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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 완 Oct 24. 2020

#4 아버지라는 지옥

 나의 아버지는 내가 사귄 가장 끔찍한 사람이었다. 그에게는 긍정할만한 조그마한 인간적 성숙도 찾아볼 수 없었다. 내가 평생을 걸쳐 찾으려 했으나 결국 실패한 일이기 때문에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부모를 공경해야 한다는 도덕과 현실로 펼쳐진 아버지의 파렴치 사이에서 나는 그를 존경할 수도, 증오할 수도 없었다. 결국 만나지도, 연락도 하지도 않으며 반쯤 인연을 끊는 것으로 타협했다.


 그는 아무런 매력도 없는 시골의 말단 공무원이었다. 숙직을 하는 어느 날에 술을 마신 그는 집에 전화를 했다. 여덟 살의 아들이 전화를 심드렁하게 받자 화가 솟구쳤다. 본인이 응당 받아야 할 사랑과 존경을 받지 못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여덟 살의 아들에게 짧게 욕을 한다. “이 싸가지 없는 새끼... 엄마 바꿔” 그리고 술김에, 열 받은 김에 아들의 엄마, 자신의 부인에게 분노를 터뜨린다. “자식 교육을 어떻게 시켰길래 애가 그 모양이야!” 한바탕 욕설과 화를 쏟아낸 다음에 전화를 끊는다.


 쩔쩔매는 엄마, 변명하는 엄마, 그것을 오래도록 바라보는 여덟 살의 나. 그저 집 전화가 울려서 전화를 받고 몇 마디 말을 했을 뿐인데. 나의 교육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하는 여덟 살의 나.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욕설들. 무엇을 잘못했는지 곰곰이 생각하는 나. 몇 분의 시간이 지나고 나는 엄마에게 혼이 났지만 엄마의 목소리는 울먹임이 섞여 많이 떨리고 있었다. 엄마를 혼나게 한 나. 제대로 되지 못한 나, 교육받지 못한 나는 오늘도 죄를 지었다. 나는 아직도 전화받는 일이 싫다. 나의 가정교육을 들킬 것 같다.


 어릴 적 아버지가 퇴근하고 집에 오면 나의 누나들은 아버지에게 억지로 얼굴을 비춘 뒤 방으로 방으로 도망가듯 사라지고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자신에게 인사를 하지 않는다며 아버지가 불같이 화를 낸 다음부터였다. 나의 누나들은 서로 말을 안 하고 몇 년을 지냈다. 그토록 사이가 좋지 않았다. 그리고 누나들은 아버지와도 단 한마디를 하지 않았다. 무엇이 먼저였는지 모르겠다. 아버지와 대화 없이 살 수 있다는 사실과 그것이 훨씬 더 낫다는 사실을 깨닫고 자매와도 말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그들은 말 없는 유년기를 독처럼 품고 살았다. 종잡을 수 없는 불 같은 화를, 욕설을, 모멸감을, 정체를 알 수 없는 가정교육을 피하기 위해 누나들은 말을 버렸다. 엄마는 단지 저열한 배우자를 만났다는 이유로 이 어려운 상황을 조율해야 했다. 서로의 이야기들은 엄마를 매개하지 않으면 전해질 수 없었다. 위대한 가장이 이끄는 우리 가족의 모습이 그랬다.     


 열 살의 내가 잠을 자고 있을 때 엄마가 내 방에 들어와 옆에 누웠다. 떨고 있는 것 같았다. 조금 후에 아버지가 방에 들어왔다. 욕설을 하며 베개로 엄마를 구타하기 시작했다. 욕설, 구타, 엄마의 울음 섞인 항변, 욕설, 구타, 엄마의 울음, 욕설, 구타, 울먹임, 욕설, 욕설... 나는 매 맞는 엄마 옆에 누워 자는 척을 해야 했다. 아버지를 죽이고 싶었지만 두려웠다. 그만하세요! 소리치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 심장이 뛰었다. 고개를 돌리고 자는 척을 했다. 열 살의 내가 겪은 가장 긴 시간. 6층에 사는 아저씨의 엘리베이터 버튼을 아버지가 보는 앞에서 대신 눌러줬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때의 나는 그것이 왜 폭력의 이유가 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왜 폭력이 일어났는지 좀 더 나이를 먹은 뒤 알 수 있었다.      


 그 후부터 욕설을 하며 아버지를 구타하고 싶은 욕망을 참는 것은 나의 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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