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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스포트라이트> 진정한 언론인들의 품격

by marseilleu

어제 영화 <스포트라이트>를 봤다. 아무래도 언론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꼭 보고 싶은 영화였고, 내 기대에 부응하는 그런 작품이었다.


저번에 봤던 <빅쇼트>도 그렇고 이 영화도 연출이 '감정과잉' 보다는 절제되면서도 객관적인 시선이 인상적이었다.


이 영화는 보스턴 글로브라는 매체의 탐사보도 팀이라고 할 수 있는 '스포트라이트' 팀이 보스턴 교구 신부들의 아동 성추행 사태를 취재한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진실을 파해치면서 특종을 한 기자들의 노력도 대단했지만 온갖 압력을 막아준 회사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과거 내 기억들이 떠오르면서 '기레기'로 대표되는 언론 불신 상황이 떠올랐다.


(아래 영화 스포내용이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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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년 전 한 후배 기자의 일로 기자 전원이 회의실로 모였다. 후배 기자가 특종을 했는데 그 기사가 석연치 않은 과정으로 삭제가 됐기 때문이다.


그보다 몇 달 전 동료 기자도 특종기사를 썼는데 해당 업체에서 광고를 끊는 등 후폭풍이 커졌다. 그 여파를 감당해야 했던 그 기자는 마음의 상처를 입고 결국 얼마 후 이직을 했다.


그 후 나도 비슷한 경험을 했는데, 실제 언론 현실에서는 이른바 업계 용어로 '엿 바꿔 먹는다'는 말이 있다. 즉 출입처에 치명적인(특히 CEO 등 조직의 수장을 대상으로 하면 효과가 더욱 크다) 기사를 게재한 후 광고와
맞교환(?) 한다는 의미다. 즉, 광고하기로 하면 해당 기사를 내리거나 톤을 낮춰준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당시 자과감이 들었던 이유는 특종은 기자 개인에게도 큰 의미가 있지만 사회적으로도 공익의 목적이 크다고 보는데, 현실에서는 광고를 받아 내기 위한 하나의 수단에 불과한 경우가 있었다는 점이다.

실제로 그 과정을 경험하면서 내가 장기판의 '말'처럼 느껴졌다.


심지어는 광고 수주가 잘 안 되는지 '저 출입처 긴장하게 할 수 있는 기사를 써라'라고 일종의 청부(?)가 오는 경우도 있다. 평소에는 특종을 하라고 쪼아대면서, 실제로 특종기사를 작성했고 윗선에서 그 기사를 승인했음에도 문제가 생기면 기자 탓으로 돌리는 그런 관행을 보면서 기자생활 자체에 대한 회의를 느끼기도 했다.


이와 달리, 영화에서는 오히려 윗선에서 온갖 압력을 막아주면서 (엿 바꿔 먹는 게 아닌) 보스턴 지역은 무론 카톨릭계에 큰 충격을 주는 특종이 1면 기사로 발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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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스포트라이트' 팀이 쓰는 탐사보도는 길면 몇 개월씩 걸리는 장기 프로젝트였다. 이는 회사에서 이 팀이 기사수는 적더라도 심층취재를 통해 퀄리티 높은 기사를 쓸 수 있도록 용인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반면에 언론 현실을 보면 성과주의가 강조되면서 시간이 많이 걸리는 특종보다는 조회수(클릭수) 등 정량평가로 평가하는 경우가 있다.


예전 회사에서는 클릭수를 집계해 시상한 적이 있었다. 아마도 높은 클릭수를 기록한 만큼 회사에 기여했다는 뜻일 것이다. 그래서 한 달마다 자신이 작성한 기사 수, 클릭수 총 합, 클릭수 가장 높은 기사 5개와 각 기사의 조회수 등을 제출해야 했다.


그러나 곧 부작용을 맞이했다. 기사의 질(質) 보다는 사람들의 이목을 끌만한 이슈에만 몰입했다.

그래서는 안 되지만 내 출입처에서 큰 사건이 발생하기를 바랄 때도 있었다.


그리고 공동취재가 부실해졌다. 원 오브 뎀(One of them)으로 평가받는 공동취재에 시간을 많이 할애하느니, 자신의 실적을 향상시키는 게 개인 입장에서는 더욱 유리하기 때문이다.


또 숫자로 평가하니까 정확한 분석이 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는 점이 발견됐다. 조회수에는 기자의 능력도 중요하지만 어느 분야, 어느 출입처를 담당하고 있는지가 훨씬 더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출입처가 어디냐가 더욱 중요했고 이렇다 보니 평가에 대한 불만이 늘어났다. 그래서 몇 달하다가 이 제도는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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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는 나도 누군가에게 기레기라로 성토받을지 모르겠다. 다만 기레기 중에서 정말 성품 자체가 글러 먹어서 기레기인 부류도 있고, 회사 시스템 상 기레기가 될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다.


어쨌든 선정적인 기사, 어뷰징, 세월호 등등 취재윤리가 어긋난 행동, 엿 바꿔 먹는 기사, 기자들의 갑(甲)질, 우라까이(타 매체 기사 비슷하게 배껴쓰기) 등의 문제는 언론에 대한 신뢰도를 떨어뜨리고 나아가 불신을 초래하는 원인이다. 정말 신뢰회복을 위해 각 매체, 각 기자들의 자정노력이 절실하다.


영화 스포트라이트를 보면서 올바른 언론인들의 모범을 봤고, 또한 그것과는 매우 다른 현실을 생각하게 된다. 언론계에서도 뼈를 깎는 자정노력이 없다면 독자들의 외면을 받을 거라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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