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arseilleu Feb 16. 2020

처음 이사를 해봤다

얼마 전 이사를 했다. 물론 어렸을 때부터 다 포함한다면 이사를 한 횟수는 10번 가까이 되겠지만 결혼을 하고 주도적으로 한 적은 처음이었다. 2017년 11월말 결혼을 했고 그보다 두 달전에 신혼집 전세를 마련했었다. 나름 교통도 좋았고 특히 이마트가 엄청 가까웠고 부모님집과도 가까워서 가능하면 좀 더 오래살고 싶었으나 사정이 여의치 않았다. 


예전에는 부모님이 알아서 준비하고 이삿짐을 날랐다면 이번에는 나하고 와이프가 전적으로 준비해야 했다. 이사갈 집의 주인과 만나 계약을 체결하고 계약금을 지불하고, 등기부등본 확인하고, 이사업체 견적을 내야 했다.


이사 견적은 대략 70만~110만원 사이였는데, 확실히 돈을 더 지불하면 편하게 이사할 수 있었다. 이사업체는 견적보러 왔을때 상세하게 매뉴얼을 설명한 곳으로 했는데 다른 곳보다 비싸지만 신뢰감을 줘서 선택했다. 실제로 이사짐을 다 나르고 나서 일정 수준 이상의 청소까지 이뤄져서 만족했다.    



이사 전날 많은 생각이 들었다. 결혼이라는 제2의 인생을 시작하면서 가정을 이뤘던 곳이었고 그래도 2년3개월 동안 많은 기억, 추억이 있었기 때문이다. 집주인께도 ‘그동안 감사했다’는 내용을 담은 문자를 보냈다. 고양이 2마리를 키우고 있는데 임시로 부모님께 맡겼다. 


드디어 이사 당일이었다. 나는 이날 연차를 냈는데, 이사업체 분들은 8시에 오시기로 했다. 살던 곳이 9층이라 사다리를 써야했고 본격적인 작업이 시작됐다. 이사갈 곳 주인집도 다른 집으로 이사를 가야해서 부동산 분들과 오전 11시에 만나기로 했는데, 예상보다 시간은 빨리 지나갔다. 


짐을 거의 다 옮기니까 부동산에서 와서 집의 상황을 체크했고 각종 관리비, 가스, 전기, 수도 비용부터 전세금까지 정산을 했다. 근데 이사갈 곳 주인은 10시50분쯤 짐을 다 빼서 기다리고 있다는 연락이 왔고 전세금을 줄 수 있는지 물어왔다. 부동산에 잠깐 들렀는데, 지금은 그나마 포장이사니까 편하지 20년전에는 정말 일일히 다 옮겨야 했다는 무용담(?)을 들을 수 있었다. 



전 주인(?), 현 주인(?) 이라고 해야하나 하여튼 내가 전 주인한테 돈을 받아 현 주인한테 전세금을 드려야 그 분도 그의 주인한테 지불할 수 있기에 왠지 모르게 정신도 없었다. 이 날을 위해 얼마전 인터넷뱅킹 한도를 일 5억원, 1회 1억원으로 늘렸고 OTP도 만들었고, 앱도 재정비(?) 했다.(그 전에 귀찮다고 안하던 것이었다. 이사가 닥치면서 어쩔 수 없이 행동에 나섰다) 


내 통장에 갑자기 억 단위의 돈이 입금되자 '이렇게 큰 금액이 내 통장에 찍힌 건 처음이다'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워낙에 큰 금액이고 내가 연봉을 한 푼도 안쓰더라고 몇년을 모아야 하는 규모이다 보니 잘못 보낼 수 없다는 일념에 전세금을 송금할때 계좌번호와 이름을 몇 번씩이나 확인했다. 손이 벌벌 떨리고 심장이 뛸 지경이었다.  


점심 떄 먹었던 스팸마요 정식. 


부동산에서 최종 거래를 마무리짓고 복비도 드리고 이제 이사짐을 새 집에 옮기는 일이 남았는데, 이사업체 분들은 점심시간이 되서 식사를 하러 갔다. 천천히 식사하고 오시라고 했다. 나도 와이프와 맛난 거 먹었다. 계약조건에 식대는 따로 지불하지 않아도 됐는데, 쓰레기봉투 100리터짜리 1개하고 캔커피 4개 정도만 부탁하셔서 흔쾌히 커피 5개 사드렸다. 


대략 오후 2시30분쯤 대략적인 작업이 끝났는데, 2년3개월 간 살았던 곳에서 새로운 곳으로 이동이 완료되는 순간이었다. 제2의 인생 1막에서 2막을 시작하게 됐다. 포장이사를 하니까 내가 짐을 나르거나 하는 일은 크게 없었는데, 워낙 거래 과정에서 큰 돈이 오가고 여러 신경쓸 것도 많고 아직 짐 정리할 것도 많다.

그래서 이사는 정말 자주할 건 아닌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올해를 추억하며-할머니의 별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