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E-세그먼트 시장은 그야말로 ‘별들의 전쟁’이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올 초 제네시스 신형 G80을 비롯해 하반기에는 벤츠 E클래스, BMW 5시리즈, 볼보 S90 부분변경 모델들이 연달아 나왔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라인업, 상징성이 높은 차량들이라고 할 수 있죠.
지난번에는 벤츠 E350 4MATIC AMG LINE을 시승했는데 연이어 볼보 S90을 타게됐습니다. 저는 벤츠 브랜드를 좋아하는(다르게 말하면 ‘벤츠빠’인가) 관점에서 S90을 시승해봤습니다. S90은 마일드 하이브리드가 탑재된 B5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인 T8로 나뉘는데, 시승 차량은 B5였습니다. 모멘텀과 인스크립션 중 상위 트림인 인스크립션, 색상은 플래티넘 그레이입니다.
볼보의 디자인을 보면서 단연 ‘심플함’이 떠올랐습니다. 전면부 그릴부터 내부 인테리어를 보면 화려한 기교보다는 깔끔하고 단순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LED 헤드램프의 ‘T’자는 어벤져스에서 나오는 토르의 망치가 연상되고 테일램프는 ‘ㄷ’자 모양인게 특이하지만 전반적으로는 간결함, 미니멀리즘이 강조됐습니다.
시트는 앉았을 때 착좌감이 좋았고 내부에서는 단연 오레포스사(社)의 크리스털 기어가 눈에 띄었습니다. 신기하니까 자꾸 조작하게 됩니다. 송풍구는 굉장히 크면서 세로 형태네요. 스마트폰 거치대를 달기 어렵습니다. 다만 볼보가 SK텔레콤과 협업을 맺어 2021년이나 2022년 T맵이 탑재된다면 이런 불편은 의미가 없어질 수도 있겠습니다.
시승 차량의 최고출력은 250마력이고 전기모터가 출발 가속과 재시동 시 엔진 출력을 보조하는 방식으로 14마력을 지원합니다. 벤츠 E350에서도 EQ 부스트라고 마일드 하이브리드 방식을 볼 수 있었는데, 전기차 시대에서 과도기적 과정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시동은 기어 밑 스위치를 돌리면 되는데, 부드럽게 시동이 걸립니다.
외관 디자인은 볼보 S90, 내부 디자인은 벤츠 E클래스가 더 좋다고 느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인테리어는 벤츠가 강합니다. 주행을 해보니 안정적인 주행감, 부드러운 조향, 정숙성 등에서는 E클이 좀 더 낫다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특히 요철 구간을 지날 때 충격이나 소음이 컸습니다.
반면, 파일럿 어시스트 등 반자율주행 기능을 실행할 때는 볼보 S90이 훨씬 조작하기 쉽습니다. E클은 버튼을 세게 눌러야 하는데, S90은 쉽게 눌러지네요. 시승했던 날 영하 13도까지 떨어졌는데 S90에는 E350 4MATIC AMG LINE에는 없던 스티어링 휠 열선, 통풍이 있습니다. 3단계로 조작이 가능하네요. 이 점도 S90의 장점으로 보입니다.
볼보하면 흔히 ‘안전’을 연상하게 됩니다. 예전 볼보 S60 출시행사에서 이윤모 볼보코리아 대표가 안전사양은 전 트림 기본 적용해 안전을 중시한다는 발표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게 생각나서 옵션표를 보니 파일럿 어시스트나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 등 인텔리 세이프 기능은 기본 적용이 되어 있습니다. 다른 메이커들도 안전 사양을 갖춰나가면서 예전과 같은 격차는 아니지만 안전을 생각한다면 볼보는 좋은 선택으로 보입니다.
뒷좌석이 넓은 점도 장점입니다. 전장이 5090mm, 휠베이스는 3060mm로 예전 모델 대비 각각 125mm, 120mm 늘었습니다. 뒷좌석 레그룸도 1026mm로 11mm증가했구요. 제네시스 G70 뒷좌석은 제가 탔을 때 무릎에 주먹 1개 겨우 들어가는데 S90에서는 2~3개가 여유있게 들어갈 정도로 공간이 넓네요.
이건 E클 대비 볼보 S90의 장점으로 보입니다. 저 혼자 운전한다면 벤츠 E클, 가족들을 뒤에 태울 일이 많다면 S90이 상대적으로 패밀리 세단으로 좋을 것 같습니다. 근데 S90에는 패들 시프트는 없고 기어로 매뉴얼 조작을 해야됩니다.
생각해보니 볼보 브랜드가 최근 몇년간 인기가 많이 높아졌습니다. 2013년 1960대에 불과했는데 2016년 5000대를 넘었고 2019년에는 한국 진출 처음으로 1만대를 돌파했습니다. 올해는 11월 기준 이미 1만대를 넘어 1만2500대 정도로 예상됩니다. 현재 수입차 시장은 벤츠-BMW의 양강에 아우디, 폭스바겐 등 크게 빅4가 주도하는데 볼보와 테슬라가 다크호스로 빅4를 추격하는 양상입니다.
볼보의 인기 요인으로는 우선 ‘안전의 이미지’를 꼽을 수 있고 유명 연예인 효과도 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 S90은 손흥민 선수가 모델로 나오고 있는데 그가 최근 몇년 간 EPL에서 멋진 활약을 하는 점도 긍정적인 이미지 구축에 영향을 준 것 같습니다. 또한 볼보는 대기기간이 긴 걸로 유명한데(인기모델은 6개월~1년 정도) 그게 오히려 프리미엄으로 작용한 게 아닐까 생각도 해봤습니다.
그리고 워낙 수입차가 대중화되고 벤츠, BMW는 너무 흔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희소성이 있는 볼보를 선택하는 경우도 있다고 봅니다. 어르신들은 ‘수입차하면 역시 벤츠지!!’라는 반응이 많은 반면, 젊은 세대에서 보다 볼보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보이구요.
볼보 S90 모멘텀은 6030만원, 인스크립션은 6690만원입니다. 벤츠, BMW보다는 상대적으로 가격이 낮죠. 제네시스 G80의 시작가격은 2.5터보가 5300만원이니까 옵션을 몇 개 넣으면 가격이 비슷해집니다. 3.5터보는 5900만원이 넘어 가격 차이가 별로 없네요. 이런 점도 볼보의 인기 요인이겠죠.
모멘텀과 인스크립션 가격 차이는 660만원인데, 생각보다 옵션 차이가 급니다. 일단 Bower & Wilkins 사운드 시스템, 앞좌석 통풍시트, 크리스털 기어노브, 나파 레더시트 등이 이 정도 가치를 한다고 봐서 제가 구입한다면 무조건 인스크립션 입니다.
표로 정리해보니 360도 카메라, 이중접합 윈도우, 전동식 뒷좌석 후면 윈도우 선 블라인드, 전동식 후면 리어 선 커튼, 19인치 휠도 있네요. 그리고 뒷좌석 왼편에는 버튼이 1개, 오른편에는 5~6개가 있는데, 여기서 윈도우와 선 블라인드 등을 조작할 수 있습니다.
제가 돈은 없지만 행복한 상상을 한다면 볼보 S90 인스크립션과 벤츠 E250 익스클루시브 중에서 많은 고민을 할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무조건 벤츠!!’라는 생각을 했다면 지금은 볼보도 충분히 매력적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예전 제네시스 신형 G80도 시승했으니 이제 E-세그먼트에서는 BMW 5시리즈만 남았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이 차량도 비교 시승을 해보고 싶습니다. 주변 자동차 기자 중 XC90 등 볼보 오너들도 보이던데 부럽고 저도 고급 세단을 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과감한 제목(?)의 시승 동영상도 올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