수록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듭니다. 아이들의 일정도 있고 어른들의 일정도 있고 해서 말이죠.


그런데 몇 번 가면서 문제가 하나 생겼습니다. 다름 아니라 이 캘리그래피라는 게 하면 할 수록 제 성격과 참 잘 맞는 다는 거였습니다.

이론 강의는 짧게 하시고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실습을 해볼 수 있게 해주셔서 집중도도 굉장히 높았습니다. 게다가 강사님께서 조용한 실습 시간에 들려주시는 배경음악이 아주 탁월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몰입해서 작업하는 그 시간이 정말 행복하고 힐링의 시간이 되어 줍니다. 은근 기다려지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원래 생각이 참 많은 사람이라서 늘 생각의 늪에서 허덕이는데 이 시간 만큼은 일체의 잡스런 생각 없이 선을 그리고 색칠하고 글씨를 쓰며 고요한 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 정도면 참 잘 맞는 거 같습니다.

그리고 현실적인 이유를 하나 들자면 작업 도구나 작업의 과정이 번잡스럽지 않다는 거였습니다. 물론 정말 초급자의 과정이기에 그런 면도 있겠지만 캘리그래피 펜과, 네임펜, 먹, 나무젓가락, 캘리그래피 스틱 등 재료도 소소하고 크게 애쓰지 않아도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수 있어서 더 매력적으로 느껴졌습니다.

무엇에라도 기대어 어둡고 길었던 모두의 시간을 털어내고 또 다가올 날을 준비해보는 시간들을 보내고 있는 요즘, 주말에 딸램들과 함께하는 이 시간들에 정말 감사하게 됩니다.


아침에 같이 듣자며 걸어둔 '선물'이라는 동요처럼 매일은 우리에게 선물인 듯 합니다. 뜻하지 않은 행복 부스러기를 쓸어담으며 오늘 하루도 행복할 것을 다짐해봅니다. 행복도 습관이다잉.


<2021년 11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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