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돈 주고 산다는데 살 수가 없다
제가 자동차 담당 기자라서 그런지 종종 자동차 추천을 해달라는 문의를 받을 때가 있습니다. 요즘은 신차 출고가 수개월에서 1년 넘게 소요되서 그런지 “자동차 회사에 아는 사람 없냐?”, “출고 대기기간을 빨리 땡길 수 있는지 알아봐 줄 수 있느냐?” 등등의 말도 간혹 듣습니다.
오죽 답답하면 저한테 이런 말씀을 할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다만 이런 질문에 등장하는 모델들을 보면 기아 쏘렌토 하이브리드, 현대차 신형 투싼, 제네시스 GV60 등입니다. 이건 일개 자동차 기자인 제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솔직히 제가 구입해도 출고를 앞당길 수는 없으며, 이런 청탁이 반영되도 문제일 것입니다.
현대차 관계자에 이런 화두를 꺼냈더니
요즘에 출고 빨리 해달라는 민원이 엄청 들어와요. 정말 힘드네요.
라고 하소연을 하셨습니다.
신차 출고 대기기간이 길다는 건 자동차 동호회에서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과거에는 포르쉐나 볼보 등 수입차에 국한됐다면 올해는 현대차, 기아 등 국내 모델에서도 1년가량 긴 기다림(?)이 필요해졌죠.
최근에 입수한 자료가 있어서 한 번 살펴봤습니다. 우선 쏘렌토 하이브리드는 지금 계약하면 13개월 이상, 디젤은 11개월 이상, 가솔린은 10개월 이상이 걸립니다. 쏘렌토 하브는 1년이 넘어가는 상황입니다. 다만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 옵션을 적용하지 않으면 2~3개월 정도 단축될 수 있다고 합니다. 저는 안전사양을 중시하고 저런 옵션을 꼭 선택해야 하기 때문에 2~3개월 더 기다릴 것 같습니다.
또한 전기차들도 높은 인기로 인해 대기기간이 엄청 깁니다. 기아 EV6는 13개월 이상이고, 제네시스 GV60도 12개월이 넘습니다. 현대차 아이오닉5는 8~9개월이라 그나마 두 모델보다는 짧습니다. 1년 내외의 기간이라면 내년 전기차 보조금도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투싼은 예전에 1년이 넘는다고 했는데 약간 줄었습니다. 투싼 모던, 프리미엄 트림의 경우 가솔린은 6개월, 디젤은 8개월 정도 대기해야 합니다. 인스퍼레이션 트림은 가솔린, 디젤 모두 8~10개월 정도네요. 투싼 하이브리드는 모던 프리미엄 6개월, 인스퍼레이션 7~9개월입니다.
얼마전 출시된 현대차 싼타페 하이브리드는 9~10개월, 기아 카니발도 8개월 정도입니다. 이쯤되면 6개월 이하 대기기간이 짧아 보입니다. 내 돈주고 산다는데 말이죠.
무슨 롤렉스 시계, 에르메스 백 같은 명품도 아니고 현금박치기, 현완(스마트폰에서 많이 보던 단어인데)해도 오랜 기간 웨이팅(?)을 해야 합니다. 신차를 구하기 어려워지자 중고차를 찾는 손길이 많아져 중고차 가격도 상승세입니다.(이건 다음 포스팅에서 다루겠습니다.)
조금 더 살펴보겠습니다. G80 전동화 모델은 3~4개월, 아반떼와 아반떼 하이브리드는 6~7개월 정도 소요됩니다. 인기 차종은 GV70과 GV80도 각각 6~7개월, 7~8개월 정도인데 드라이빙 어시스턴스 패키지2 옵션을 제외하면 1~2개월 가량 단축됩니다.
출고 대기기간이 길어지면 당연히 고객들은 답답하고 화가 날 것입니다. 쏘렌토 하이브리드는 몇달 전 구매한 고객은 이런 심정을 토로했습니다.
반도체 수급문제로 출고가 늦어지는 건 이해한다. 하지만 대기기간이 6개월을 넘어가는데 최소한 고객이 납득할 수 있는 조치나 공지를 해야 하는 것 아닌가. 너무 답답하다.
출고 지연의 원인은 간단합니다. 전세계적인 차량용 반도체 수급문제로 인해 자동차 업체들이 핵심 부품을 확보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국내외 자동차 업체들은 일시적인 공장 가동중단을 수차례 하기도 했구요.
반도체 부품을 구해야 전방 카메라, 전자제어장치(ECU), LCD 패널 등을 만들 수 있습니다. 게다가 글로벌 자동차 업계에서 전기차의 인기가 급상승하면서 반도체 부품 수요는 더욱 늘어났습니다.
하지만 코로나19 여파는 계속되고 있는데다가 최근에는 오미크론 확산으로 상황이 더욱 악화됐습니다. 이로 인해 내년에도 당분간 출고 대기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인데, 자칫 계약한 차량이 아니라 연식이 바뀌는 경우도 많을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