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리샘 Nov 12. 2021

무지개가 있는 아침 : 마음에 칠해지는 하루의 빛깔


아침에 나 무지개 봤어!

무지개가 떴구나.

라디오에 오늘 아침 무지개 봤다는 사연이 많네.

그랬나보다. 나는 밖에 안나가 봐서 몰랐어.

아니 여기(상대방이 사는 곳)에 무지개 떴다고.

아...... 여기가 아니구나.



개인적으로 무지개를 무척 좋아합니다. 그런데 항상 무지개를 실제로 본 것보다 글 속이나 시 속, 또는 영화 속에서 본 게 더 많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아도 실제로 무지개를 본 건 아마 유리창에 붙은 작디 작은 초록 청개구리를 만난 횟수랑 비슷한 거 같습니다.


아침에 일찍 집을 나서는 이에게서 받은 무지개를 봤다는 연락을 받고는 무지개가 뜬 줄 알고 무지개를 보려고 창밖을 봤는데 여긴 무지개가 없었습니다. 당연하지요. 무지개가 여기 뜬 게 아니라 멀리 있는 그 이의 하늘에 뜬 거였으니까요.


무지개를 보면 괜히 기분이 싱숭생숭 합니다. 이 글의 맨 처음에 걸어둔 사진 역시 먼 지역에서 열린 동요관련 콘서트에 참여했다가 다시 이 곳으로 오던 길에 해질녘 하늘에서 만난 무지개입니다. 그 날도 도로에 차들이 줄줄이 비상등을 켜고 서 있었습니다. 연인들끼리는 손 꼭잡고 무슨 이야기를 웃으며 도란도란하고 있었고 인생 선배님 부부들은 또 무언가 이야기를 주고 받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혼자 그 길을 달리던 저도 내려서 한참을 바라봤습니다. 제 각기 갈길도 다르고 나이도 성별, 그리고 지나온 길도 모두 다르겠지만 무지개를 바라보는 알 수 없는 흐뭇하고 신기한 표정은 비슷한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달려도 무지개는 그대로 얼마간 함께 저와 한적한 길을 달려주었습니다.


실제로 무지개가 우리에게 주는 건 없습니다. 그런데 무지개가 떴을 때 사람들이 올려다 보며 잠시나마 간간이 뜨는 아름다움과 여유를 찾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는 게 너무 각박하고 여유가 없는 게 마치 당연한 듯 우리는 이 시대를 살고 있으니까요.


하늘 보는 걸 유난히 좋아하는 저로서는 무지개는 일종의 보너스입니다. 하늘도 보고 거기에 칠해진 크신 분의 오묘한 터치에 별점 다섯개를 날리면서 말이죠.


우리 사는 일도 매일은 아니지만 종종 이렇게 무지개가 뜨는 날들이 있는 거 같습니다. 그 무지개의 종류와 모습은 모두 다르겠지만 분명 그런 순간들을 우리는 지나고 있습니다.


연애사로 힘든 누구에겐 오랜만에 걸려온 연인의 전화가, 자녀 문제로 애타하는 누군가에겐 희망적인 방향의 이야기로 해주는 괜찮다는 말 한마디가, 또 늘 대답없는 사람들과 일하는 누군가에게는 큰 기대하지 않고 그런가보다라고 생각하고 일해보라 위로해주는 이가 바늘하나 찔러넣을 곳 없는 일상에 잠시나마 멈춰서서 여유를 누려볼 수 있는 무지개가 되어 주는 게 아닌가 합니다.


요즘 사춘기인 우리 집 아이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자꾸 잔소리를 하게 됩니다. 어쩜 그 시절 부모님께 들었던 잔소리를 그대로 하고 있는지 너무 소스라치곤 합니다. 그래도 그런 시절을 지나 이렇게나마 잘 지내고 있는 스스로를 증거 삼아 아이들에게 그러지 않아보려고 도박 끊어야 하는 사람처럼 무섭게 애쓰고 있습니다. 부모님들은 다들 잔소리 중독이라더니 이건 끊기가 너무 힘든 일인 거 같습니다. 할말 다하고, 따복따복 아닌 건 아니라고 따지던 어릴 적 제 모습이 오버랩 되면서 '그래 누구 닮았겠어'하며 인정하게 되고 결국은 제가 아이들에게 사과하며 늘 마무리가 되곤 합니다.


매일 하루를 칠하는 색을 생각해봅니다.


어느날은 화사한 수채화가 되기도 하고 어느 날은 더없이 칙칙한 짙은 색감의 유화가 되기도 합니다. 붓을 쥐어 주는 건 시간이고 삶이며 환경이겠지만 그 붓으로 하루를 무슨 색으로 채워갈지는 바로 나의 문제일 듯 합니다. 보통은 붓탓을 해보지만 결국 색을 골라 그 붓으로 그림을 그리는 건 스스로이기에 오늘 하루는 또 무슨 색으로 칠할지 고민하게 됩니다. 하루를 다 마치고 내가 그린 하루라는 그림을 내 이름을 적어 벽에 걸지, 쳐다보기도 싫어 구석에 쳐박을지 그것도 결국 나의 결정이 되네요. 결국 모든 일은 나로부터 시작되고 나에게 돌아온다는 사실이 참 어렵습니다. 매일 직면하게 되는 가장 명확한 색이네요.

그렇더라도 오늘 하루는 저 하늘에 뜬 무지개를 팔레트 삼아 좀 화사하게 그려보면 어떨까요.



비가 개인 파란 하늘 촉촉한 세상

하늘 위에 펼쳐진 무지개 팔레트

바람이 붓을 들고 초록색 콕콕 찍어

(빨주노초파남보)

초록나무 너른 들판 펼쳐가지요

(예쁜 세상 그려요)

빨강 노랑 알록달록 쓱쓱 색칠하면

향기 가득 꽃이 펴요 무지개 팔레트 세상

빨주노초파남보


무지개 팔레트(심진하 작사, 이세일 작곡) 노랫말 전문




아침부터 아이들의 붓에 잔소리라는 칙칙한 색을 실어준 시간을 반성해보며, 또 사랑하는 이들에겐 밑그림만 그리고선 망했다고 말하지 말고 마지막 색을 꼭 채울때까지 무던하게 그려냈음 하는 바람도 가져봅니다.


무지개가 우리 하늘에는 매일 없지만, 하루를 살아내는 우리들 마음에는 매일 떠서 잠시나마 다 내려놓고 마음에 여유를 주었음 하는 바람도 함께 가져봅니다.


<2021년 11월 12일>





작가의 이전글 아침 생각 : 행복을 찾아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