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하면 먼저 작동하는 도식들이 있습니다. 노랑, 연두, 새싹 이런 것들이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공통점을 생각해 보면 모두 새롭게 태어나고 완전하지 않은 연한 상태라는 점인 것 같습니다.
'연한 상태입니다라'고 말해도 좋을 텐데 글은 오롯이 스스로의 생각을 담는 것이긴 하지만 또 분명히 읽어야 할 분들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종종 확언하는 것과 '듯싶습니다' 사이에서 방황할 때가 많습니다.
봄은 아마 그런 느낌이 아닐까 합니다. 머리채 긴 겨울이 아쉬워 돌아서지 못하는 순간에 창문 커튼 틈으로 삐져 들어오는 따스한 햇살의 온기처럼, 굳이 느끼려고 하는 건 아니지만 모르는 사이에 느껴지는 그런 느낌이죠.
저학년 담임을 하다 보면 어린이들의 공통 질문이 있습니다.
"선생님, 언제부터 봄이에요?"
누구든 명확하게 알고 싶어 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것이 어떤 개인적으로 필요로 하는 정보든 또는 모두에게 인정된 명제든 사람은 누구나 꾸준히 확인받고 싶어하고 또 확인하고 싶어 합니다. 좀 더 명확히 하고 싶은 거죠. 그래서 편가르기로 내 편인지 아닌지 확인하고 싶은 걸까요?
이십여 년도 훨씬 넘은 이야기지만 제가 고등학생이던 시절에 국어선생님께서 수업 중 말씀해 주셨던 기억에 여전히 남은 흥미로운 많은 낱말들 가운데 개인적으로 사람이라는 존재의 생각하는 능력을 인정하게 된 낱말이 바로 '분절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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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절성
언어가 연속적으로 이루어져 있는 세계를 불연속적으로 끊어서 표현하는 것
국립국어원 '온라인 가나다' 게시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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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 봄이냐고 묻는다면 포켓몬스터 로켓단의 구호처럼 알려주는 게 인지상정이지만 그럴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언제부터 봄인지 그 어느 누구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봄은 추운 날씨가 조금씩 따뜻해지면서 얼었던 개울도 녹고 새싹이고 돋으며, 두꺼운 옷들이 조금씩 얇아지고 ...... 설명 안에 그 어디에도 여기서부터 봄이라고 꼬집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봄, 여름, 가을, 겨울처럼 모든 연속적인 것들을 끊어서 그나마 인식할 수 있는 상태로 세상의 모든 것들 알고 있다고 착각하게 합니다. 어제와 오늘로 나누지만 사실 시간이라는 개념도 연속된 시공간을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최소한의 단위로 끊어놓은 거죠. 내일 오전에 만나자고 했을 때 만약 시간이라는 분절의 개념이 없다면 막막하기만 할 겁니다.
다시 돌아와서 우리 반 어린이들의 질문은 사실 과학적으로나 언어의 분절성에 대해서 물어본 건 아닐 겁니다. 다만 궁금할 따름이라는 걸 긴 시간을 통해서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에 어떤 대답을 해줄지는 정말 담임선생님의 삶의 가치와 많은 연관이 있을 듯합니다. 아무리 교사들이 국가수준 교육과정과 성취 기준을 이야기해도 그 이외의 것들은 선생님들의 많은 삶의 가치와 결부된 설명일 수밖에 없거든요. 그래서 교사는 정의로워야 하고, 바르지 않아도 발라야 하며, 연예인 아니어도 주변과 밖의 시선에 예민해야합니다.
그렇다면 수년째 같은 질문을 받아오는 저는 아주 여러 해 전에 나름의 정의를 미리 정해두고 누군가 물어보면 때는 이때다 하고 선생님의 가치관이 쏙 반영된 답을 해주곤 합니다.
"비밀인데 너희가 봄이야. 너희가 와서 따뜻한데 너희가 가버리고 나면 교실이 너무 춥거든. 학교는 너희가 오면 봄이야."
요즘 어린이들은 반응이 즉각적이고 예상 가능하지만 알면서도 너무 귀엽습니다.
"안 들은 귀 삽니다."
"에이, 뭐예요."
"엄마한테 이를 거예요."
"아닌데 엄마가 3월부터 봄이라고 했는데요."
학기 초에 입학한 신입생 8살 우주인들은 얼마나 귀엽고 신비한 존재인지 모릅니다. 첫 학교에 온 우리 어린이들의 우주는 사실 부모님이나 가족이 거의 대부분입니다. 우리 엄마가 그랬는데요부터 엄마가 안 해도 된대요, 너희 선생님은 왜 그러신다니까지 부모님의 이야기나 또 가족의 대소사를 가감 없이 학교에 소식을 나눠주는 가정통신원이기도 합니다. 거의 다 들어주지만 다른 사람은 알면 안 되는 것들은 따로 불러 아빠의 입장이자 선생님의 입장으로 속닥속닥 우리끼리만 알아야 하는 비밀 이야기처럼 이야기해 주기도 합니다.
요즘 어린이들 보통 아니라고 하시지만, 그거 아세요?
아무리 보통 아니고 똑똑해도 8살은 8살이라는 사실을요. 자꾸 들어주고 자꾸 이야기해 주고 자꾸 나누다 보면 우주의 중심이 엄마, 아빠, 가족에서 선생님과 학교, 친구들로 바뀝니다. 그러다 보면 충돌도 있고 궤도 없는 공간을 떠도는 때도 생기는 거죠. 그러니 우리 부모님들 너무 걱정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어린이들의 우주는 그러면서 조금씩 커져가고 있는 중이거든요. 우주인에서 지구인으로 거듭나는 아이들만의 우주가 생성되고 있는 거에요. 머물던 은하에서 다른 은하로 옮겨가는 모습이 불안하고 걱정스럽고 서운할 수도 있지만 이제 기꺼이 그 은하로 스스로 날아가볼 수 있도록 관심의 연료를 채워주시면 좋겠습니다.
마리샘의 봄동요들은 유튜브 '마리샘' 채널 http://MarrieSam.tv 에서 언제든지 들으실 수 있습니다.
새로운 학기를 준비하며 또 따스한 봄을 기다리며 봄 동요들을 모으다 생각이 여기까지 왔습니다. 간단하게 봄 동요 소개를 해보려고 시작한 글인데 언제나처럼 생각이 꼬리가 길어졌습니다.
함께 봄노래하면 따뜻한 봄이 조금더 일찍 우리에게 와줄까요?
따스한 봄인 어린이들을 기다리며 선생님들은 새학기 준비를 열심히 하고 있으니 어서 건강하고 안전한 모습으로 우리 봄들을 학교에서, 그리고 교실에서 만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