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는 아무래도 제목에 ‘프라다’가 들어가다 보니 ‘명품’의 이미지가 느껴진다. 영화에서도 세계적인 패션잡지 런웨이(실제 보그)가 배경으로 나오다보니 명품 브랜드가 대거 등장한다.
이 영화는 주인공 앤디(앤 해서웨이)가 악마 상사 미란다(메릴 스트립)를 만나 상상 그 이상의 고생을 하면서 한때 패셔니스타가 됐다가 본래 자아(?)를 찾는 과정을 다뤘다. 다만 이 포스팅에서 다루고자 하는 내용은 이 영화에서 나오는 “새 비서는 널렸어, 5분이면 다른사람 구할 수 있어.”라는 부분이다.
물론 저 대사는 앤디가 미란다에게 깨지고 그나마 회사에서 우군이라고 할 수 있는 나이젤한테 하소연하다가 그가 하는 말이다. 다른 일자리도 아닌 미란다의 비서 직업은 미국 내 수백만명의 여성들에게 선망의 자리다.
나이젤의 말을 정말 좋게 해석한다면 어렵게 얻는 자리이기 때문에 좀 더 버티라는 의미일 수 있고, 나쁘게 해석한다면 ‘너 말고도 일할 사람 많고 5분이면 다시 구하니까 그만둬도 상관 없어’라고도 볼 수 있다.
다만, 이 영화에서 앤디는 사생활도 없이 마치 ‘5분 대기조’ 처럼 일을 한다. 게다가 미란다한테 깨졌던 시점은 그 전날 천둥과 번개가 치고 태풍이 몰아치는데도 당일 비행기표를 구하라는 것이었다. 현실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열정페이에 부당한 지시에도 ‘네가 아쉬운 상황이니 참고 버텨라’라고 볼 수 있다.
나도 예전에 사회생활 초기에 이와 비슷한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한 회사에 합격해서 출근했는데 인사팀의 한 분이 “이번에 경쟁률이 높았으니까 자부심을 가져라”면서도 “채용공고 또 내면 지원자들이 줄을 선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당시 분위기는 좋았고 강압적인 상황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듣기에는 썩 좋지 않았다. 취업난 속에 구직자나 신입은 을(乙)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 그리고 내가 다른 누군가로 언제든지 대체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영화 후반부에서 앤디는 미란다를 위해 동분서주하다가 이면의 진실을 알게 되고 결국 거취에 대한 결단(?)을 하게 된다. 24시간 내내 그녀를 옭아맸던 휴대폰을 분수대로 던지면서 그녀 스스로 선택을 한다.
그런데 다시 구직에 나서고 잡인터뷰를 준비하는 모습을 보며, 생계를 위해 직장을 잡아야 하고, 대체되지 않도록 살아남아야 한다는 사실을 보게 된다.
P.S
앤 해서웨이는 영화 <인턴>에서는 CEO로 승진(?)하지만 역시나 업무에 치이면서 고생을 한다.
2006년에 보고 10년만에 다시 봤는데 지금은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주인공이 겪은 고초가 이해가 간다.
이 영화에 대해서는 문화 팟캐스트 누리네다락방(http://www.podbbang.com/ch/11341?e=22131807)에서 다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