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혹(不惑). 나이 40세를 일컫는 말이다. 나도 10대, 20대 시절이 있었는데 그때 나이 40이면 어느정도 사회적 입지도 안정된 어르신으로 생각을 했었다. 불혹은 ‘세상일에 정신을 빼앗겨 갈팡질팡하거나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게 되었음’을 뜻한다고 한다. 그런데 생일이 지나면서 만40으로 빼도박도 못하는 40대에 들어섰는데 내 삶과 불혹의 의미가 미스매치라는 생각을 지울수가 없다.
요즘 직장에 90년대생들이 온다는 말도 간혹 쓰이는데, 신입으로 입사하는 분들과 나와의 나이차는 10년이 훌쩍 넘어버렸다. 나는 아직 젊고 어린 것(?) 같은데 그들에게 나는 나이 많은 ‘아재’일 것이다.
내 생일은 4월2인데, 가족들과는 한 주 앞당겨 3월27일날 기념으로 모였다. 우리 가족은 생일인 사람이 대접을 하는데, 나는 큰 맘 먹고 1년에 한 번 정도 가는 장어집에 가자고 제안을 했다. 다만 점심때 장어를 너무 많이 먹으면 집에서 케잌이나 다른 준비된 음식들을 먹을 수 없기에 기본량만 시키기로 했다.
7명이서 최소한으로 먹었는데도 25만원 정도 나왔다. 만약 밥이나 술을 더 시키고 장어를 추가로 주문했으면 30만원은 훌쩍 넘었을텐데 그럼에도 가족들이 모여 맛있는 장어를 먹으니 기분이 좋아지는 것이다. 집에 가서 케잌과 여러 음식을 먹었다. 부모님이 생일 전에 어떤 케잌 종류가 좋은지 물어봐서 나는 바닐라, 초코, 모카 등 다 좋은데 고구마만 싫다고 했었다. 내 의견이 반영(?) 되었는지 모카 케잌이 놓여 있었다.
어제는 아마 카톡이나 페이스북 등에 생일알림이 떠서 그런지 많은 분들께 축하메시지를 받았다. 몇몇 분은 카톡으로 선물을 주시기도 했다. 나는 업계에서 알려진 네임드도 아니고 그야말로 ‘쪼렙’, ‘듣보잡’이라 내 생일은 있는 듯 없는 듯 지나가는 게 관례(?)였는데 올해 생일에서는 축하해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의미가 깊었다.
생각해보니 시간이 참 빠른 것 같다. 10대 시절은 대학입시 준비, 20대 시절은 대학 입학과 군대, 취업 등으로, 30대 시절은 사회생활과 이직, 결혼 등으로 정말로 정신없이 지나갔다. 특히 10대, 20대보다 30대 시기가 상대적으로 빨리 흘러간 것 같다.
예전에 40대면 사회적으로 어느정도 입지도 있고 커리어의 정점으로 향하는 이미지를 받았다. 지금은 워낙 결혼과 출산이 늦어져서 그렇지 부모님 세대를 생각해보면 40대면 자녀는 보통 10대 전후의 나이였다.
영화 <비포 선라이즈>, <비포 선셋>, <비포 미드나잇>의 유명한 3부작이 있다. 에단 호크과 줄리 델피, 두 주인공의 20대, 30대, 40대 시절의 모습을 볼 수 있는데(영화가 9년마다 찍었으니) 지금은 그 중 비포 선셋이 가장 재밌고 감정이입이 되지만 서서히 비포 미드나잇으로 가야하나 하는 우려(?)도 든다.
나는 20대 청춘의 비로 선라이즈면 모를까 아직은 비포 선셋의 감정을 계속 느끼고 싶다. 한편으로는 나도, 두 주연배우도 같이 나이를 먹었구나 하는 생각이 문뜩 들었다.
내가 (한국나이로) 어느덧 41세라니 별로 믿기지도 않는다. 친구들도 나하고 비슷한 감정을 토로했는데, 다만 30대에 진입할때와는 느낌이 사뭇 다르다. 그때는 취업도 안되던 때라 뭔가 결과물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성취를 하지 못했다는 아쉬움, 우울함이 있었다. 그리고 20대가 끝나버렸다는 감정이 컸다면 40대가 될때는 그때보다는 무감각하다.
다만 20대, 30대때는 하루 정도는 밤을 새도 버틸만 했고 회복도 빨랐는데, 요즘은 조금 무리하면 바로 몸에 무리가 온다. 나도 모르게 잠에 들어버리거나 컨디션이 저하되는 경우가 확실히 많아졌다. 또한 세상풍파(?)를 겪다 보니 뜨거웠던 열정도 사그라든 것 같다.
어떤 분은 예전에는 그렇게 게임이 하고 싶었는데 40대가 되니 게임도 예전만큼 재미가 없다고 하던데 그 심정이 조금은 이해가 간다. 예전만큼 다양한 분야에 몰입을 하거나 열정을 투여하는 게 확연히 떨어지기는 했다. 아직까지도 40이라는 숫자에 적응이 되지는 않는다. 이제 40대를 시작하는 입장인데, 인생 커리어에 매우 중요한 시기이기 때문에 충실하게, 후회없이 40대 시기를 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