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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 완 Oct 24. 2020

#3 오류로 태어난 사람

 내 삶의 정체를 밝히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주제였으나 끝내 밝혀내지 못했다. 빨래를 돌리거나 돈을 벌거나 길을 걷거나 라면을 끓이는 와중에도 이 해결되지 않은 과제는 문득 떠올라 나를 멈추게 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생각해보려 했으나 찾을 수 없었다. 삶의 시작부터 잘못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오류다. 아직도 군 단위에 머물러있는 낙후된 시골마을에서 계몽되지 않은 부모는 나를 낳았다. 그들은 아직 농경사회의 미신에 사로잡혀있었기 때문에 아들을 낳아야 했다. 한 생명을 충실히 가꾸기에 적절하지 않은 환경이었음에도 시어머니의 채근과 아들을 낳지 못한다는 주변의 시선이 두려웠기 때문에 어머니는 아들을 낳아야 했다. 


 시골의 읍사무소에 다니는 말단 공무원인 나의 아버지는 나이 40에 나를 낳았다. 신문배달보다 조금 나은 봉급으로 다섯 식구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적은 수입과 많은 식구는 농경사회의 가장이 지니는 낭만 같은 것이었다. 소득만큼 편협한 사고를 지닌 그는 반쯤은 예측된 가난을 숭고함으로 포장하려 했다. 내가 투정을 부리거나 공부를 하지 않거나 그가 술에 취한 날이면 보릿고개 이야기와 굶은 이야기, 병을 얻어 어린 나이에 사망한 그의 형제 이야기를 끊임없이 했다. 그리고 가족을 위해 생계를 이어나가는 당신을 숭고한 희생자로 여겼다.     

 

 보릿고개를 겪어보지도 않고 쌀밥을 남기는 나는 그가 보기에 죄의식을 가져야 하는 것이 마땅했다. 그저 평범하게 학교에 다니고 밥을 먹고 비가 새지 않는 집에 있는 것 만으로도 그가 보기에는 죄의식을 가져야 마땅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 죄의식을 붙잡고 자녀들을 끌어내렸다. 그것은 자신의 무능력에도 불구하고 권위를 갖기 위한 전략이었다. 아쉽게도 사는 동안 보릿고개는 오지 않았다. 대신 IMF와 파산이 왔다.      


 역시 같은 시골의 말단 공무원이던 나의 어머니는 7살이 많은 우리 아버지를 만나 딸만 둘을 낳았다. 출근을 할 때면 세 살과 다섯 살인 두 딸을 방 안에 넣어두고 바깥에서 문을 잠갔다. 집에 돌아오면 딸들은 십중팔구 울고 있었다. 방바닥에는 때때로 미처 배변의 방법을 익히지 못한 딸들의 똥이 있기도 했다. 


 그것보다 두려운 것은 아들을 낳지 못하는 여자라는 평가였다. 그녀의 가난한 시어머니가 그렇게 생각했다. 그녀의 남편도 그렇게 생각했다. 동네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듯했다. 농사짓는 시골마을에서 보편적으로 갖는 생각이었다. 태아의 성을 감별해 두 번을 낙태했다. 다섯 번째 임신을 했다. 아들이었다. 세 자녀를 직장을 다니며 키우기는 불가능해 보였다. 그래서 직장을 그만둔다. 그러나 맞벌이를 하지 않으며 셋을 키우기도 불가능했다. 우리 가족은 언제나 가난했다.      


 그렇게 날 낳은 것은 오류였다. 최소한 한 인간의 삶을 고통과 치욕으로부터 자유롭게 할 수 있었던 기회가 있었다. 그들은 그 기회를 없앴다. 그것은 오류였다.     


 어머니가 나를 낳던 날, 아버지는 어머니를 홀로 택시에 태워 병원으로 보냈다. 차 문을 닫으며 한마디를 덧붙였다고 한다. '이번에도 딸이면 병원에 안가네.' 그런 가족이었다. 나는 초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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