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금희 작가의 <너무 한낮의 연애> 中에서
작년에 김금희 작가의 <너무 한낮의 연애>를 읽었다. 9개 단편 중 맨 처음 에피소드가 가장 재밌었는데 남녀 간 사랑이 깨질 때 가장 찌질해질 수 있는 행동이 나오기 때문이다.
주인공 필용은 어느 날 영업팀장직에서 시설관리팀으로 발령을 받는다.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지자 정오에 이른바 ‘혼밥’을 하는데 한 연극 포스터를 보게 되면서 16년전 추억이 떠올랐다.
그 포스터에 그의 과 후배이자 한 때 연인이었던 양희의 흔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16년전 둘은 어학원에서 같이 수업을 듣고 이후 맥도날드에서 점심을 먹었다.
필용은 원래 양희를 이성으로 좋아하지 않았다. 일단 예쁘다고 생각도 안했고 매력을 느끼지 못했으며, 성격도 달랐고, 자신이 양희보다 잘났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양희가 고백하면서 둘은 사귀게 됐는데 하루는 양희가 이런 말을 했다.
“아, 선배. 나 안해요 사랑.” “(사랑의 감정이) 없어졌어요.”
처음에 필용은 사태의 심각성(?)을 몰랐다. 그래서 일단 아부 작전으로 나갔다.
“야, 너 은근 매력있어.” “난 너처럼 꾸밈없고 소박한 게 괜찮더라고.”
그럼에도 양희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자 필용은 본색(?)을 드러내면서 감정적인 말을 쏟아냈고 내가 이 포스팅을 하게 되는 결정적을 말을 하게 된다.
“야, 너 최소한이라도 꾸미고 다녀. 널 위해 하는 얘기야.” “야, 너 그동안 나한테 받아먹은 거 다 내놔. 일괄 계산하라고 이 계집애야.”
여기서 받아먹었다는 건 맥도날드에서 세트메뉴를 시킬때 양희는 꾸깃꾸깃한 1000원짜리 지폐 1,2장만 갖고 있었는데, 나머지 금액을 필용이 냈다는 걸 의미한다.
그런데 필용의 언행을 꼽씹어보면 찌질하다 못해 천박한 느낌마저 든다. 자신이 원하는 대답을 하지 않자 무자비하게 감정을 배설했기 때문이다.
혹시 필용은 양희하고 사랑의 감정에 대한 계약을 했던 것일까? 마치 전세 보증금처럼 방을 빼면 돌려주는 그런걸 생각했던 것일까. 만약 일괄계산 해주면 깔끔히 관계가 정리되는 것일까?
솔직히 호감을 사려고 맥도날드 햄버거 주문할 때 돈을 보태줬는데, 이제 호감을 보일 필요가 없으니 그동안 투자(?)한 돈이 안타까웠던 것일까? 또는 그 보태줬던 돈은 사랑의 관계에서 일종의 보험, 인질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이후 에피소드를 보면 필용의 행동은 당연히(!!)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못했다. 양희는 그의 폭언에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으며, 결국 뛰쳐나갔다. 그리고 다음날부터 어학원에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16년후 둘은 다시 만나게 되는 일이 발생하지만 그때의 잘못이었을까, 필용은 양희 앞에서 자신을 드러내지 못한다. 내가 여자라도 필용과 같은 사람하고 사귀고 싶은 생각은 전혀 안 들것 같다.
사람의 인간성, 진면목은 이런 순간에 드러나는 법이다. 그는 얼마 간의 돈을 잃었지만 한 때 연인이었던 사람과의 인연마저도 잃었던 것이다. 남자들이여, 이별을 통보받았다고 저렇게 환불(?)을 요구하지는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