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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부쿠마 Jan 10. 2024

17. 척박해도 여유롭게

숨이 막혀도 쉬어보기

성인이 되면서 홀로 생각한 게 있었다.

'여유가 되면 시간이 날 때마다 가볍게 여행을 다녀보자'


하지만 내 인생에 여유가 쉽게 찾아오지는 않았다. 내게 여유는 바로 돈이었다.

그러다 어느 날 너무 인생이 풀리지 않는다는 답답함에 얼마 있지도 않은 여유를 가지고 무작정 강릉으로 떠나버렸다.

당장 먹을 것도 없고 내야 할 월세도 밀린 주제에 그 당시 속에서의 답답함을 풀기 위해 내가 내 여유를 사보았다.


6월 초 조금은 더울 듯 덥지 않은 동해안의 바닷가에 도착하여 파도소리를 들으며 한참을 그렇게 앉아 있었다.

나 홀로 이렇게 무작정 떠나서 앉아있으니 고독하고 외로웠지만 오랜만에 여유롭게 바다를 바라보니 기분이 조금은 나아졌다.


그리고는 경포대 주변의 중국집에서 짬뽕 한 그릇을 먹고 다시 서울로 올라왔었다.


이날 처음으로 나는 나에게 여유를 선물했는데 집에서 편안하게 쉬는 휴식도 휴식이지만 다른 경치를 보며 숨을 쉬어본다는 게 또 다른 휴식으로 다가옴을 느꼈다.


가끔은 삶이 척박하다고 느낄 때가 많았다. 파란만장한 삶을 산다는 게 좋은 의미라고 생각한 나 자신이 원망스러울 정도로 가끔은 모든 걸 포기하고 넘어져있고 싶기도 했었다.


숨 쉬는 것조차 버겁다고 느껴질 정도로 힘이 들고 매일 밤마다 울고 불고 지치고 정신적으로도 위태로운 나날의 연속이었지만 단 한번 나를 위한 여유를 선물한 것이 다른 누구도 주지 못한 위로가 될 거라고는 생각조차 안 했으리라.


이날 이후 가끔 답답할 때 가깝더라도 다른 경치를 보기 위해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때로는 한강, 때로는 등산, 때로는 번화가


어디가 되었건 내가 나에게 여유를 선물할 수 있는 공간은 많았지만 그걸 모르고 있었다.

타인 속에 숨어 홀로 여유를 느끼는 사람들도 알게 되었다.

그들도 나와 같이 자기 자신에게 위로를 건네고 있었으리라.


최근에 결혼을 준비하고 앞으로의 인생을 계획하면서 잠시 마음에 여유를 잃었는데 이 순간들을 다시 생각하니 마음에 진정이 찾아왔다.


여유를 가지며 숨을 쉰다는 건 결국 내가 살기 위해 숨을 쉰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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