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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rseilleu Oct 25. 2015

영화 <그녀, 잉그리드 버그만>을 보고

어제 <그녀, 잉그리드 버그만>을 봤다. 이 영화가 만들어진 계기는 그녀가 1915년에 태어나 올해가 탄생 100주년을 맞이한 것도 있고, 그녀가 평소에 찍은 홈비디오와 지인들에게 쓴 편지가 많아 다큐멘터리로 구성할 수 있는 자료가 많았던 점도 있었다. 


나는 그녀의 수많은 작품 중 중학교 때 <카사블랑카>만 봤는데, 그때는 자신이 약속을 어겨놓고 통행증을 찾으러 온 이기적인 모습으로 기억에 남아있었다. 그런데 그녀의 일생을 잔잔하게 표현한 이 영화를 보고 새로운 면모를 많이 보게 됐다. 


잉그리드 버그만은 1982년(내가 2살 때) 이미 별세를 했기 때문에 그녀가 생전에 찍은 홈비디오 배경과 그녀의 자녀 4명의 회상이 영화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자녀 중 한 명은 유명 배우인 이사벨라 로셀리니이고, 작품 막판에는 탑 배우 시고니 위버도 나온다. 


나는 그저 한 시대를 풍미했던, 전성기 시절 아름다웠던 여배우 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영화 전반에 그녀는 자유로운 영혼, 열정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오히려 정형화된 여배우 이미지를 벗어내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했다. 


영화를 보면서 나는 '따뜻함'을 느꼈다. 워낙에 슈퍼스타였기에, 또 작품과 연기에 대한 열정이 많아서 가정에 할애한 시간은 제한적이었지만 어린 자녀들과 같이 시간을 보내는 모습에서 참 저 배우는 마음이 따뜻하구나 하는 감정이 느껴졌다. 


그녀가 자유로운 영혼이라는 건 활동거점이 스웨덴에서 미국, 이후 이탈리아, 프랑스를 거쳐 영국까지 다양한 나라에서 활동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회자되는 수많은 명작에 출연하면서 인생에 최정점에 올랐던 그녀는 자신의 선택으로 몰락을 맞이한다. 


남편과 딸이 있는 상황에서 거장 로베르토 로셀리니와의 스캔들이 터졌고 그와 결혼하면서 굉장한 비난을 받았다. 미국 상원의원까지도 나서서 그녀의 퇴출을 주장했을 정도로 궁지에 몰렸었는데, 7~8년이 지나서야 다시 할리우드에 복귀할 수 있었다. 


영화 포스터에 나오는 '나는 성녀에서 창녀가 됐다가 다시 성녀가 됐다, 단 한 번의 인생에서'라는 말은 여기서 유래했다. 





이 영화를 보면서 그녀의 자녀에 대한 생각도 들었다. 2번을 이혼하면서 총 4명의 자녀가 있었는데, 부모의 이혼과 성장기 시절 부모의 부재가 자녀들에게 큰 영향을 줬기 때문이다.


자녀들은 그녀에 대해 따뜻하고 열정적이면서 자유롭고 주관이 강하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도 가족들과 있을 때보다 연기를 더 좋아했으며, 어렸을 때는 그런 점이 이해가 가지 않아 불만이었다고도 말했다. 


특히 어렸을 때 부모의 손길과 관심이 중요한 데, 그 시기에 그녀가 작품활동으로 너무 바빴고 연기에 몰입했기에 아쉬움을 표현하는 것이었다. 


첫 번째 결혼이 파경을 맞으면서 딸은 큰 충격을 받았다고 했고, 두 번째 결혼 후 이혼할 때 자녀들은 파파라치의 표적이 되면서 상처를 받기도 했다. 어떻게보면 자녀들도 본의 아니게 쉽지 않은 경험을 해야 했다. 


일과 가정을 모두 양립하기란 매우 힘든데, 그녀는 '한 일보다 하지 않은 일이 후회된다'고 말할 정도로 활동적(?)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자녀들은 그녀와 함께 있는 시간보다 그렇지 않은 시간이 훨씬 많았다. 


2번의 이혼과 할리우드에서의 퇴출 등 의외로 인생의 굴곡이 많았던 그녀의 면모를 새롭게 알게 됐다. 


그녀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치열하게 살았고, 작품에서 보이는 이미지와는 달리 기품이 있으면서 따뜻하고 열정적인 그런 인물이었다. 역시 한 작품에서의 이미지로 단정해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p.s 조만간에 그녀의 대표 작품 중 하나인 <카사블랑카>를 다시 한 번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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