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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돈가스 먹던 날의 초상(肖像)

조명은 적당히 어둡고 수프는 너무 하얗고...

by 마르쉘

나의 처음.....


첫..


첫 비행, 첫눈, 첫나들이, 첫 카레, 첫 만남, 첫걸음, 첫사랑, 첫 키스, 첫 운전, 첫 경험, 첫돌, 첫 출근,

첫 스키, 첫 아기, 첫 바다, 첫 삽, 첫 고수, 첫 도전...


첫..... 첫.... 또 뭐가 있을까..


첫뻑?


무엇이 되었건,

'첫' '이라는 것에는 언제나 기대감, 경이로움, 호기심, 초조함, 궁금함, 설렘이 있다.


모든 '첫 번'의 것들과 사건사고(?)들에 대한 후회도 보람도 다 기억에 선하다.


'첫사랑' 이야기를 할까?

'첫사랑' 이야기라 하면 누구나 다...

자기 자신의 이야기가 가장 슬프고 애절하거나 가장 드라마 같고 아름답다고 할 것이다.


그래서 난

지금은.. 첫사랑 얘기는 패스~

왠지...

첫사랑 이야기를 하다 보면 과장된 것 같다며 '뻥치지 마라~' 하고 핀잔을 받기 십상이다.


그런 말 듣지 않을... 가장 공감되는 이야기가 아마도 먹는 얘기가 아닐까 싶다.


나에게는..

질긴 면발을 이빨로 끊어서 먹는 요령을 잘 몰라서 면이 계속 딸려 올라오는 바람에 한 번에 다 먹은...

(이것도 쫄면에 관한 첫 경험 에피소드라면 에피소드라고 할 수 있다.)

초등학교 앞 분식에서 처음 먹었던 '첫' 쫄면의 추억과 함께 쌍두마차로 떠오르는 메뉴가 있다.


돈가스다.



첫 번째, 중학생 때.. 6학년 반창회 때였나?

두 번째, 6학년 때 겨울.. 경기도 과학금장경시대회 때였나?

세 번째, 중학교 졸업 후에 6학년 담임 소덕남샘을 뵈러 몇몇 이서 광명시에 다녀올 때였었나?


기억이 또렷하지는 않지만 그날 그 자리에 함께 있었던 친구들 얼굴이 지금 기억나는 것으로 미루어보면..

아마도 '세 번째'.. 그때의 얘기...

아마, 고1 때였던 것 같다.'


경기 광주의 광주초등학교(그 당시에는 국민학교)에서 광명시 소하초등학교로 전근 가신

초등학교 6학년때의 담임선생님을 찾아뵙고 오다가 성남종합시장(구, 중앙극장 있던) 옆 골목에 있던

'마당'이라는 경양식 레스토랑을 들어가서 우리 광주 촌놈들 몇 명이서 돈가스를 먹은 이야기다.


그곳을 어찌해서 들어가게 되었는지는 기억이 안 나 잘은 모르지만,

아마 경양식 레스토랑이라는 곳을 가본 적이 있는 놈이 우리 중에 있었거나

그냥 갑자기 발동 걸린 도전의식으로 레스토랑에서 돈가스를 한번 먹어보고 싶었던 마음들이 있었으리라.

(그러지 않고서야..)


우리는 5명 정도로 되었던 걸로 기억된다.

길고 커~다란 테이블 두 개가 놓여있는 룸 같은 곳으로 안내가 되었고 우리는 한쪽테이블에 앉았고

조명은 밝지 않았다.


나비넥타이를 한 웨이터가 팔에 수건(?) 같은 걸 걸고 와서는 "뭐 먹을 거임?"을 물었다.

우리는 돈가스 먹으러 왔으니 당연, "돈가스~" 했다.


웨이터는 또 물었다.

"웰던? 미디엄?" (그때 웨이터가 '레어'도 있다고는 안 했었겠지? 돼지고긴데...)

촌놈들은 통일해서 "웰던" 했다.


그랬더니 웨이터가 또 묻는다.

"빵 or 밥"

웨이터는 밥과 빵 수를 메모하고 또 묻는다.


"크리스프? 야채수프?"

우리는 이구동성 "크림수프~" 했다.


돈가스 주문할 때 이렇게 하는 거란 걸 두 눈을 초등학교 신입생처럼 긴장하고 눈을 크게뜨고

웨이터의 말에 초집중(?)해가며 배웠다.


잠시 후...


웨이터가 들어와서는 노란색 조명이 비추고 있는 테이블 위로 접시들을 하나씩 놓아주고 나갔다.

그리고 한참을 들어오지 않았다.


뭔가 싶었다.


뭐지??.....

.......
30초는 흘렀나?


두 녀석이 스푼을 들더니 스푼으로 접시 바닥을 훑더라..

진득한 액체가 스푼에 떠지는 걸 보고... 그때부터 우리도 똑같이 따라서... 어색한 티 내지 않으며 떠서 먹었다..


크림수프를 주문하고도 그 접시의 내용물이 수프인지 몰랐던 것이다.


다들 겸연쩍고 맛있게 수프를 먹었다.

웨이터가 들어와서 다 먹은 수프접시를 들고나갔을 때...

우리는 아까부터 테이블 위에 보이던

저 조그맣게 생긴 궁금했던 나무통이 후추통이었다는 걸 알았다.




웨이터가 또 들어왔다.


이번엔 돈가스다.

소스가 뿌려져 있고 나이프로 잘라서 먹으면 된다.


그런데 고민이다.

칼이 왼손인가? 포크가 왼손인가?

격식대로 안 먹으면 웨이터가 보고 속으로 촌티 난다고 할 텐데...

고민하면서 최대한 어색하지 않게 잘 잘라서 먹었다.

중간에 닥광(단무지)랑 야채도 곁들이면서 싹싹 접시바닥을 깨끗하게 해치웠다.

내 옆에 있던 놈은 파슬리도 먹었나 보다.


그렇게 우리의..

나의 '첫'돈가스는 '마당'이라는 레스토랑과 함께 지금까지도 '추억'이다.




나비넥타이 웨이터..

빵 밥..

야채 크림..

다 골라야 했던... 돈가스..


요샌 돈가스 시키면 무조건 밥은 준다.


시대가 변해서 요즘은 돈가스를 먹으러 가도 워낙 종류가 많아 고민될 때가 있다.

일식돈가스에... 치즈돈가스... 고구마돈가스.. 잔치국수 돈가스...

아주... 돈가스천국이다.


'카츠'라는 일식돈가스도 처음 본 지가 20년 정도 된 것 같다.

기호와 취향이 다 다르지만 개인적으로 '잘린' 돈가스보다 '자르는' 돈가스가 조금 더 좋다.


'홍익돈가스'와 '돈가스클럽'에서 흔히 먹을 수 있는 소스가 뿌려진 돈가스..

맛있지 않은가?

이번 주말엔 돈가스 어떨까...??


처음으로 무엇을 한다는 건 고결한 것이라 생각하면서 오늘 '첫'을 떠올려본다.




오늘...

2025년도의 '첫눈'이 펄펄~~ 내리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이 드는 건...


낮기온 섭씨 38도!


너무나도 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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