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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사진

아버지와 단 둘이 찍은 사진 한 장이 없다

by 마르쉘

나의 노친네랑 주말나들이 삼아 베이커리 카페 같은 곳이라도 가면,

제일 먼저.. 저기 앉으면 좋겠다.. 싶은 창 넓고 햇살이 잘 드는 괜찮은 창가 자리에 울 노친네를

모셔 앉혀.. 당신 무릎을 쉬게 해 놓고..

나는... 그곳 카페의 분위기나 인테리어.. 공간 구성.. 배치.. 창은 넓은지.. 조명은 어떤지...

머그커피잔 디자인은 어떤지.. 빵은 종류가 좀 있는지.. 카페 안을 한 바퀴 휘~~~ 둘러보며

식당을 소개하는 파워블로거인양 사진을 찍어대다가는.. 다시 노친네가 앉아 계신 자리로

돌아와 마주 앉았다가는 이내, 노친네 옆쪽으로 와서 나란히 앉는다.


"엄마 여기 어때요? 괜찮아요?"

"응 좋네.... 좋다 여기.."


집에서 나오면 무조건 좋아하시는 나의 노친네다.

노친네는 카푸치노.. 나는 아메리카노.. 그리고 빵은... 이름 잘 몰라도.. 달콤 촉촉한 거 하나랑

그냥 눈에 많이 익숙한 빵.. 하나..

두어 시간 동안 노친네랑 얘기를 나누기 위해서는 트레이 안에 이 정도는 담아져 있어야 한다.

(가끔은 집에서 미리 챙겨 온 견과류나 조그만 마들린 빵 몇 개도 트레이 위에 얹기도 한다)


시집간 딸이 모처럼 친정집에 와서 친정엄마와 다정히 수다를 떨 듯 노친네랑 얘기를 하고 있으면...

나도 내가 진짜로 딸인 듯싶다.

(57세 아들이 80세 엄마랑 두 시간 얘기하는 거... 절대 어렵지 않다!

그냥 옆에 있어 주면... 얘기를 들어만 주면 된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다가..

"엄마~! 큰아들이랑 다정히 사진 하나 찍읍시다~"

스마트폰 셀프카메라 모드로 노친네와 웃는 포즈로 사진 좀 찍으려 하면..

"아휴~야! 나 안 찍어~~ 안 찍을래 옷도 그렇고.. 얼굴도 짜글 해.. 안 찍어.. 안 찍을래 ".... 하신다.

"엄마~ 아들이랑 한 장 찍자~~"

"에이~~ 안 찍어... 찍지 마... 다 늙어서 쭈글쭈글해서 사진도 안 나오는데 뭘 사진을 찍어..

찍지 마~ 찍어도 얼굴이 추하게 나와요~~~ 안 찍을래... 찍지 마.."


사진 찍는 게 참 힘들다.

그러면 나는 어쩔 수 없다..

기회를 엿보다 틈새를 보고 '기. 습. 적.'으로 나란히 있는 사진을 찍는다.

그래서 그런지 잘 나온 사진이란 게... 죄다.. 참...

노친네 눈감은 거... 입안에 빵이 가득.. 우물우물 씹고 계신 거.. 화나신 것 같은 표정.. 괴상한 표정..

말씀하시다 찍혀서 입술 모양이...."우~"... 하는 표정..

다 이런 사진뿐이다..


나란히 사진 좀 찍으려고 옆에 앉은 건데.. 실패다..


꼭!

꼭~~ 찍어야 하는데.........




부모를 생각하면 늘~ '후회'다.

돌아가신 아버지...

아버지는... 매년 2월 22일, 두 분 결혼기념일마다..

광주에 있는 '제일사진관'에서 가족사진을 찍어오셨다.

내가 중학생 되면서부터는 매년은 못 찍었지만 그래도 어릴 때 찍어주신 흑백 가족사진이

너무 소중하다.

우리 집에는 카메라 하나 변변하게 없어서 사진 찍을 기회가 없던 그 시절에...

그렇게 매년 우리 가족을 데리고 사진관으로 가신 아버지..

당신도 그렇게 매번 챙기는 게 귀찮기도 했을 텐데..

"다 ~ 기념이 되는 거다" 하시며... 그렇게 매년.. 나의 어린 가족사진을 찍어두셨다.


그렇게 아버지는 은퇴를 하시고.. 금세 늙어가시고.. 병환이 찾아오고.. 가족사진을 남기고

돌아가셨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나면 잘못했던 일이나 무심했던 일만 왜 그렇게 생각나게 되는 건지..

우리 부모의 살아생전 나날들은 자식에겐... 후회되는 아쉬움의 대상의 날들이다.

이제 햇수로 3년이 되어가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 정말 후회되는 것이 하나 있다.


"내가 그리 바쁘게 살았었나?"

그게 핑계가 될까...

아버지가 병원에서 돌아가시기 며칠 전... 내 막냇동생은 아버지와 병실에서

부자지간에 다정히 뺨을 맞대고는.. 좋으신지.. 씩 웃으시는 모습의 사진을 찍었었나 보다.


아............

나는... 도대체 살면서 뭘 했길래...

아버지랑....

단둘이 찍은 사진이....

....

단 한 장도 없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49제날.. 막냇동생이 보여준 그 사진을 보고....

나는 카톡으로 그 사진 좀 나한테 좀 보내달라 했고...

그다음 날...

나는...

그 사진을 보며 자꾸만 밀려오는 회한의 눈물을

그렇게도 많이 소리 없이 훔쳐 닦아 냈었다.


지금..

나의 노친네랑 분위기 좋고 배경 좋은 카페 같은 곳에라도 가면....

볼을 맞댄 포즈는 아니더라도 내가 계속해서 엄마와 나란히 앉아서 아주 잘 나온 화사한 사진을

한 장 찍고 싶어 하는 이유다.

노친네와의 소중한 순간을 또 놓치고 싶지는 않아서...


나는 아직 혼자 남으신 나의 노친네의 장수사진(영정사진)을 아직 찍어 드리지 않았다.

돌아가신 아버지는 결혼 50주년 되던 해에 가족사진을 찍고 싶다 하시고는

그때 당신의 장수사진도 찍어두셨었다.

그리고 2022년 여름,

그 사진은 아버지의 영정이 되었다.


그런데...

그때 가족사진을 찍을 때 어머니는 한사코.. 장수사진을 안 찍겠다고 하셔서

결국, 그때 찍지 못했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안 찍으신다.


또 모르지.

당신이 자식들 모르게 혼자 사진관 가서 찍어놓으시곤 장롱 깊숙이 숨겨놓았는지도...

뭐... 무표정한 영정사진은 안 찍어도 괜찮다.


노친네랑 다니다 보면 화사하게 웃으시는 사진을 한 장 찍을 수 있을 테니까....

그걸로 하지 뭐..


화사하게 웃고 있는 얼굴.. 그 사진이 제일 예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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