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서 말하지만.... 윤주야... 같이 가지 못해서 아쉬웠어..
광주종합고등학교(현, 경기광주 중앙고) 보통과 시절...
그때가 1학년때였는지 2학년때였는지 기억이 또렷하지는 않다.
어느 날..
오전, 오후의 교과 수업은 다 끝난 시간...
우당탕탕 교실 청소를 대~강 하고 난 후 야간 자율학습 하기 전에 저녁 도시락을 까먹고 나서 쉬고 있는데..
(보통과는 저녁 도시락도 싸가지고 댕겼음) 윤주가 조용히 다가와서는 귀띔을 해준다.
(유윤주, 고교 3년 동안 같은 반 했음)
윤주: "애들이... 소덕남 선생님을 찾아뵙는다고 하는데 너도 갈 거니?"
나: "애들? 누구?"
윤주: "5학년 6학년 때 소덕남 선생님 반이었던 애들이 모여서 간다는 거 같은데?"
나: "너도 가?"
윤주: "아니, 나는 안가" (윤주는 5학년때 소덕남 선생님 반이었나 싶었다)
나: "왜?... 가지 왜~~~.."
윤주: "그냥... 담에 갈게 기회 있으면..."
윤주가 그때 왜 같이 가려하지 않았는지는 알았으나 어쩔 수 없없던 이야기를 뒤로하고... 암튼,
그렇게 해서 어느 일요일엔가... 5,6학년 때 소덕남 선생님 반이었던 애들이 몇 명 모였다.(옛날 3번 버스 종점에서)
나, 박현수, 윤승호, 최병훈, 이선형.. 이렇게 다섯... 이서...
모란.. 독산동.. 시흥으로 해서 버스를 몇 번인가 갈아타면서 선생님을 뵈러 고생(?)하며 찾아갔던 것 같다.
그렇게 몇 시간.. 걸음 끝에 다다른 곳은 광명시에 있는 소하국민학교.. 소덕남 샘이 전근을 가신곳이다.
하지만 이 학교가 광주에 계시다가 바로 전근 오신 학교는 아니다.
'광주국민학교'에서 전근 발령이 나서 처음으로 전근을 가신곳은...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 그렇게 멀지는 않은 남양주 '금곡국민학교'였다.
난 사실, 이번 말고도 중학생 때 이미 한번 소덕남 샘을 찾아뵌 적이 있다.
광주에서 남양주 금곡으로 전근 가셔서 거기에 몇 년 계시는 동안 옥래(박옥래)랑 나랑 둘이서
한번 찾아뵈러 금곡국민학교로 찾아갔었더랬다.
그때는 광주(구) 터미널에서 마장동행 직행버스를 타고는 동마장터미널로 가서..
거기에서 다시 금곡행 노선버스 타고 갔던 기억이 난다.
공립학교 교사는 4~5년마다 발령이 났었기 때문에 광주에서 남양주로 가셨다가,
다시 몇 년 후에 광명시로 또 전근 가신 것이다.
암튼, 그렇게 소하국민학교로 샘을 찾아뵈었고 샘은 우리를 다시 집으로 데리고 가서
샘 집에서 맛난 음식과 함께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왔었던 추억이 새롭다.
그때 샘에게 아기가 하나 있었는데 그 아이 이름이 '찬률이' 었던가.. 그랬던 거 같다.
소덕남 샘이 우리 담임일 때.... 나이가 한... 스물다섯?.. 많으면 스물일곱쯤은
되었을 것으로 손가락 접어 계산해 보면.. 지금쯤 연세가... 70세 정도... 한... 그 정도 되셨지 않을까 싶다..
우리도 나이 들어가는데... 샘이야 뭐... 어느 하늘 아래에서 곱게 나이 들어가시고 계시리라 믿어본다.
아, 맞다!
그때!
광명에서 샘과 작별 인사하고 광주로 돌아올 때... 선형이와 현수였던가?
'독산역' 지하철역으로 간다길래.. 내가 말했다.
"너네 지하철 탈 줄 알아?"
들었는지 말았는지.. 그렇게 우리 무리가 나뉘었고.. 나를 포함 몇 이서는... 또 버스를 타고 힘들게 되돌아왔다..
왜냐면.. 우린 촌놈이었고... 버스를 타고 오는 방법은 아는 유일한 놈이 지하철을 타러 갔다는 걸...
10분 뒤에 알았다. ㅠㅠ
6학년 때 과학 금장대회(경시대회 같은)한다고 별의별 실험을 다 하면서 실험연구일지 쓰던 생각도 났고...
당연히 소덕남 선생님 생각이 났다.
그리고 또 한분...
박병희 샘이 그렇게 소덕남 샘에게 추파를 던지고 살짝 장난도 치고 하면서 수작(?)을 걸던 일도
슬며시 기억난다^^
많이 웃기고 재미있으셨던 박병희 선생님... 역시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아...
밤이 좀 더 깊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