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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rseilleu Sep 27. 2015

명절증후군이 조금은 이해가 간다.

매년 설날과 추석을 앞두고 나는 앞으로 다가올 대(大) 프로젝트가 두렵기만 하다. 


우리 집은 남녀노소 불문하고(할머니는 90세에 가까운 연세라 제외)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공동으로 명절을 준비한다.  그중 백미(白眉)는 각종 전을 부치는 것이다. 


명절을 전후해 가족 간 다툼이 많아지거나 가정불화가 커져서 이혼하거나, 심지어 살인이 일어나기도 한다. 나도 저런 상황을 언론에 접하면 '누구를 위한  명절인가'라는 물음을 진지하게 할 때도 있다. 

별 왕래가 없어 감정적인 공유가 없는 상황에서 명절이니까 행복해야 된다는 기대감이 커지는 것도 명절 사건(?)의 한 원인으로 본다. 


그나마, 우리 집은 상황이 나은 것이, 내가 4살때부터 20년이 넘는 기간 동안 할아버지, 할머니, 고모하고 같이 살았고 현재도 할머니, 고모는 5분 거리에 살고 계신다는 점이다. 


솔직히 명절 음식을 하는 건 긴 시간을 요하는 일이다. 각종 전을 부칠 때도 그렇다. 일단 압도적인 물량에 한 번 놀라고, 요리과정에서 뜨거운 열기는 결코 만만치 않다. 

사람마다 적절히 부쳐졌는가에 대한 기준도 다르고, 조금 한 눈 팔면 타기도 하고, 앉아서 일하다 보면 허리가 쑤시다 못해 마비가 된 듯하다. 

이번 추석 때 식구들이 합심해서 만든 음식.

이러다가 사소한 걸로 틀어지면 다툼으로 이어질 때도 있었고, 한 번은 명절이고 뭐고 무슨 남북 대치 상황도 아니고, 일촉즉발 직전까지 간 적도 있다. 


백미는 전을 부치는 것이지만 그걸로 끝난 것도 아니다. 제기(祭器)를 꺼내서 닦고 적절한 위치에 배치를 해야 되고, 그 전에 대청소도 해야 한다. 다 끝나면 또  뒷정리해야 된다. 


힘들어 죽겠는데,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며(물론 누가 알아달라 하는 건 아니지만), 누구는 명절 기간 전후로 휴가 내서 팔자 좋게 해외여행 가는 데, 이 고생하고 있으면 심리적인 박탈감이 들 때도 있다. 


그러면서 주부들이 느낀다는 그 명절 증후군을 나도 조금은 느낄 수 있는 것 같고, 그 심정이 이해가 간다. 


우리 집은 남녀 불문하고 집안일에 동참해야 하는 매우 아름다운 가풍을 갖고 있는데, 명절 관련 댓글 보면 어느 집안인지 몰라도 남자들은 고스톱이나 치고 집안일을 안 도와 준다고 난리다. 

나같은 사람이 그들과 동류(同類)로 싸잡히는 게  내 입장에서는 정말 억울하다. 


그런데, 매년 명절 준비하면서 느끼는 건, 앞으로 어떻게 해서는 고향에 방문하고, 명절에 같이 음식을 만들고, 차례나 제사를 지내는 문화가 얼마나 갈까 싶다. 내 생각에 빠르면 10년, 늦어도 30년이면 현재의 명절문화는 상당 부분 축소되거나 바뀔 것 같다. 


명절 준비에 꽤나 적극적으로 참여한다고 자부(?)하는 나도 향후 이를 간소화하거나 폐지를 시사하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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