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는 한 편의 수필을 읽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일상의 모습 속에서 가족의 의미를 도출해내고 관객에게 전달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이번 영화에서는 주인공이 지금은 이혼하고 한 달에 한 번 아들과 만나는 신세이지만 결말은 향후 관계에 대한 여지를 남겼다. 다만 나는 영화를 보면서 주인공보다는 전(前) 부인의 심정에 공감이 갔다.
(아래에는 영화 스포가 있습니다.)
간혹 지인들과 술자리를 갖는데 전 여친(ex-girl friend)에게 전화하는 경우를 몇 차례 볼 수 있었다. 물론 밤늦게, 새벽에 갑작스럽게 전화해봐야 상대방이 받을 확률은 높지 않다. (솔직히 사전에 합의되지 않은 밤중 기습전화는 예의가 아니다.)
전 여친에게 전화하는 이유는 아마도 술기운이 올라오면서 과거 연애에 대한 후회의 감정이 고조되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보고 싶고 통화하고 싶은’ 감정이 솟구치는데, 술기운을 빌어 행동에 옮기는 것 같다.
연애가 깨진 이유를 냉정하게 분석해보면 ‘있을 때 잘했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솔직히 말해서 자신의 과오를 반성하고 그걸 실행할 마음의 준비라던가 정말 변하려는 의지보다는 감정적인 호소가 많은 것 같다.
영화로 돌아와 주인공의 모습을 보면 ‘이혼당해도 싸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15년 전 문학상을 받았지만 현재는 흥신소에서 남의 뒤를 캐면서 겨우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어렵게 돈을 벌어도 경륜장에 가서 돈을 다 탕진한다. 회사 후배가 “도박 좀 하지 말라”고 만류를 해도 막무가내다.
수입이 변변치 않으니 간혹 전기세나 수도세 받으러 오면 인기척을 숨기려는 모습도 보인다. 딱히 소설을 집필하지 않지만 ‘자료 수집 중’이라고 둘러 댄다.
누나한테 자꾸 돈을 꿔 달라고 하는데 이로 인해 언쟁을 벌이는 장면도 나온다. 양육비도 제대로 지급하지 못해 이번에도 주지 않으면 아들을 만날 수 없다는 최후통첩을 듣기도 한다. 주인공이 안쓰럽기도 하지만 냉정하게 보면 자초한 측면이 있는 것이다.
영화 속에서 언급되는 전 부인의 대사를 보면 그녀는 꽤 오랜 기간 참고 참다가 이혼을 결심한 것으로 보인다.
“자녀가 태어나면 좀 바뀔까 기대했더니 변한 것 없더라.”, “그는 결혼에 적합한 사람이 아니다”
등 화해를 바라는 시어머니한테 했던 그녀의 말이다. 비유를 하면 이미 버스는 떠났고 해당 노선은 폐쇄된 셈이다. 있을 때 잘하지 못하고 잘못이 누적됐기 때문이다. 어떻게보면 가정을 제대로 돌보지 않음에도 몇 년씩이나 기다린 그녀가 대단하다고 느껴질 정도다.
그리고 그녀는 재정적으로 가정을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을 원하고 새 남친과 만남을 갖는다. 조등학교 4학년 아들이 있기에 더더욱 현실적으로 안전한 선택을 하는 것이다.
반면에 주인공은 아직 미련이 남아있다. 그래서 전 부인과 새 남친이 만나는 광경을 멀리서 몰래 지켜본다.
‘태풍’을 계기로 가족이 하룻밤을 같이 보내게 되면서 관계 회복의 계기는 마련하지만 재결합은 굉장히 힘들어 보인다. 아마 위에 언급했던 헤어진 전 여친이 새벽에 술김에 전화한 걸 받는 게 확률이 훨씬 더 높을 듯 하다.
있을 때 잘하지 않으면 그 대가를 크게 치르게 된다. 그런데 나도 그렇지만 막상 일이 터져야 사태의 심각성을 느끼는 듯하다.
P.S
브런치에는 다른 시각에서 영화를 바라보는 내용을 담는에 외부 칼럼에서는 평범하게 영화에 대해서 다뤘습니다. (http://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4866448&memberNo=16213818)
팟캐스트에서도 제가 다소 그가 가정에 소홀했고 이혼을 자초했다는 식으로 비판했네요.
(http://www.podbbang.com/ch/11341?e=220478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