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과 경청의 중요성
나는 말이 상당히 많은 편이다.
원래 말이 많지는 않았지만 독거 기간이 길어지면서 그리고 특별히 누군가와 대화를 할 기회가 많지 않으면서 자연스레 누군가와 만나면 말을 해야 한다고 느껴 버리게 되었는데 순전히 말을 하기 위해 아무 말이나 하다 보니 나중에는 이게 독이 되어버렸다.
말이 항시 필터를 거치지 않고 불쑥 나오기도 하였고 그로 인해 사람과 많이 싸우기도 하였다.
어느 날은 아버지와 함께 저녁식사를 하다가 아버지께서 말이 너무 많으면 좋지 않다고 충고도 해주셨다.
오죽하면 그러셨을까 싶다.
그나마도 재치 있게 말을 한다면 아마 좋은 평가를 받았으리라 아니면 인터넷 방송으로 진출을 했어도 좋았으리라.
하지만 말만 많았을 뿐 조리 있게 얘기하지 못했었고 생각을 하고 말을 한다는 개념이 부족했었다.
특히 지금은 생각을 하면서 말을 하다 보니 중간중간 말을 하다가 쉬는 버릇이 생겨버렸는데 이 또한 좋지 않으리라.
가끔은 말로 나를 표현하기보다는 침묵이 더욱 중요할 때도 있다고 느낀 건 불과 얼마 전부터였는데 극도의 외로움으로 모임을 가지고 그 모임에서 주최자가 되었을 때 모든 이의 이야기를 들으며 간간히 말을 하며 어떤 이야기들에 리액션을 해주고 많이 웃다 보니 지금의 예비신부님께서 호감을 가지고 그렇게 결혼까지 약속하게 되었다.
지금도 간간히 말을 많이 하는 편이지만 그래도 적당히 끊으려 노력하고 가급적 타인이 이야기를 할 때는 그 이야기를 듣고자 노력을 하고 있다.
나는 말이 상당히 많았다. 그리고 말을 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다 보니 상대방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기보다는 상대방이 이야기를 할 때 내가 할 이야기를 생각해두곤 했었다.
그래서 상대방과 교감과 공감대 형성보다는 내 위주로 대화가 이어지게 되었고 자연스레 나와 대화를 하고자 하는 사람도 적었다.
일방적인 대화를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나는 말이 하고 싶었다.
말은 혼자 해도 충분했다. 지금 이렇게 글로 써 내려가도 좋았으리라. 논리적이지는 않더라도 하고 싶은 이야기를 풀 수 있는 공간은 많았을 테다. 글을 쓰기보다는 말을 택했다.
소통보다는 연설이 주목적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난 성공한 사람도 아니거니와 유명한 사람도 아니기에 연설과 강연을 할 수 있는 사람도 아니었다.
대화를 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연설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과거의 내가 부끄러웠다.
비로소 아버지의 말을 공감할 수 있게 되었다.
"말이 너무 많으면 좋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