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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rseilleu Oct 04. 2016

(문화라떼) 4. 영화 <부산행>의 개미핥기와 한미약품

최근 한미약품 공시 사태로 피해를 입은 투자자들의 분노가 매우 큰 상황입니다. 지금 금융당국에서도 미공개정보 이용 혐의에 대해 조사에 착수했습니다. 지난해 몇 차례 기술수출로 화제를 모았던 한미약품이 지금은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올해 하반기 10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부산행>에서 ‘개미핥기’라는 단어가 수 차례 등장합니다. 이 영화에서 상화(마동석)는 석우(공유)가 펀드매니저라는 사실을 알고 이렇게 말합니다. 


“펀드매니저? 아 개미핥기~~. 개미들 피 빨아먹는.”


그런데 석우의 딸 수인이는 이런 반응을 많이 접했나 봅니다. “다들 그렇게 말씀하시더라구요. 개미핥기라고.” 


영화 초반 펀드매니저인 석우는 이기적인 면모를 보입니다. 김대리와 통화하면서 “야, 김대리, 너는 개미들 입장까지 생각하냐?”고 말하는 장면도 나오고 수인이가 석우한테 “아빠는 자기만 생각하잖아.”라고 합니다. 작중에서 석우는 사전에 입수한 정보를 바탕으로 대전역에서 몰래 빠져나가려고 합니다. 

주인공 석우는 몰래 얻은 정보로 대전역에서 딸과 빠져나가려고 했었다. 


정보의 격차와 비대칭성의 한계, 작전에서 피해를 입는 개인 투자자 입장에서는 펀드매니저, 나아가 전체 자본시장에 대한 불신감, 분노개미핥기라는 단어에 투영됐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단어가 연상되는 일이 최근 발생했습니다. 어제 저녁 저는 회사에서 야간당직을 서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밤 9시30분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이 ‘한미약품 공시건’ 위법 여부 조사에 착수했다는 메일을 받았습니다. 


한미약품은 지난달 29일 장 마감 이후인 오후 4시33분 미국 제넨텍에 경구용 표적 항암제 HM95573에 대한 기술이전 계약을 체결했다고 공시했습니다. 공시내용을 보면 한미약품은 일단 계약금 8000만달러를 받고 임상개발, 허가, 상업화 등에 성공할 경우 단계별 마일스톤으로 8억3000만달러를 순차적으로 받게 됩니다. 


호재성 공시가 나오자 그 다음날인 30일 상당수의 증권사는 긍정적인 예상을 담은 한미약품 관련 리포트를 발행했습니다. 한 증권사는 목표주가를 110만원에서 122만원까지 올렸습니다. 다른 증권사도 100만원에서 109만원으로 상향하는 등 대부분 전망이 좋을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이 영화에서 개미핥기라는 단어가 수 차례 언급됩니다. 부정적인 의미였죠. 

그런데 이날 개장 이후 시점인 아침 9시29분 한미약품 공시가 올라옵니다. 베링거인겔하임이 내성표적 항암신약인 ‘올무티닙’ 권리를 한미약품에 반환한다고 공시했습니다. 부정적인 소식에 장 초반 5% 가량 올랐던 주가는 18.06% 하락해서 62만원이 50만8000원이 됐습니다. 

(4일 오전 9시40분 기준 5만9500원(11.71%) 빠져서 44만8500원인 상황입니다.) 


한미약품의 이번 공시에 대해 수많은 비판과 억측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가장 많이 나오는 의견은 왜 ‘개장 전에 악재성 공시를 하지 않았냐?’는 것입니다. 개장 전에 이 공시를 했으면 매수를 하지 않았을 것이고, 그 시점에 공시를 한 건 누군가 매도할 시간을 벌어주기 위한게 아니냐는 거죠. 


만약 누군가가 악재성 공시가 나올 거를 알고 있었다면 30일 개장 직후 공매도를 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이익을 봤겠지만 호재성 공시를 신뢰하고 매수했던 개인 투자자들은 손실을 입구요. 

이관순 한미약품 사장이 2일 늑장공시 관련 기자간담회를 개최해 인사를 하는 모습. 사진/뉴시스

그리고 공시의 순서에 대해 문제를 삼는 의견도 있습니다. 호재성 공시로 매수 분위기를 띄우고 이후 악재성 공시를 한 건 전형적인 작전 수법이라는 것입니다. 


현재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한국거래소 측은 시장의 혼란을 초래한 한미약품의 수출계약 파기 공시와 관련해 미공개정보 이용행위 등 불공정 거래 여부에 대해 조사에 착수하고 상응한 조치를 취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아마 이 시간 동안 한미약품의 경영진이나 대주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측의 대량 매도가 있다면 문제는 더 커질 것입니다. 


어쨌든 한미약품의 공시를 믿고 투자한 개인 투자자들은 졸지에 손실을 입게 됐습니다. 그리고 한미약품은 물론 제약, 바이오 종목에 대한 불신이 당분간 팽배할 것입니다. 


솔직히 이 상황을 놓고 보면 영화 <부산행>에 등장한 개미핥기 단어가 떠오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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