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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rseilleu Dec 31. 2017

올해를 추억하며-할머니의 별세

올 한해를 돌이켜보니 다른때보다 큰 일이 많았다. 할머니가 소천하셨고 내가 결혼한 것이었다. 내 인생에 매우 중대했던 일이 불과 3개월 사이에 일어났다. 


할머니의 별세


할머니께서 올해 9월11일 자정을 조금 지나 소천하셨다. 그 날은 인사개편으로 인해 회사로 출근하라는 공지가 있었고 출근준비하려고 아침 5시50분쯤 일어났는데, 부모님께서 "할머니가 돌아가셨다"고 하시는 거였다. 그 말을 듣고 회사에 전화해서 별세 소식을 알리고 바로 병원으로 갔다. 


할머니하고는 내가 5살때부터 같이 살았다. 중간중간 군대라던가 캐나다 어학연수 등등을 빼면 같이 살았고 5년전부터는 걸어서 5분도 걸리지 않는 가까운 곳에 있었다. 


보통 할머니하면 떠올리는 시골에 계시고 일 년에 한두번 뵙는 어르신과는 달리 내 인생에 차지하는 비중이 큰 분이었다. 내 인생의 대부분 시간을 함께 했다. 


할머니는 여동생보다 나를 훨씬 좋아하셨다고 한다. 실제로 편애하는게 느껴지기는 했는데 그렇다고 좋은 기억만 있는 건 아니었다. 아무래도 고부갈등이 있을 수밖에 없는데 그 과정을 보면서 어머니의 입장에 감정이입하기도 했고 잔소리도 힘들었다. 


부모님 잔소리도 감당하기 힘든데 할머니까지 가세하니 이건 쉽지가 않은 거다. 특히 스트레스를 많이 받던 고3 시절에는 그 짜증이 폭발 직전이었다. 그래서 내 소원 중 하나가 대가족이 아닌 부모님하고만 같이 사는 거일 정도였다. 


내가 초등학생-중학생-대학생, 나아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성장할 동안 할머니는 점점 늙으셨다. 정정하실것만 같았던 언젠가부터 야위셨고 기력이 쇠하는 것이었다. 점점 거동하는 걸 힘들어 하시더니 지팡이 없으면 걷지도 못할 정도였다. 하긴 연세가 90을 넘었으니 당연한 시간의 흐름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다가 올해 2월로 기억하는데 할머니가 화장실에 가다가 넘어지셔서 골반 부위를 다쳤다. 그래서 병원에 입원했는데, 고령의 나이때문에 그런지 입원기간이 계속 이어지는 거다. 기력도 약해지셨고 슬슬 치매 증상도 느껴지는 것이었다. 


그때부터 가족들도 어느정도 마음의 준비를 했다. 나도 한 달에 두 번 정도 할머니 병문안을 가서 저녁 드시는 것도 보고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좀 더 많이 병문안을 갈 걸 하는 후회가 든다. 


당시 자주가는 게 귀찮기도 했고 요양병원 병실에 가면 할머니와 다른 환자분들의 힘든 모습들을 봐야 하는 게 부담스럽기도 했다. 하필 그때 업무적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던 시기이기도 해서 마음의 여유가 없었지만 그래도 후회스럽다. 


별세하기 몇 주 전부터 할머니는 음식을 잘 드시지 않았다. 심지어 손자라고 하면 너무 좋아하시던 내가 음식을 권해도 화를 날 정도였다. 그게 할머니 생전에 본 마지막 순간이었다. 


할머니 별세 소식을 듣고 엄청나게 슬프거나 눈물이 나지는 않았지만 과거 잊고 있었던 추억들이 하나하나 떠올랐다. 5살 때 수원에서 어머니와 할머니가 나를 업어주시거나 9살 때 놀이터에 같이 가서 놀았던 기억, 내가 할머니 환갑잔치 때 한복 입고 춤췄던 기억 등등이다. 




오늘 부모님, 고모 만나서 같이 김장도 하고 식사도 했는데 매년 명절 때 같이 했었던 할머니의 모습이 떠오른다. 좋았던 기억, 나빴던 기억이 공존하지만 좋은 기억들만 추억으로 마음 속에 간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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