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게, 어떤 기억이 될 수 있는
아주 오래전, 대학 신입생 시절에 가입했던 동아리가 있었다. 당시 동아리방에서는 비망록이 있어서 누구든 자유롭게 글을 썼었다. 새내기라서 바쁜 스케줄 같은 것도 없던 나는 공강시간이든, 수업을 마친 후든 틈만 나면 동아리방에 머물렀다. 선배들은 그런 나와 몇몇 동기들에게 '동아리 방에서 죽치고 앉아있다.'는 뜻으로 죽돌이, 죽순이로 부르곤 했었다. 그런 동아리방에서 비망록을 읽는 건 하루의 일과 같은 것이었다. 수업을 다녀온 사이에 누가 글을 써놨는지 보는 것은 정말 재미있었다. 비망록에 적힌 익명의 글들을 보면서 누가 썼을지 추측해 보는 재미에 흠뻑 빠져서 나 역시 별 의미도 없는 글을 마구 적어놓기도 했었다.
서로가 낯설던 3월이 지나고, 제법 익숙해지고 정들어가는 축제의 5월이 지날 무렵이었다. 그 해 복학했던 한 선배가 비망록에 내 동기들에 대한 한 줄 코멘트를 달아 놓았는데 나에 대한 선배의 평은 '깨어지지 않는 유리'였다. 당시의 나는 이 말이 단순한 표현이 아닌 숨겨진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닐까 싶어 그 선배에게 물어봤지만 선배는 그냥 가볍게 쓴 것이니 별 의미 담지 말라며 피식 웃고 넘어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20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 저 표현이 뇌리에 남아 가끔씩 떠오른다.
이미 중년의 나이에 이른 지금도 나는 가끔은 나잇값을 못하는 바보처럼 보일 때가 있다. 그런 내 모습을 발견할 때마다, 습관처럼 그 선배의 한 줄 평가가 떠오르곤 한다. 깨어지지 않는다는 표현과 어찌 보면 대척점의 물질인 유리라니. 당시의 선배는 나이를 먹어서도 마치 피터팬 같은 어린 나의 내면을 봤던 걸까? 혹은 고집스럽다고 생각해서 깨어지지 않는다고 했나? 온갖 상상을 하다가도 이내 도돌이표처럼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곤 한다. 그렇지만 선배가 가볍게 남겼던 말 한마디가 이토록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생생하게 잊히지 않고 있는 이유는 따로 있는 것 같다.
그 당시 선배 역시 젊고 어찌 보면 아직 미숙한 20대였는데, 어떻게 저 짧은 몇 개월 사이에, 게다가 나와 많이 친하지도 않았던 시기에 나에 대해 저렇게 평가를 할 수 있었을까. 나는 선배의 그 한 줄 속에 담긴 날카롭고 조용한 통찰을 새삼 깨닫곤 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 말이 뜻했을 법한 여러 모습들을 나에게서 하나둘씩 발견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시 그 나이대의 나에게 그런 통찰력은 없었다.
사실 그 선배에게 다시 물어본다고 하면, 아마 선배는 기억조차 못할지도 모를 한마디였겠지만 나에게는 선배의 그 말이 오랜 세월을 관통하는 울림이 되어 전해지는 강렬한 말이 되어버렸다. 내가 글을 써보기로 결심한 후부터 나 역시 누군가에게 잊히지 않는 문장을 남길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한 줄기 바람이 생겼다.
내가 쓰는 글들이 마치 유리처럼 깨지고, 상처 입기 쉬운 여린 마음을 단단하게 잡아주는 글이 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 어쩌면 욕심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나의 글이, 문장이, 누군가에게는 힘들때마다 떠올릴 수 있는 한 줄기 위로가 된다면,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그보다 더한 기쁨은 없을 듯하다.
사진 : Aaron Burd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