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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샘 Jul 24. 2020

다시, 제주 #2 : 나와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시간

랜선 여행 이야기 시리즈 '다시, 제주'

동요제 다음날, 차마 제주를 그냥 떠나지 못하고 일정을 바꿔 하루 더 머무르기로 했습니다.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었지만 비 오는 제주도 좋습니다.


아침에 바다가 보이는 아늑한 숙소 침대에서 게으름을 피우다 열 시가 넘어 길을 나섰습니다. 숙소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던 애월초등학교 더럭 분교장을 방문했습니다.


제주 역시 사람 사는 곳이기 때문에 학교들이 참 많습니다. 도시처럼 아주 규모가 큰 학교도 있고, 정말 작은 학교도 많습니다. 그리고 그 학교에 딸린 분교도 많지요. 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광경이지만 아직 지방에는 이런 분교가 많습니다.


이번이 두 번째 방문이고 처음엔 아주 생소한 곳이었습니다. 예전에 삼성의 스마트폰인 갤럭시 노트 광고에 등장했던 곳입니다. 나름 좀 다양한 스토리를 지니고 있는 곳인데 모르고 그냥 방문하면 예쁘게 잘 색칠해진 시골 분교 건물일 따름입니다. 살수록 알아지는 건 아는 만큼 보인다는 거네요.


삼성 갤럭시노트 컬러프로젝트 '더럭분교편' / 출처 - https://www.youtube.com/watch?v=RQjnQPYLu9A


애월초등학교 더럭분교장 아이들 / 출처 - https://www.youtube.com/watch?v=FyZp2GvqjKs

꽤 오래전 이야기이지만 이 더럭 분교에는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무채색이던 학교가 모두 함께 예쁜 색으로 만들어져 가는 모습이 참 뭉클합니다. 학교와 관련된 이야기는 그게 무엇이든 여러 가지로 제 가슴을 뭉클하게 합니다.


더럭 분교를 처음 보고 떠오른 건 '칸딘스키'였습니다. 조각보 같은 그런 색감과 모양 때문이었을까요.


더럭 분교는 관광지가 아니기 때문에 방문자를 위한 어떠한 배려도 없습니다. 당연한 겁니다. 그냥 초등학교이기 때문에 그런 배려를 할 필요가 없는 것이지요. 반대로 관광지가 아닌 곳을 방문하는 관광객들이 학교를 위해 배려를 좀 해야 합니다. 주말이었기 망정이지 평일 같았으면 그날 운동장에서 관광객들이 하던 일들은 수업에 상당히 방해가 될만한 것들이었습니다. 조용히 교문을 지나는데 학교 건물에 함부로 드나들거나 하지 말아 달라고 안내 표지판도 세워 둔 걸 볼 수 있습니다.


대담하다 못해 무모하기까지 한 저도 망설였습니다. 결국 먼저 다녀간 수많은 방문객들과 우리는 주의했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주의해야 합니다.


사실 학교는 상시 개방시설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학생들의 안전 문제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방문증을 정식으로 발급받아 돌아봐야 합니다. 하지만 이미 매스컴 등을 통해서 관광지 아닌 관광지가 되어버린 학교 측에서는 방문객들의 편의를 봐주어 제한적으로 개방을 하는 것이니 꼭 금지 사항을 같이 지켜주셨으면 하는 부탁을 학교에서 아이들과 함께하는 사람으로서 부탁드려봅니다.


애월초등학교 더럭분교장. 평범한 시골 학교입니다. 배려해주세요.


이렇게 색 배치가 되어 있습니다. 다른 사진은 별로 남기지 않았습니다. 아이들과 미술 시간에 색채 공부할 때 쓰려고 몇 장 찍어온 것 말고는요.


그냥 보았다면 아무렇게나 칠한 줄 알았겠지만 앞서 봤던 영상을 통해서 알 수 있듯이 프랑스의 '장 필립'이라는 할아버지께서 디자인해주신 거라고 합니다. 그 할아버지의 정식 이름은 '장 필립 랑크로'입니다. 더 자세하게 알고 싶으신 분들은 조금만 검색하시면 많은 자료를 만날 수 있습니다.


더럭 분교를 돌아본 소감은 페인트가 예쁘게 잘 칠해진 시골 초등학교라는 것입니다.


여느 시골 초등학교도 이렇게 칠해 놓으면 더럭 분교만큼의 예쁨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전국 곳곳의 초등학교들이 다양한 개성을 뽐내는 컬러로 페인트를 칠해나가고 있습니다. 이젠 점점 기성세대로 가는 우리네 학창 시절의 그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입니다.


이렇게 예쁜 더럭 분교는 사실 나와 어떤 어떤 이야기도 공유하고 있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이곳을 방문해서 이제야 비로소 나와의 이야기를 시작했을 뿐 나와의 이야기가 없는 세상 그 무엇도 그저 껍데기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없어진 제20회 MBC 창작동요제에서 '풍금소리 노랫소리'라는 곡이 대상을 차지한 적이 있습니다. 잊은 줄 알았던 그 동요의 노랫말과 멜로디가 더럭 분교를 도는 내내 떠올랐습니다.


바닷가 언덕 위 학교에서 들려오던 그 소리
이제 그곳에는 아이들도 선생님도 없어요
마당엔 풀들이 자라고 새들만 놀러 오지만
마을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지금도 들려온대요
바다로 하늘로 울려 퍼지던
풍금소리 노랫소리 아이들의 노랫소리

-풍금소리 노랫소리 가사 전문-


퐁금소리 노랫소리 / 출처 - 뽀뽀뽀 프렌즈 https://www.youtube.com/watch?v=os79L

학교가 사라진 시골 풍경은 이미 예전의 그것이 아니랍니다. 앞만 보고 달려온 우리 모두가 그 어느 때보다도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내 주변의 작고 사소한 것도 나와 만들어가는 이야기가 생기면 그것 나름의 소중함과 애틋함이 묻어나게 된다는 겁니다. 이 더럭 분교의 매력은 예쁜 디자인과 색이 프랑스의 유명한 할아버지 작품이라서도 아니고, 매스컴을 통해 알려져서도, 방문객이 많아서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예쁘게 칠해진 동기는 광고를 위함이었을지 모르나 함께한 수많은 이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결론적으로는 광고를 위한 일이었지만 그 당시 학생, 선생님, 부모님 등 더럭 분교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하지만 이야기는 멈춰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 당시의 이야기로 멈추어 버리면 낡고 고루한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학교의 페인트야 같은 색으로 보수하면 되지만 그 안에 담딘 이야기들은 잊히고 나면 보수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애월초등학교 더럭분교장 이완국 선생님 / 출처 - https://www.youtube.com/watch?v=LSIIBhw6nzg


그 당시 모든 더럭 분교 구성원들의 이야기가 담긴 이 풍경을 지금의 더럭 분교 구성원들이 계속 이어 이야기를 만들어 가고, 거기에 대해 방문하시는 분들도 그 이야기의 한 축이 되어주시면 좋지 않을까요?


개인적으로는 박제처럼 예쁘게 남은 학교가 아니라 이 이후로도 더럭 분교만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더럭 분교가 되어 방문객들이 그 이야기를 지나면서 한 모금씩 마시고 갈 수 있는 이야기 옹달샘이 되어주면 좋겠습니다.


시골 작은 학교에서 아이들과 배움을 실천하는 사랑 가득한 초등교사의 입장으로 점점 작은 학교들은 폐교가 되어 사라져 가고 추억도 같이 사그라지는 현실 속에서 자신만의 이야기를 가진 더럭 분교로 계속되길 간절히 염원하며 더럭 분교를 벗어납니다.


그리고 많은 생각을 정리하며 향한 곳은 제주 협재 '금릉'입니다.

비양도. 지난번 글에서 첫 사진으로 보여드렸습니다.


금릉에서 한 일은 바닷가 턱에 걸터앉아 비양도를 바라보며 멍하니 있다 어묵 두 개 사 먹고 온 거밖에 없습니다. 그래도 좋았어요. 좋더라고요. 그냥 좋더라구요. 어묵 파는 아저씨께서 서울서 왔냐고 물어보셔서 바로 대답했습니다.


아따, 쩌그 전라도에서 왔어요.


아저씨와 아내분께서 웃음을 빵 터트리셨습니다. 즐거운 하루 보내시라고 마저 인사하고 돌아섰습니다.


그리고 바로 근처 '한림공원'에 입장했습니다. 어릴 적 제주가 친정이셨던 어머니를 따라왔던 이곳엔 대관람차도 있었던 거 같습니다. 기억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외가가 제주라 한림공원에 자주 왔었는데 이번 방문은 딱 삼십여 년 만의 방문이었습니다.


그때 기억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는데 공원에 들어서서 돌다 보니 새록새록 그 어렴풋하던 기억이 조금씩 돌아옵니다. 늦가을 아님 초겨울쯤인데 날씨가 너무 포근해서 마치 다른 세상 속을 걷고 있는 듯합니다. 산책로 길가 귤나무에 달린 커다란 귤들이 이곳이 제주라는 걸 자꾸 말해줍니다.


그리고 공원 안에 있는 역사관을 둘러보다 소름이 돋았습니다. 왜냐하면 삼십여년전 한림공원엔 대관람차가 있었다고 사진으로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어릴 적 기억이 맞았나 봅니다.


한림공원과 삼십여 년 만에 다시 만났는데 왠지 그대로 같은 이 느낌은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공원을 두 시간 정도 천천히 걸어서 돌다 보니 점심시간을 넘겨서 아주 늦은 오후가 되어 버렸습니다. 여행은 패키지가 아닌 이상 한 번도 계획대로 시간을 지켜본 일이 없는 것 같습니다.


어제 산굼부리 근처에 있다는 해물찜 집으로 다시 달립니다. 맛있는 게 먹고 싶어서요. 제주 여행하면서 음식은 대충 사 먹었는데 이제는 음식도 같이 즐겨보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동선에 있는 자그마한 식당들에 맛있는 것들이 가득하네요.


섬에서 근무하면서 다른 섬에 있는 해물찜 식당엘 갔네요. '각지불 식당'


해물찜을 끝으로 제주 여행은 마무리 지었습니다.


바다가 잘 보이는 마지막 숙소에서 오는 길엔 잠깐 들른 오설록 티 뮤지엄에서 사 온 향기 좋은 차를 마시며 바다만 하염없이 바라보다 잠들어 새벽 비행기로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습니다.


제주에 가서 삼일 동안 서너 군데 돌았다고 하니 핀잔을 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갈 곳이 많은데 달랑 그것만 돌아다녔냐구요. 사실 돌아다니지 않았습니다. 그냥 거기서 머물다 온 건데요. 여행의 가치나 방법도 사람마다 다른 것 아니겠어요? 저는 이제 이런 여행이 좋습니다. 여러 번 가면 한번 가서 수학여행처럼 찍고 오는 여행 안 하고 꼭꼭 씹어 잘 소화되는 여행이 좋아집니다.


갔다 왔다는 내색 보단 잘 다녀왔다는 추억이 많이 남길 바라면서요. 그리고 제주 이야기는 시리즈로 일단락할 때까지 쭉 정리해 보려고 합니다. 총 열세 번의 제주 여행 이야기를 시점도 시간도 날짜도 뒤죽박죽이지만 정리해보겠습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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