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월20일 KB, 농협, 롯데, 이렇게 3개 카드사 CEO가 사과 기자회견을 한 적이 있다. 당시 고객정보 유출 사건이 있었는데, 워낙에 파급력이 큰 사안이라 대표들이 직접 나와서 사과했다.
나는 다른 의미로 이 사건이 생각난다.
나는 당시 카드 분야를 맡고 있었는데, 데스크에서는 나한테 기자회견 취재를 하라고 했다. 그래서 서울 시청역 근처 코리아나 호텔로 갔는데, 사안의 비중이 매우 컸기에 웬만한 언론매체 기자들과 각 카드사 관계자들로 기자회견장은 정신이 없었다.
회사별로 CEO가 사과문을 낭독하고 질의응답을 하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다른 기자들과 마찬가지로 CEO가 말하는 내용을 놓치지 않기 위해 열심히 타이핑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데스크가 나를 기자회견에 보낸 건 취재하라고 보낸 게 아니었다. 데스크한테서 전화가 와서 받았는데 전혀 예상조차 못했던 내용이었고 나에게는 굉장한 충격이었다.
데스크가 나한테 한 지시는
카드 3사가 고객정보 유출 사건을 사과하는 의미로 전 매체에 사과광고를 하는데, 우리 매체가 제외됐으니, 가서 우리 매체도 광고를 달라고 해라
는 내용이었다. (당시 내가 있던 곳은 신생매체라 이른바 원-턴 광고 배정에서 일단 제외된 상황이었다.)
한 마디로 업계 용어로 '앵벌이' 하라는 것이었다. 무슨 양아치나 찌라시 신문이 하는 짓거리를 하라는 거다.
아니, 그 난리가 나서 CEO가 사과까지 하고 분위기 정말 안 좋은데, 가서 광고를 달라고 하면 분위기 파악 못하는 건 물론이고, 거기서 맞아 죽으라는 거나 다름이 없었다.
기자한테 기자회견장 가서 광고영업시키는 것도 웃기는 일인데, 그것도 그 상황이라면 나는 모든 카드 담당 기자와 카드사 관계자 앞에서 기레기가 되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런다고 광고 줄 것도 아니고 매체만 우스워질텐데 정말 이해가 안가는 것이었다.
자칭 14년차 기자(당시 나의 사수)는 기자회견장 현장에도 없었으면서 그 방대한 내용을 기자회견 종료 10분도 안돼서 기사를 올렸다. 기자회견문이야 배포됐다 쳐도 질의응답 내용까지는 알 수 없었을 텐데...
기사를 보니 모 통신사 기사를 그야말로 복사해서 붙였는데, 그래 놓고 자기가 기사를 썼다고 우기는 기자나, 기자회견장 가서 광고받으라고 지시하는 데스크나 웃기는 사람들이었다.
(하긴 그 데스크가 그 기자를 데려왔으니)
어느 정도 해당 회사를 출입하면서 좀 관계가 있으면 모를까, 그것도 아닌데 '출입기자 물 먹이지 말라'는 멘트까지 데스크가 친히 가르쳐주는데 정말 ㄷㄷㄷ
지금이야 나는 다른 유명 회사로 옮겼지만, 함량미달의 그들 때문에 기자회견장 가서 취재도 못하고 광고영업에 동원되는 그 사실이 너무나 씁쓸했고 자괴감마저 들었다.
동원된다 쳐도 그 상황은 절대 아닌데;;;
p.s 당시 기자회견중 분위기가 너무 좋지 않아 광고얘기 꺼내기 어렵다고 보고를 했다. 이후 엄청난 과정들이 있었는데 그건 차마 공개하기가 어렵다. 너무 쪽팔려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