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날이면 애매한 입장에 처합니다. 부모이기도 하고 자녀이기도 하니 참 애매합니다. 그래서 애매하느니 차라리 확실하게 자녀의 입장으로 돌아 앉습니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부모로 살아갈 날들이 자녀로 살아갈 날들보다 길기 때문에 자녀로서의 삶에 더 충실해지는 시간들입니다.
새벽 같이 수학여행을 출발하는 중학생 둘째를 배웅하고 와서 곤히 잠든 또 중학생 막내딸을 깨웁니다. 전날 둘이 가서 사온 카네이션 화분 두개가 냉장고 안에 나란히 자리 잡고 있습니다.
세상사 모든 것이 배워서 익히는 습관입니다. 부모님을 향한 그 마음이 엄청나게 크고 간절해도 표현하지 않으면 쉽게 알아차리기도 알려주기도 쉽지 않기 때문에 자꾸 표현할 수 있도록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이벤트를 아이들에게 자꾸자꾸 가르쳐서 습관으로 만들고 있는 중입니다. 뭐든 해본 사람이 잘하고 잘하는 사람이 더 잘합니다. 부모님을 대하는 가치와 생각도 마찬가지의 성격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아침에 근처 할머니댁에 들러 카네이션 화분과 길고 긴 카톡으로 감사를 표현하라고 수일 전부터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했더니 그래도 그렇게 해주어 고마운 마음입니다. 그런데 더불어 부모에게도 비슷한 양상으로 준비해서 전한 걸 보니 배움이 아무리 잉크 한점이라도 어른이들이 가르치고 뿌리는 물이 닿으면 은은하게 퍼지는 듯합니다. 그래서 오늘 아침엔 수학여행 간 둘째를 대신해서 막내딸에게 이렇게 화분을 전해받았습니다.
세 자녀의 사춘기를 겪어 내고 또 세번째 겪어 내고 있는 중에 깨달은 것들이 좀 있습니다. 그 중에 가장 큰 건 바로 자녀를 양육하는 일은 '남는 장사가 아니다'라는 사실입니다. 사는 일이 시종일관 주고 받는 관계일지라도 부모와 자녀는 그럴 수 가 없습니다. 자녀 이기는 부모 없다고 정말 해보니 아주 오래전 고집 부려서 결국 원하는 길을 걷고 있는 스스로만 보더라도 결국 부모는 자녀를 이길 수 없습니다. 자신 있다고 하셔도 결국 이길 수 없을 겁니다. 모든 부모는 자녀들이 고생 없이 평온하게 잘 살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옳고 그름을 떠나 자녀의 가치를 받아들 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살아온 삶의 시간들은 자녀가 살아갈 시간들과는 많은 것들이 다릅니다. 그걸 인정하는 부모의 용기도 필요하구요.
개인적으로 최근에 많은 우여 곡절이 있는 중에 깨달은 바 자녀는 있는 그대로도 충분하다는 사실입니다. 그 이외는 모두 부모의 욕심이었습니다. 아니라고 우겨보고 싶지만 욕심이더라구요. 부모가 먼저 살아보고 겪어보고 자녀는 어려운 시간들을 겪지 않았으면 하지만 그것도 사실은 자녀가 변화하는 이 세상에 설 수 있도록 몸과 마음의 근육을 키우는 시간인데 그것마져 빼앗는 일이더라구요. 그래서 이 어렵고 또 어려운 이 시간들 속에서 두발로 자신의 할일을 해가며 살아내주는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하고 충분하다'는 생각이 너무 간절하게 들었습니다.
특히 아빠 덕에 시골에서 고등학교까지 졸업하고 서울로 대학을 간 첫째를 보니 더더욱 사는 일은 부모가 간섭할 일이 아니라 도와야할 일이라는 걸 더 깨닫게 됩니다.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무슨 말을 생각해내도 결국 나머지는 부모의 욕심일 따름입니다.
자녀들이 만나는 세상의 모든 일은 자녀에겐 처음인 일입니다. 그러니 잘 할 수 없는 게 당연하고 좌충우돌 자신만의 답과 루틴을 찾아가는 그 과정이 당연한 건데 그걸 참아내는 게 그렇게 어렵기만 합니다. 밖으로 나가려는 잔소리를 부여잡고 솟아 오르는 걱정을 꾹꾹 누르며 부모로서의 삶을 부여 잡아 봅니다.
그렇게 비추어 보니 자녀로서의 삶은 이제 슬픈 마음까지 듭니다. 연세가 많아지셔서 당연히 함께하던 모든 시간들이 이제는 마지막 순간이 될까봐 시린 마음을 붙잡고 더 많이 뵙고 더 많이 투닥이며 지내보려고 애쓰는 중입니다. 부모님을 대할 때면 우리를 양육하셨을 그 시간을 자꾸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 부모님도 우리를, 우리가 우리 자녀를 양육했던 것처럼 키우셨을 거고 그 시절은 편해진 지금보다 더 혹독한 환경이었을 텐데하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동생에게 어버이날이니 어머니 모시고 식사 하자고 하니 바쁘다고 해서 잔소리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순순하게 오겠노라 했고 오는데 늦어진다 해서 다시 잔소리를 하니 올 수 있는 시간이 많이 당겨졌습니다. 언제부터 부모님을 그렇게 생각했는지 그 시점이 정확하지는 않지만 시간이 가고 있음을 의식한 순간부터가 아닐까 합니다. 그래서 최근엔 부모로서의 삶보다 자녀로서의 삶에 비중을 더 두려고 애쓰는 중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바보 같은 짓이 지나고 나서 후회하는 것입니다. 지나 보내지 말고 내 앞에 있을 때 최선을 다하는 겁니다. 그랬어야 하는데, 그랬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은 돌이킬 수 없는 그 후회에 대한 스스로에게 하는 위로는 될 지언정 지나가버린 것들은 돌아오지 않으니까요.
소중한 것은 어디에도 머무르지 않습니다. 그러니 우리 지나가는 이 시간들을 힘 주어 꽉 잡아보면 좋겠습니다. 부모님도 자녀도 서로에게 충분하고 충분한 존재입니다. 그러니 욕심은 내지 말기로 합니다.
<2024년 5월 8일>
*이글은 네이버블로그 마리샘에 동시 연재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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