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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샘 Jul 24. 2020

다시 제주 #4 : '오름' 이야기

랜선 여행 이야기 시리즈 '다시, 제주'

'따라비 오름' 가는 길

앞서 예고했듯이 이번 제주 이야기는 '오름'입니다.


나이 든 티를 좀 내자면 학창시절엔 이 '오름'이라고 부르지 않고 '기생화산'이라는 벌레 같은 이름으로 불렀습니다. 제주 지도에 보면 평지에 나타나는 등고선이 바로 이 '오름'입니다. 오름이라는 말이 참 좋습니다. 이를테면 화산활동으로 생긴 작은 언덕이지요. 그런데 또 언덕이라고 하기엔 높기도 하거니와 분화구를 다 가지고 있으니 기생화산이 맞기도 하니 예쁜 이름 '오름'이 딱입니다.


제가 올라본 오름이 계절 따라 어떻게 변하는지도 조금은 이야기하려고 하니 오늘은 글이 좀 길어질 듯합니다.


제주에 자주 가면서도 최근까지 오름에 가질 않았습니다. 뒷동산도 안 오르는 데 오름에 오를리가 만무하지요. 다른 이들은 산이 있어서 오른 다는 데 산은 구경하라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살았습니다. 그러다 다른 사람의 손에 이끌리어 오래전 처음 오름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잘 따라오라고 그랬는지 이름도 '따라비 오름' 입니다. 제 삶의 첫 오름입니다.


음 ...... 음 ...... 음 ...... 저게 오름이란 말이지? 음 .... 꽤? 높은데?


일단 오름 입구를 지나 오름을 한번 바라봐 주었습니다. 뒷모습에서 많은 것들이 느껴지시지요? 정말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쿵푸 팬더 '포'도 생각이 나고 이걸 올라야 한다니 까마득했습니다.


그래도 나섰으니 투덜대지 않고 올라보기로 합니다. 이 오름이 오르기에 가장 난도가 낮은 오름이라고 하니 그나마 좀 괜찮겠다 싶어 따라 오릅니다. 게다가 계단이 절반이라는 정보를 듣고 경사가 급한 건 아닌 모양이구나 하고 안심도 좀 했지요.


평평한 길을 따라 걷다 드디어 계단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쿵후 팬더 '포'처럼 속으로 말했습니다.


드디어 만났군 나의 원수, 계단!
경사가 급하지 않다며? 그냥 오를 수 있다며?


계단이 살짝 경사가 있었지만 이 정도 계단이면 오를 수 있겠구나 하고 열심히 올랐는데 또 계단을 만납니다.



이건 다 올라와서 찍은 사진이지만 아래에서 올려다 본 계단을 숫자도 경사도 제 눈엔 수직처럼 보였습니다. 느리게 느리게 사는 것도 좋지만 너무 운동을 안 했나 봅니다.


그렇게 한 30분 정도 걸으니 거짓말처럼 정상이 나옵니다. 뾰족한 모양이 아니다 보니 정상이 꽤 깁니다. 분화구를 중심으로 동그랗게 제주의 풍광을 내려볼 수 있습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어느 오름이나 오르면 제주의 거의 모든 곳을 눈으로 직접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정상에 올라 분화구를 따라 걷습니다. 그리고 거친 숨을 정리하며 주변을 돌아보았습니다.



분화구 한 바퀴를 돌며 찍은 사진들인데 그냥 뭐라 할 말이 없었습니다. 오름 주변의 풍광이 눈앞에 너무나 넓게 펼쳐집니다. 따로 무슨 말을 할 필요가 없더라구요. 오름에 오르기 전까지의 마음들이 부끄러울 만큼 겨울에 오른 오름은 예쁜 색으로 모든 것을 구경시켜 주었습니다. 생각했습니다. 앞으론 제주에 올 때마다 오름 하나씩은 꼭 올라봐야겠다.


그리고 그 약속을 잘 지켜오고 있습니다. 지난겨울엔 또 하나의 오름을 올랐습니다.



용눈이 오름.


두 번째 오름으로 이 오름을 선택한 건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사진작가 김영갑 선생님의 '갤러리 두모악'에 전시된 선생님의 용눈이 오름 사진들을 보고 그 풍광에 반해버렸기 때문입니다. 평생을 용눈이 오름만 찍으셨다고 하시니 그 누구보다 용눈이 오름을 잘 알고 계시지 않을까요?



혹시 다녀오신 분도 있으시겠지만 알고 가시면 더 깊이까지 보고 올 수 있으니 정보 확인해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아 공식 홈페이지도 남겨봅니다.


두모악
www.dumoak.com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갤러리 두모악'은 이제 전시관 내 사진 촬영 및 동영상 촬영을 금지하니 꼭 참고 하시기 바랍니다. 아마 선생님께서 평생을 담은 사진들이 또 누군가에게 다시 찍혀서 여기저기 돌아다녀서가 아닌가 합니다. 입장료를 내고 관람하는 것이지만 지켜야 할 것들이 좀 있습니다.


특히 갤러리 두모악은 관람료를 내면 입장권 대신 사진엽서를 한 사람당 한 장씩 제공합니다. 너무 좋은 생각이고 여행 후에 따로 기념품을 남기지 않아도 여행 가방에서 나온 갤러리 두모악의 사진 엽서는 잠시 여행의 여운을 정리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방긋 웃게 됩니다.


이런 이유로 '용눈이 오름'을 두 번째 오름으로 정하고 지난 겨울에 다녀왔습니다. 그리고 올 여름 끝자락에 다시 한번 다녀왔습니다. 그렇게 투덜거렸던 오름 오르기인데 같은 오름을 두번씩이 다시 오르다니 사람의 마음과 삶의 가치도 바꾸는 매력을 가지고 있는 오름입니다. 김영갑 선생님이 왜 이 오름을 평생 사랑하며 살 수 밖에 없었는지 아주 조금은 느낄 수 있었지요.



용눈이 오름은 특히 여름과 겨울에 다녀오게 되어 확연한 감성의 차이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번 여름에 다시 오를 때는 여기가 지난 겨울에 올랐던 오름인가 싶었습니다. 부는 바람의 냄새나 색, 모든 것이 그대로인 것은 없었습니다.


어쩜 같은 곳인데 이렇게 다른 느낌을 줄 수 있는지 매력이 넘치는 곳이 분명합니다. 꽃이 피는 봄에도 꼭 다시 한번 와보고 싶단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여름의 용눈이 오름
겨울의 용눈이 오름


어떤가요? 사진만으로도 전혀 다른 분위기가 느껴지지 않나요?


이런 구도의 사진이 있는 줄 모르고 찍었는데 이번 여름에도 같은 구도로 사진을 찍은 게 있어서 놀랐습니다. 저는 이 구도가 참 마음에 드나 봅니다. 그래서 이렇게 글을 읽는 분들에게 계절의 변화가 주는 느낌의 변화를 사진 두장으로 명료하게 설명해 드릴 수도 있구요. 용눈이 오름을 겨울에만 가봤더라면 겨울의 모습만을 용눈이 오름의 모습으로 간직할 뻔 했습니다. 여름에도 가보니 또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살면서 편견으로 또는 지나친 순간 만으로 사람이나 사물을 판단하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흔히들 그걸 '첫인상'이라고도 하는데 '첫인상'을 믿지 않아야 하겠다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해오고 있고 지금은 단단하게 마음 먹었습니다.


누구의 페이스북이든 누구의 인스타그램이든 그건 그 사람의 순간일 따름입니다. 요즘 그런 것들로 주변인들의 행복한 모습에 좌절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고 합니다. 자신의 삶도 자체로 반짝 반짝 한데 굳이 다른 이의 빛깔에 견주어 그걸 스스로 초라하게 느낄 필요가 있을까요?


그리고 나를 좋다고 하는 사람들이나 나를 이상하다고 하는 사람들도 알고 보면 나의 좋은 순간을 지났거나 나의 좋지 않은 모습을 지나쳤을 따름이지요. 그렇게 순간을들 수만개 모으면 아마도 그 사람의 어떤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우리가 살면서 그럴 수가 있나요? 그래서 오해 받는 사람도 많을 거고 본인의 의도와는 다르게 사건이 건개되는 경우도 분명 많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겨울과 여름의 용눈이 오름은 제게 그런 것들을 가져다 줍니다. 더 쓰면 쓸데없이 진지해 질테니 오늘은 귀욤 뮈소의 '스키다마링크(Skidamarink)'의 한 구절을 또 소환하며 마무리할까 합니다.


이 세상에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이 많은 건
그들이 다 지나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제주에 있으시다면 오름에 꼭 올라보세요.

새로운 생각과 새로운 마음이 자라는 걸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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