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기아자동차 신형 ‘쏘렌토’는 많은 관심을 모았습니다. 일단 국내 중형 SUV 시장에서 현대자동차 ‘싼타페’와 양강구도를 이루고 있는 모델이기도 하고, 하이브리드까지 출시되기 때문입니다.
제가 20일 한국자동차기자협회 주관 ‘올해의 차’ 시상식을 갔습니다. 이날은 쏘렌토의 사전계약 첫 날이기도 했죠. 이날만 해도 기아차는 정말 축제의 분위기였습니다. 기아차 신형 ‘K5’는 올해의 차 대상, 올해의 디자인, 이렇게 2관왕을 차지했고 쏘렌토는 사전계약 첫날 1만8800대로 기존 ‘더 뉴 그랜저’(1만7294대), ‘그랜저 IG’(1만6088대), ‘싼타페 TM’(8193)의 실적을 넘는 역대 최다 기록을 세웠기 때문입니다.
이날 시상식에서 권혁호 기아차 부사장이 “신형 쏘렌토가 사전계약 첫날 오후 2시 기준 1만7000대 정도 판매됐다”고 할 정도였죠. 그날 사전계약 중 하이브리드가 70% 정도라는 말도 나왔습니다.
기아차가 예전에 배포했던 보도자료를 보면 신형 쏘렌토 디젤 가격은 3070만~3980만원, 하브는 3520만~4100만원 사이에서 책정될 예정이었습니다. 가격대를 보면 이건 ‘하이브리드를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가격차가 크게 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좋았던 분위기는 하루만에 반전됩니다. 21일 갑자기 하브 계약이 중단됐다는 공지가 올라옵니다. 정부의 에너지 소비효율 기준을 충족하지 못해 친환경차 세제 혜택 대상에 포함되지 못했고 별도 보상안을 마련하겠다는 내용을 볼 수 있었습니다.
쏘렌토 하브의 배기량은 1598cc인데 1000~1600cc는 친환경차 혜택을 받으려면 연비가 15.8km/ℓ 이상이어야 하는데 쏘렌토 하브는 15.3km/ℓ이었던 겁니다. 연비 0.5 차이는 휠을 작은걸로 바꾼다거나 해서 쉽게 극복될 정도의 차이도 아닙니다.
기자들 사이에서도 온갖 추측이 나왔습니다. 좀 급진적인(?) 의견으로는 관행적으로 연비 기준을 통과시켜줘 왔는데 이번에 정부에서 FM대로 하면서 이 사태(?)가 촉발됐다는 말도 있었고 아니면 내부 테스트에서는 15.8을 넘었는데 환경부 실측 테스트에서 못 넘었다는 설도 들었습니다.
아니, 기아차가 하이브리드 모델을 한 두번 만든 것도 아니고 무슨 동네 구멍가게도 아닌데, 이런 일이 벌어질 거라고는 다들 생각도 못했을 겁니다. 오죽하면 커뮤니티에 가보니 15.8하고 15.3을 헷갈린 게 아니냐는 내용도 봤습니다. 일단 기아차에서는 담당 직원의 실수라고 하는데 이게 ‘실수’라기에는 기아차가 감당해야 할 금액,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게 됩니다.
쏘렌토 하브가 친환경차 세제 혜택을 받지 못하면서 사전계약자들은 개별소비세 100만원, 교육비 30만원, 부가가치세 13만원 등 143만원 정도를 일단 손해보게 됩니다. 여기에 취등록세 90만원까지 하면 233만원 정도 됩니다.
일반적으로 하브 모델을 구입하는 건 가격이 좀 더 비싸더라도 연비가 좋고 친환경 이미지도 있고 주차비 감면, 혼잡통행료 면제 등 각종 혜택 등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도 그런 의미로 하이브리드 모델을 사고 싶어 ‘쏘나타 하브 vs ’더 뉴 그랜저‘ 사이에서 고민을 하기도 했습니다.)
기아차도 이번 사태에 대한 보상안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이번주 안에 나올 줄 알았는데 최소한 28일까지는 발표, 공지가 안된 것으로 보입니다. 사전계약자 1만8800명 중 대략 64%인 1만2000대가 하브인데, 여기에 143만원을 꼽하면 170억원, 233만원이면 280억원 정도 됩니다. 아마 두 금액 사이에서 보상안이 나올 가능성이 높게 점쳐집니다.
금액 외에 이미지, 신뢰도 실추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사전계약자 입장에서 하브 모델의 개선품이 나온다면 중고가 하락은 자명하기에 보상을 받더라도 불만이 계속될 수 있습니다.
자칫 신형 쏘렌토가 신차효과를 크게 보지 못하고 오는 5월쯤 출시 예정인 싼타페 페이스리프트에 주도권을 넘겨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는 사전계약에 대한 생각도 듭니다. ‘팰리세이드’ 같은 모델은 현재도 출고 대기기간이 대략 6개월 정도입니다. 제네시스 ‘GV80’도 그쯤으로 알고 있고 셀토스, 그랜저 등도 2~3개월가량입니다.
이렇다보니 사전계약때 차를 확보(?)하지 못하면 몇 달, 길게는 1년 정도 해당 모델을 장만할 수 없다는 분위기가 팽배해져 있죠. 쏘렌토도 사전계약 첫날 1만8800대까지 인기를 모을줄은 몰랐지, 인기 모델이기에 대기 기간이 꽤 길 것이라는 예상을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보니 신차를 직접 못보더라도, 자칫 ‘베타테스터’가 될 수 있는 리스크가 있음에도 인기 차종의 경우 사전계약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합니다. 조만간 기아차에서 하브 모델 사전계약자 분들에게 보상안을 발표할 것 같은데 잘 해결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아무리 생각해봐도 있어서는 안될 실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