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성역에서 만난 동요 <꽃밭에서> 그리고 내 이야기

신나는 여름 여행 #1

by 마리샘
SE-41634588-6adf-4c31-98bd-bf9b0d52d9e5.jpg?type=w1 보성역 입구에서 만난 동요 '꽃밭에서(어효선 작사/ 권길상 작곡)' 악보.

미루고 미루다 더 미루면 가을의 어디쯤일 듯하여 여름의 시간들을 정리해 봅니다.


올여름엔 수많은 짧은 여행들이 있었습니다. 제주가 그랬고 또 딸내미들과 나선 여름 여행이 그랬습니다. 정말 올여름엔 특별한 계획 없이, 정확히는 무계획의 여행을 나섰습니다. 준비는 철저하게 했지만 발길 닿는 대로 한번 가보자는 의견이 모여 그렇게 해보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혹시 모를 캠핑도 생각하여 짐을 꾸리다 보니 9인승 자동차가 사람 3명 앉을 자리를 빼고는 짐으로 가득 찼습니다. 카메라까지 챙기다 보니 정말 짐이 어마어마했습니다. 무계획의 여행은 원래 목적이 심플하고 가벼운 여행을 가보려던 것이었는데 출발부터 엄청나게 무거운 출발이 되었습니다.


나중에 이야기가 나오겠지만 결국 캠핑 짐은 한 번도 펴질 못했습니다. 날씨도 너무 덥고 딸내미들과 함께하는 여행이라 안전 문제도 있어서 결국 숙박은 모두 숙소에 머무르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무작정 출발하여 정한 첫 번째 목적지는 동쪽으로 향하던 길에 만난 보성역이었습니다. 지금도 기차가 다니고 있는 역입니다. 사실 목적지라기보다는 갈 길이 멀어 잠깐 쉬어가자는 느낌이었는데 머물러 버렸습니다.


보성역 입구에는 동요 '꽃밭에서(어효선 작사/ 권길상 작곡)'의 악보가 흰색분필로 사보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역 안쪽에는 말끔한 풍금이 하나 놓여 있었습니다. 그냥 지나칠 수 없어 '꽃밭에서'를 두꺼운 손가락으로 연주하며 노래도 불렀지요. 아무도 없어서 누군가에게 민폐는 아니었으니 너무 염려는 안 하셔도 되겠습니다. 그렇게 부르라고 치라고 둔 거라고 하더라구요.

딸내미들이 혼자 추억에 잠겨 연주하는 모습을 살짝 영상으로 남겨주었으면 바람은 있었으나 자매는 또 자기들만의 놀이에 빠져 아빠의 연주와 노래엔 관심이 없습니다. 아빠와 동요란 그저 딸내미들이 성장하며 겪어온 풍경의 한조각일 따름이지요.


그래서 이날 연주한 영상은 아니지만 1년 전 같은 보성 지역에 있는 명소 보성여관 홀에 있던 풍금을 연주했던 영상을 짧게 실어봅니다.

그래도 또 노래를 들어야겠기에 KBS '누가 누가 잘하나' 유튜브 영상 중에 재생목록에 넣어두고 종종 듣는 백솔 친구가 노래한 '꽃밭에서' 영상을 가져와 봅니다.

'꽃밭에서'라는 동요를 정말 정말 좋아합니다. 뭐랄까 애틋한 분위기도 있고 또 아빠랑 같이 채송화를 심는 모습을 그려볼 수 있어서 참 좋습니다.


하지만 이 노랫말은 사실 우리의 아픈 과거인 전쟁에서 돌아오지 못한 아빠와의 추억을 그리는 노랫말입니다. 아빠랑 함께 만들어 놓은 꽃밭의 꽃들은 피어 만발인데 돌아오지 못하는 아빠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아빠하고 나하고 만든 꽃밭에

채송화도 봉숭화도 한창 입니다

아빠가 매어놓은 새끼줄 따라

나팔꽃도 어울리게 피었습니다


애들하고 재밌게 뛰어 놀다가

아빠 생각나서 꽃을 봅니다

아빠는 꽃보며 살자 그랬죠

날 보고 꽃같이 살자 그랬죠


'꽃밭에서(어효선 작사 / 권길상 작곡)' 노랫말 전문


지금 세대의 어린이들에게는 다소 무거운 내용일 수 있지만 그런 역사적 배경을 생각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아빠랑 뭔가를 하는 일은 많은 아빠들의 마음을 울컥하게 합니다. 같은 이유로 아빠와의 추억을 담은 노래들 역시 마음이 더 울컥합니다.


거기에 더해 어릴 적 우리 집 마당 수돗가에 채송화가 만발하면 정말 행복했던 기억도 있어서 더 그렇습니다. 심지어 마당 수돗가에 청포도 줄기도 있어서 시큼한 청포도를 먹었던 기억도 같이 따라옵니다. 대학생 때까지도 시골집엔 그런 추억들이 정말 많습니다.


거의 23년전에 쓴 글을 희귀한 저의 산문집 '감기 한잔, 외로움 두 스푼(이세일, 2017)'에서 한편 가져와 봅니다.

시골집은 마당이 참 넓다. 집 뒤터도 꽤 넓어서 매년 어머니께서 고추며 오이에 콩도 심고하셔서 여름에 우리 집 식탁은 농약 한번 안한 싱싱하기가 이를 데 없는 채소로 가득하다. 하지만 여름에 오는 태풍은 그런 우리 집 여름 식탁에 황량함을 몰고 온다. 태풍이 지나간 뒤터는 고추가 대나무로 만들어 놓은 지지대를 벗어나 땅바닥에 누워 버리고, 오이는 워낙 약한 식물이라서 뭐 잴 것도 없이 줄기가 널브러진다.


그 넓디넓은 뒤터에 여기저기 처참하게 쓰러진 고추며 여러 가지 식물을 보자면 눈물부터 난다. 어머니께서 소일거리 삼아 봄부터 김도 매시고 모종도 심으시고 하셔서 기른 게 그렇게 허무하게 쓰려져 버린 그 광경을 보고 누군들 마음이 안 아플까. 뉴스에서 보게 되는 눈가가 주름투성이로 눈시울을 붉게 물들이며 아쉬워하는 늙은 아낙의 모습이나 삽 한 자루에 기대서서 먼 산 바라보며 담배 한 대 태우시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절대로 뉴스거리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흔히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땅은 정직하다고 한다. 물론 사실이기는 하다. 하지만 정직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이 땅덩이는 너무나 순둥이다. 사람들이 뿌리는 온갖 오물에도 한마디 뱉을 줄도 모르고, 무심한 태풍이 날리는 강타에 힘 한 번 못 써보고 자기를 기대고 있는 식물들을 지켜주지 못하니 말이다.


오늘 이렇게 무참하게 쓰러진 고춧대를 세웠다. 어머니 말씀처럼 눈(目)이 자꾸 거짓말을 했다. 처음엔 얼마 안 되어 보이던 고추대들이 시간이 가고 세우면 세워갈수록 줄어드는 게 아니라 자구 늘어나는 느낌이 들었다. 어머니께 푸념처럼 말씀드렸더니 눈이 거짓말을 한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어머니를 향해서 한번 활짝 웃어 보이고는 다시 허리를 굽혀서 고춧대를 세워나갔다.


오전부터 시작한 일은 아무래도 끝날 기미가 안 보였다. 어머니께서 점심 먹고 하자며 먼저 내려가서 손 씻고 밥상 좀 보라고 하셨다. 안 그래도 일이 지루해서 자꾸만 도망칠 궁리를 하던 나는 너무나 기쁜 나머지 어머니의 말씀이 떨어지기도 전에 냉큼 마당 수돗가로 갔다. 손을 씻고 수도꼭지를 잠그려는 찰나 내 눈에 뭔가 들어왔다.


줄기 끝에 각기 색이 다른 앙증맞은 꽃을 올리고 있는 채송화였다. 그것도 꽃밭이 아닌 시멘트 틈 사이에 잡초와 함께 말이다. 며칠 전까지 분명히 그 자리에 꽃이 없었다. 하지만 그 순간 내가 본 것은 눈 짐작 만으로도 쉰 송이는 넘어 보이는 채송화 무더기였다. 더더구나 줄기와 잎이 뒤엉켜 마치 한 포기에서 서로 다른 색의 꽃이 핀 것처럼 보였다.


채송화는 내가 좋아하는 동요 '꽃밭에서'에 나오는 꽃이다. 줄기나 잎은, 어찌 보면 꽃마저도 볼 폼 없는 꽃이라고 생각해왔고 일부러 찾아서 볼 생각도 못 한 꽃이다. 여기저기 많은 꽃집에 가도 절대 볼 수 없는 꽃이고 기껏해야 식물도감에서나 볼 수 있는 그런 꽃이 돼버린 지 오래니까 말이다. 그런데 오늘만큼은 유난히도 색이 짙었고 줄기에 힘이 있어 보였다.


매년 피기는 했지만 오늘처럼 신경 써서 본 적이 없다. 예쁘기도 하지. 그리곤 그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 꽃구경을 했다.


'이 녀석이 왜 이리도 싱싱하게 피었을까.'


의외로 답이 간단하게 나왔다. 이 녀석을 이렇게 만든 장본인이 무심하고 야속한 태풍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흘 밤낮 동안 무섭도록 비를 뿌리고 오래된 우리 집 지붕이 날아갈 정도로 불어대던 그 바람을 맞고 이 녀석이 악에 받쳤는지 오늘 이렇게 꿋꿋하고 예쁘게 피었나 보다. 그렇게 생각하니 고춧대 세우느라 짜증이 목까지 찼던 내 가슴에 얼음을 얹은 것처럼 시원해졌다.


냉큼 일어섰다. 그리고 부엌으로 가서 점심상을 보고 어머니께 식사하시라고 전하고 같이 밥상에 마주하고 앉았다. 그리고 채송화 이야기를 어머니께 이야기해 드렸다. 어머니께서 별말씀은 없으셨지만 표정은 별 미친놈 다 본다 하는 그런 표정이셨다. 어릴 때부터 남자아이인데도 소녀 같은 내 감성을 잘 이해하지 못하시던 분이시다.


그래도 좋다. 닮고 싶은 한 가지가 생겼으니 말이다.


우리 집 앞마당에 예쁘게 핀 채송화는 앞으로도 많은 비, 바람을 만날 것이다. 그래도 보란 듯이 채송화는 더 예쁜 꽃들을 피워낼 거라 믿는다.


2002년 7월 5일

#꽃밭 #채송화 #수돗가 #여름이면청포도가가득했는데 #지금은아련한추억


이세일 산문집 '감기 한잔, 외로움 두 스푼' 중 '꽃밭에서 - 채송화가 있는 풍경' 전문



보성에 머무르게 된 김에 근처의 영화 벽화 골목 같은 곳도 들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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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없이 소소한 벽화들이 작은 동네 담을 타고 정겹게 그려져 있었습니다. 인상적인 글들도 많고 닮은 듯 안 닮은 듯한 어릴 적 극장 간판 같은 그림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가장 인상 깊게 남았던 장면은 바로 이 담벼락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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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습을 보고 놀라며 옛날에는 이랬냐 물어서 차마 거짓말하진 못하고 그랬다고 답해주었습니다. 무섭다는 말에 좀 뭐랄까 죄지은 느낌이었습니다. 굳이 왜 이렇게까지 했을까 싶기도 하지만 또 안에 사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조금이라도 안전한 곳에 대한 의지와 바람이 느껴졌습니다.


옛날에는 물리적으로 저렇게 날을 세우고 살았지만 마음만은 잘 연결되어 있었던 것 같은데 요즘은 저런 물리적 날카로움은 덜해졌지만 마음 속에 어쩌면 저것보다 더한 날을 세우고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벽을 두르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른 사람 이야기 아니고 스스로의 이야기입니다. 요즘은 안 밖으로 이중 삼중으로 두껍고 높은 벽을 매일 한칸씩 더 더해가는 스스로에게 정말 놀랄때가 많습니다. 생각이 너무 많아 한참을 더 걷고 걸었습니다.


이렇게 길게 쓰려던 이야기는 아니었는데 쓰다 보니 잊었던 추억까지 새록새록 딸려 올라어고 생각도 깊어져 글이 길어졌습니다. 나머지 이야기는 또 부지런히 정리해서 남겨볼까 합니다.


<2025년 10월 10일>


*이 글은 네이버블로그 마리샘에 동시에 연재되고 있습니다.

https://blog.naver.com/marriesam/224037009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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