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가 앞인지 아무도 모른다!
꺼내어 쓰는 삶의 연속이라 충전하지 않으면 더는 꺼내어 쓸 게 없어질까 하는 두려움이 늘 내내 평생을 따라다닙니다. 알고 보면 모든 하루들이 똑같은 듯하지만 같은 날이 단 하루도 없어서 그런 걱정 같은 건 안 해도 되는데 어느 방향으로든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건 그만큼 다른 것들도 많이 주워 담아야 하는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딸램들이 듣는 아이돌 음악이나 아이돌 음악이 아니더라도 요즘 음악들은 뭔가 50을 향해가는 아저씨에겐 기승전결이 없어서 다소 밋밋하거나 지루한 반복같이 느껴지는 게 있어서 진지하게 딸램들에게 본인들이 듣는 음악의 감상 포인트 비슷한 걸 물은 적이 있는데 생각보다 세세하게 알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습니다.
늘 무선이든 유선이든 이어폰 종류를 귀에 끼고 살기 때문에 시끄럽고 자극적인 음악은 오래 들을 수 없고 소설처럼 기승전결이 있는 노랫말과 멜로디는 고민을 해야 하니 반복적이고 읊조리는 듯한 멜로디 라인을 가진 음악을 즐겨 듣는다는 사실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그래야 긴 시간 이어폰을 끼고 있어도 부담스럽지 않게 들을 수 있다는 이야기도 전해 들었는데 세상에 이렇게 깊은 뜻이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무엇보다 더 놀랐던 사실은 듣는 음악 그 자체가 음악을 듣는 이유의 전부는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냥 듣는다는 그 말이 뭔가 수긍이 가면서도 목적 없는 행동이 있을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하기도 했습니다. 깊이 생각해 보면 '그냥'이라기보단 아이들의 일상 속에 늘 있는 것이다 보니 이유가 있긴 있겠지만 굳이 찾으려 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겠단 생각입니다.
조금씩 커가는 자녀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일은 취향을 떠나서 조금 재미난 일이기도 합니다. 그치만 확연히 다른 서로의 취향으로 집안 A.I. 스피커 쟁탈전이 심각하긴 합니다.
그런 딸램들과 오랜만에 함께 키크니님의 전시회를 다녀왔습니다.
그림을 잘 그리고 좋아하는 막내 딸램은 자기 성향과는 맞지 않는지 연신 투덜대며 따라왔고 전시회를 알아보고 적극 추천한 그림 못 그리고 관심 없는 큰딸이자 둘째는 신나하며 앞장섰습니다. 개인적으로 '키크니'님을 인스타그램을 통해서 처음 알게 되었는데 그림 속에 담겼을지 모를 작가님의 고민을 상상해 보는 행복이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키크니님의 그림과 글 한 줄엔 설명할 수 없는 웃음 나는 슬픔이 묻어 있어 제 정서랑 딱입니다. 이런 정서를 누구에게 공감받긴 힘들지만 조금은 비슷한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안도감 비슷한 느낌을 가져봅니다.
울다가 웃다가 키크니님의 이야기에 마음이 두근두근했습니다. 키크니님 인스타그램에 이미 모두 공개가 되어 있긴 하지만 키크니님의 스타일을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아 몇 가지 남겨봅니다.
딸램들이랑 함께 보고 정말 빵 터져버린 싸우는 자매를 말리는 어머니의 모습입니다. 웃는 데 자꾸 눈물이 나서 참 이상했습니다.
그리고 새하얀 벽에 아마도 키크니님의 글씨체일지 모를 글씨로 남겨진 글귀들은 멋진 척, 잘난 척 없이 그냥 삶 속의 문장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전시를 다 보고 오는 길에 큰 아이에게 보내준 아빠의 선택은 바로 이 전시였습니다.
삶은 속도보다 방향성이 중요하다고 하는데 그 방향성도 사실은 누가 정한 방향성인지 의문이 들 때가 있었는데 이 공간을 보고는 정말 마음이 미어지듯 슬프고 기뻤습니다.
사는 게 어디가 앞인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니 똑바로 걸으라느니 이렇게 살라느니 잔소리 그만하기로 하는 겁니다. 다들 알아서 자신의 앞으로 나아가면 되는 거니까요. 우리는 그냥 우리의 앞을 향해 잘 걸어가면 됩니다. 그러니 누가 좀 내 길에 대해서 비난하고 시비 걸어도 그냥 내가 가는, 내가 보는 거기가 앞인 겁니다. 세상에 정해진 앞은 없어요. 가고 싶으면 가는 겁니다.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은 목석같이 사는 날들을 늘 생각합니다. 어렵지만 꼭 그렇게 사는 날들이 오리라 생각해 봅니다.
<2024년 7월 18일>
*이글은 네이버블로그 마리샘에 동시에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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